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8.3.20.) 한국에서는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거쳐 새로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곧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을 예정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민주화-산업화 과정을 거친 대만에서는 총선이 먼저 있었고 곧 새 총통을 뽑는 대선이 있을 예정이다. 미국에서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고 말이다. 선거철에 딱 맞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1950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인 [올 더 킹즈 맨]이란 작품이다. '모두가 왕의 사람들'이라고 소개되는 이 영화는 꽤 흥미로운 작품이다. 적어도 신문 정치면에 관심 많고, 여야 공천 향배에 귀가 솔깃한 사람들에겐 말이다. (이 영화는 최근 숀 팬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지역의 한 주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신문기자 잭 버든(존 아일랜드)은 편집장으로부터 취재명령을 받는다. 윌리 스탁이란 인물을 취재하라는. 잭 버든은 카메라를 들고 자동차를 몰고 윌리 스탁이라는 인물을 찾아간다. 잭 버든은 곧바로 윌리 스탁에게 매료된다. 배운 것 없지만 정의감에 넘치는 윌리 스탁은 오랜 세월 그 지방을 꽉 쥐고 있는 부정비리의 카르텔에 홀로 용감하게 맞서고 있었다. 관급공사 비리에 맞선 스탁의 첫 번째 봉기는 패배로 끝난다. 스탁은 가진 자로부터 비웃음을 받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는다. 독학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다시 선거에 나서 거대한 구악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잭 버든은 그를 위해 기자를 마다하고 옆에서 거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윌리 스탁은 주지사로 당선되고 잭 버든은 어느새 그의 오른팔이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정의의 윌리 스탁이며, 정의의 저널리스트 잭 버든 이야기이다.
윌리 스탁은 점차 변해간다. 더 많은 이권에 관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권자 입맛에 가장 맞는 선심성 공약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 누가 들어도 단박에 매료되고 말 그런 환상적인 구호를 끝없이 내건다. 예를 들자면 상속세와 소득세를 늘리고, 가난한 자를 위해 무료병원을 짓고, 대규모 토목공사로 일자리를 만든다. 그의 정치 슬로건은 간단명료했다. ‘모두가 왕’(Every Man a King)이 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싫어하고 아버지의 변신을 증오하는 윌리 스탁의 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 동승한 여자가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윌리 스탁은 정치적 이유로 그 여자의 아버지를 살해 암매장한다. 이외에도 윌리 스탁의 음흉한 정치술수는 끝없이 계속된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윌리 스탁은 주 의회에 의해 탄핵 당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윌리 스탁은 자신의 지지자를 법정 건물 앞에 모이게 하고, 횃불시위와 함께 "우리의 영웅 윌리 스탁"을 밤새도록 외치게 한다. 정의는 잠시 눈을 감고, 선동적인 정치가의 수완은 여지없이 빛을 발한다.
이 영화에서 주지사 윌리 스탁 역을 맡은 브로데릭 크로포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순수한 시민운동가에서 탁월한 선동가가 변신하는 윌리 스탁을 ‘보는 관객’마저 매료될 만큼 열정적인 연기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둘러싼 인물들. 기자 버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크든 작든 ‘윌리 스탁’의 영향권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뇌와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잭 버든의 순진한 애인 앤은 어느새 주지사의 정부가 되어있다. 그리고 무료병원 건립이라는 당근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것 같은 친구 아담, 고고함의 최정상을 지키던 퇴직판사는 오래 전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주지사의 협박을 받는다. 판사의 선택은 비극적 자살. 이런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말 ‘익히 들었고, 여전히 있음직한’ 미국 정치판의 요지경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물론, 정도의 차이겠지만 한국도 그러 하리다.
이 영화는 로버트 펜 로덴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원작소설도 퓰리처상을 받았던 문제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지난 2003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소설에 포함될 정도로 세월이 지나도 인정받는 명작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루이지애나 주지사이며 상원의원을 지낸 휴이 롱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궁금해서 휴이 롱을 찾아보았다. 브리태니커에선 그를 이렇게 평해놓았다.
미국의 정치가. 현란한 선동가로 유명하다. 루이지애나 주지사시절 사회개혁과 급진적인 복지계획을 실시했으나 사상 유례 없는 행정권 남용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주지사를 거쳐 상원의원이 된 휴이 롱은 ‘모든 사람을 왕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통령직에도 도전했다. 당시 대공황이라는 충격파에 시달리던 미국국민들에게 환호를 받기엔 충분했다. 그의 최후? 좌충우돌 돌진하던 그는 오랜 정적의 아들에게 암살당한다. 휴이 롱은 죽기 직전에 “오, 하느님 날 데려가지 마세요. 난 아직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휴이 롱의 열정적인 선동가형 정치행위는 소설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에서 윌리 스탁은 아담이 쏜 총에 맞아 죽어가며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윌리 스탁의 세상이 될 수도 있었어.. 왜 날 쏜거지.. 왜? 윌리 스탁을...”라고
영화 제목 [모두 왕의 사람들]처럼 주지사 윌리 스탁의 당선을 돕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비리와 부정을 싫어하던 사람들까지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그의 비리에 동참하게 되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제목은 휴이 롱의 선거구호와 맞물러 묘한 감상을 안겨준다.
소박한 꿈과 원대한 이상이 공존하는 한 순수한 시민운동가가 정치과정을 거쳐, 공직에 나가고 엄청난 권한을 손에 쥐면서 점점 정치모리배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번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도 충정을 가진 많은 순수한 영혼들이 금배지에 도전할 것이다. 물론, 당선되고 나서는 여의도식 타락(?)을 거듭하며 다음 번 총선에선 외부 공심위원장에 의해 잘려나가는 의원나리도 생기겠지만 말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휴이 롱이 죽은 뒤 그의 아내 로즈 맥코넬 롱이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이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러셀 B.롱이 40년 동안 루이지애나 주 상원의원으로 내리 당선되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신의 능력으로 운명을 개척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부모의 후광을 잘 입는 사회란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건 또 다른 관점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박재환 2008-3-20)
1950년 아카데미 3개부문 수상: 작품상, 남우주연상(브로데릭 크로포드), 여우조연상(메르세데스 맥캠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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