[찢어진 커튼] 장막을 넘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Torn Curtain 1966)

2008. 3. 7. 23:17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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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릴러 영화의 귀재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일찌기 '스파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했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리메이크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나이>(34)를 비롯하여, <39계단>,<비밀 정보원>,<여인 사라지다> 등 일련의 스파이 출연영화에서 시종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오락영화의 기본에 충실했었다. 하지만 <사이코><>에 이어 발표한 1964<마니>가 흥행에 실패를 하자 스타급 배우를 기용하여 다시 스파이영화를 만든다. 그게 바로 <Torn Curtain>이다. <찢겨진 커튼>혹은 <찢어진 커튼>이다. 이 영화는 두 명의 영국인 외교관이 조국을 배반하고 러시아로 망명한 실제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히치콕의 바로 다음 작품은 프랑스 드골 측근에 있었던 간첩이야기를 다룬 <토파즈>이다) 히치콕 감독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류스와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 폴 뉴먼을 캐스팅하여 동서냉전시대의 첩보전을 그려낸다. 

원래 착한 서방제국, ‘사악한 공산진영의 대결구도를 다룬 영화를 요즘 본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여전히 치열한 첩보전쟁을 벌이는 요즘세대에도 스파이전쟁의 본질은 변함없이 재미있다. 

히치콕 감독은 영국인 외교관의 러시아망명 사건을 영화로 옮기면서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그들 '조국의 배신자'의 아내의 심정이었단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이, 전혀 어떠한 낌새도 눈치 채지 못했을 그 '배반자의 아내'의 시각 말이다. 이 영화에서 초반의 시점은 스파이의 연인인 줄리 앤드류스의 관점이다. 

둘은 스웨덴의 한 선상에서 열린 과학자 세미나에 함께 참석한다. 둘은 곧 결혼할 예정이다. 미국의 유명물리학자 암스트롱 교수(폴 뉴먼)는 정부의 핵 미사일방어 기술개발에 관여했었는데 결정적인 기술결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비서 겸 연인인 사라(줄리 앤드류스)는 이번 세미나가 끝나면 미국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에 빠져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비밀스런 전보문이 전달되면서 암스트롱 교수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암스트롱이 연인 몰래 동베를린 행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연인 사라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암스트롱의 뒤를 밟아 동베를린까지 따라온다. 그런데, 맙소사!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 그녀가 알게 된 것은 미국의 비밀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암스트롱 교수가 동독정부에 망명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사라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진 이 청천벽력의 사건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사건진행은 암스트롱 교수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 새로 볼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암스트롱 교수는 방어 미사일 개발에 실패한 것은 결정적인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보았고 그 기술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사람은 동독 라이프찌히 대학의 교수였던 것이다. 암스트롱은 위장망명을 한 후 이 교수에게 접근하여 그 기술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전수받아내려는 것이었다. 한편, 동독의 비밀정보부는 암스트롱에게 요원을 따라 붙이지만 어느 날 그가 사라진다. 암스트롱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동독교수에게서 핵심기술을 알아낸다. 두 명의 석학들이 칠판 앞에서 요란한 공식을 써가며 격론을 펼치다가 암스트롱은 그 공식을 알아내어서는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이 요란한 스파이 전쟁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그리곤 영화 후반부는 암스트롱과 연인 사라가 어떻게 동독치하에서 무사히 서방세계로 탈출하느냐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영화가 스릴러, 서스펜스 영화로서의 핵심은 '과연 누가 누구 편인가?'이다. 그러니까, 암스트롱 교수가 동독에 망명한 것이 진심이냐 아니면 위장이냐는 것이다. 물론 답을 가르쳐줘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동독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탈출극을 벌이는 것에 대해 전형적인 'cat-and-mouse spy story'라고 하네요. ^^

영화 제목 <찢어진 커튼>은 쉬운 비유이다. 오래 전 소련제국과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들을 일컬어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고 했다. 중국은 ()의 장막이라고 했었다. 암스트롱 교수와 사라가 어떻게 철의 장막을 뚫고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동독 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자유전사'의 도움 때문이다. 암스트롱 교수는 동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 알 수 없는 조직원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고 탈출 루트를 뚫는 것이다. 이 영화 보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화이어폭스>가 생각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구소련제국에 침투하여 최신형 미그기를 몰고 돌아올 때 소련 내 수많은 '자유전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누굴까? 아마도, 중국 북경의 대사관에서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들을 돕는 그런 '인도주의 단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이 영화는 군사-외교측면, 즉 시사적인 지식이 있으면 무진장 재미있을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무한대의 군사력 증대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서로를 겨냥한 핵미사일 개발에 열중하더니 어느 순간부턴 그러한 미사일을 박살내는 탄도요격미사일 개발경쟁을 펼친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소련이 맺은 일련의 약속이 바로 'SALT' (戰略武器制限協定;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이다. 레이건 시절엔 '스타워즈' 전략도 나왔었다. 미국과 북한이 몇 년째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NMD도 결국 누가 쏜 미사일을 누가 중간에서 떨어뜨리느냐는 첨단기술력의 싸움인 것이다. 

한석규가 3년만에 컴백하는 영화의 제목이 <이중간첩>이란다. 그래서 한번 찾아본 영화이다. ^^ (박재환 200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