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6.1.18.) 아서 골든이 쓴 소설 <게이샤의 추억>을 읽은 것은 7년 전의 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을 것이라 하여 호기심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국의 김희선, 홍콩의 장만옥 등이 스필버그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시간이 꽤 흘러 결국 <시카고>의 롭 마샬이 감독을 맡게 되고(스필버그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주인공 '사유리' 역은 중국의 장쯔이에게 돌아갔다. 장쯔이만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공리, 양자경도 이 영화에 출연한다. 중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왜 중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하나같이 '게이샤' 배역을 맡지 못해 안달이냐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중국에서 광범위한 안티 팬을 거느린 장쯔이에게는 중국 네티즌의 독설이 유독 끈질기게 쏟아졌다. *** 같은 인신공격형 댓글이 중국 포탈사이트마다 즐비하다.
'게이샤'(藝者)가 무엇이지? 한국에서도 사실 '게이샤'의 실체를 알기는 어렵다. 기생? 창기? 현대식으로 이야기하면 창녀? 글자로 보자면 게이샤(藝者)는 예능인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게이기(藝妓)나 마이코(舞妓)라고도 불린다. 중국어로 옮길 때 '妓女'라고 해야 할지 '伎女'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분명 백과사전식 설명으로는 춤, 노래, 잡기에 능한 해어화(解語花) 같은 존재라고도 하고, 일본 풍속사적 설명으로는 몸을 파는 창녀도 있다는 식의 첨언도 따라다닌다.
미국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한 작가 아서 골든은 두 명의 게이샤 출신 일본여성 나카무라 키하루와 이와사키 미네코와의 인터뷰를 통해 게이샤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있었다. 이와시키 미네코는 약속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을 책에 밝혔다면서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가 '게이샤'에 대해서만 10년을 연구하며 파헤친 게이샤의 이야기가 바로 원작 소설이다. 미국에서만 2년 넘게 베스트셀러 목록(뉴욕 타임스)에 올랐고 전 세계 32개국에 번역되었을 만큼 화제의 소설이다. 스필버그도 원작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정했을 만큼 서구인의 눈에는 '매혹적인' 소재이다.
원작은 일본의 시골마을의 어린 치요가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오키야(置屋)에 팔려간다. 언니는 곧바로 창녀촌으로 넘겨지고 9살 소녀 치요는 '게이샤'수업을 받게 된다. 여기서 풍속사적 해설. '오키야'는 뭔가? 일종의 '여자 공급소'이다. 연예인으로 따지면 소속된 프로덕션이다. 프로덕션 주인은 장래가 촉망되는 소녀들을 사들여 돈을 들여 '게이샤' 교육을 시킨다. 춤과 노래, 사미센 연주 같은. 그리고 비싼 돈 들여 기모노도 입힌다. 그리고 일본의 유한계급들의 술잔치에 불러가서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며, 때에 따라서는 몸도 갖다 바치는 '기쁨조'인 것이다. 아무리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미화시켜도 결국 남성중심의 유희문화의 성노예인 셈이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일본에 그러한 '창녀'와 대비되는 '게이샤'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 더. 소설에서는 아주 특이한 게이샤 관련 이벤트를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미주아지(水揚げ)라는 초야의식이다. 오키야에서 심혈을 기울여 교육시킨 여자애가 15살 전후가 되면 이제 본격적인 '게이샤'가 된다. 여자 아이 하나를 두고 일본의 유한계급 남성들은 몸이 달아오른다. 그 여자애의 초야(첫날밤)를 자기가 차지하기 위해 더 높은 액수의 돈을 부른다. (그래도 창녀가 아니라고?) 여하튼 할리우드는 일본 섬나라의 '게이샤'에 대해 아주 관심을 갖고 영화로 만든다.
영화는 소설 그대로이다. 치요는 하츠모모(공리)의 집중적인 괴롭힘을 당하며 오키야에서 커간다. 어느 벚꽃 만발한 봄날에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 친절한 회장님(와타나베 켄)을 잊지 못한다. 소녀는 꼭 게이샤가 되어 회장님을 모시겠다는 철없는, 하지만 직업정신에 충실한 야심을 품게 된다. 그리곤 선배인 하츠모모-그리고 하츠모모가 키우려는 펌프킨-을 꺾고 쿄토 최고의 게이샤가 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부터 언짢아진다. 때는 1945년. 마치 <반딧불의 묘>처럼 일본은 미군의 공습을 받고 하루아침에 일본은 미군이 점령한다. (당시 미군의 수준을 짐작하라!) 미군에게 '사미센을 연기하는 게이샤'가 예술인인지 창녀인지, 기생인지, 기녀인지, 알겠는가? 미군의 용도와 자신의 생존방식을 먼저 터득한 펌프킨은 그런다. "그 놈들? 개야(바스타드)!" 이제 일본 유한계급의 기쁨조였던 사유리는 미군의 양공주가 될 운명에 놓여있다.
일본인들은 이 영화가 반갑지 않은 이유는 일본을 다루었지만 일본답지 않다는 것이 불만이란다. 단지 미국은 일본을 어찌 보느냐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를 본단다. 그럼 한국인은 무엇 때문에 이 영화를 봐야할까. 장쯔이의 연기력? 공리의 연기력? 존 윌리엄스의 아름답지만 웬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악? 아서 골든의 소설을 읽고 게이샤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처럼 영화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영화 때문에 일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본을 연구하려는 사람이 더 늘기를 바란다. 일본은 가깝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정말 일본을 알기는 <감각의 제국>을 알기만큼 어렵다. (박재환 2006/1/18)
https://en.wikipedia.org/wiki/Memoirs_of_a_Geisha_(film)
[던전 드래곤] 용과 마법이 숨쉬는 시절.... (0) | 2008.05.03 |
---|---|
[블레어윗치] 황당한 인터넷 대사기극 (0) | 2008.05.03 |
[바론의 모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0) | 2008.05.03 |
[신사협정] 전혀 신사답지 못한 ‘차별의식’ (0) | 2008.03.31 |
[올 더 킹즈 맨 = 모두가 왕의 사람들] 순수 시민운동가에서 마키아벨리스트가 된 주지사 (로버트 로선 감독, All the King's Men 1950) (0) | 2008.03.20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 남자는 그게 없었다 (코엔 형제 감독 The Man Who Wasn't there 2001) (0) | 2008.03.11 |
[반지의 제왕 1편 반지원정대] Game Start! (0) | 2008.03.11 |
[워터프론트] 불의에 맞서는 정의 (0) | 2008.03.07 |
[영광의 길] 큐브릭의 양심 (0) | 2008.03.06 |
[올리버] 죽 조금만 더 주세요.. (0) | 2008.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