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2008-3-31] 1948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은 20세기 폭스사의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이이다. 118분짜리 흑백영화이다. ‘신사협정’이란 아마도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상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행동을 말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레이디 퍼스트’라든지 지하철에서 노인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그런 소중한 가치들 말이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옥에 가는 일은 없는 ‘의식상의 문제’일 것이가. 그럼 이 영화는 그런 사회적 규범을 그리고 있는 영화인가?
영화[신사협정]은 ‘유태인’ 문제를 다룬다. 아마도 그 당시 미국에서 꽤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반유태인 정서(Anti Semitism)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유태인 문제라면 이 영화가 나오기 불과 얼마 전 유럽에서는 나치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말해주듯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자유주의 국가 미국에서도 그러한 정서가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반유대정서’는 뿌리 깊은 역사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내용부터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상처한 유명작가 필립 그린(그레고리 팩)은 가족(어머니, 아들)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온다. 권위 있는 잡지사로부터 특별한 기사 작성을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반유대인 문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다. 유태인이 아닌 필립 그린은 고민에 빠진다. 특별히 유태인에 대한 차별이나 소수 인종에 대한 반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뾰족하게 글을 써내려갈 동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자신이 ‘유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유태인을 대하는 태도를 직접 겪어보기로 작심한 것이다. 뉴욕에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테니 말이다. 편집장과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고 취재에 착수한다. 아니나 다를까. ‘유태인’ 필 그린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차별을 받기 시작한다. 아파트에서는 우편함에 ‘유태인’이란 표시를 해놓으면 이웃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관리인의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권위 있는 언론사의 편집실에서부터 초등학교 아들이 학교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더러운 유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하지만 필그린은 끝까지 유태인 행세를 해본다. 필 그린은 글 쓰는 동안 편집장의 조카딸 캐시(도로시 맥과이어)와 가까워진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지만 ‘유태인’문제가 불거진다. 둘이서 신혼여행지로 잡은 곳의 ‘유명호텔’에서 보기 좋게 퇴짜 맞는다. 단지 ‘유태인’이란 이유로. 영화는 필 그린이 미국사회를 좀먹는 반유태주의 경향에 대한 훌륭한 글을 완성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캐시와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에서 언급된 ‘신사협정’은 ‘반유대정서’를 뜻한다. 고급호텔에서는 호텔의 분위기를 위해 유색인종과 유태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러한 조치가 바로 그들 사회에선 당연한 가치관인 ‘신사협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로라 홉슨(Laura Z. Hobson)의 소설이다. 로라 홉스는 당시 한 미국 하원의원의 반인종적 발언에 충격을 받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미시시피주 의원 존 랜킨(John E. Rankin)은 의회연설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을 했는데 나머지 의원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에 충격을 받고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첫 발표는 <<코스모폴리탄>>에 연재되었다) 폭스 사의 대릴 자눅(Darryl F. Zanuck)은 즉시 판권계약을 맺고 영화로 옮겼다. 당시 다른 스튜디오의 제작자들이 껄끄러운 ‘유태인 문제’를 다룬 영화의 제작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비롯하여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자눅은 유태인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보였는지는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반유태 정서’ 완화와 용광로 미국사회의 공공의 이익에 대한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서는 새로운 ‘인종차별’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지만 말이다. (박재환 200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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