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에단 코엔+조엘 코엔)의 작품은 일단 재미있다. 영화평론가들이 글쓰기에 적당한 지적 흥분과 문화사가들이 들먹이기 좋아할 만할 정도의 시대적 시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작품들을 내놓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아리조나 유괴사건>이 제일 재미있었다)
코엔 형제의 2001년 칸느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제목만큼이나 미스터리 한 영화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남자는 그때 어디 가 있었단 말인가.
때는 1940년대. 알 카포네가 타던 포드 자동차가 거리를 오가고, 백화점에 쇼핑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발소엔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오던 평화롭기 그지없던 그 시절. 이 동네에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는 처남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묵묵하게 일한다. 돈도, 실력도, 미래에 대한 의지도 없는 에드는 이발 가위를 든 채 오직 사람만을 관찰할 뿐이다. 그는 아내 도리스(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직장 상사인 빅 데이브(제임스 갠돌피니)와 놀아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이 가망 없는 현실을 일시에 바꿔줄 손님이 이발소를 찾아온다. 그는 '드라이 크리닝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다는 뚱보이다. 그는 거금 1만 달러만 내면 미래의 유망사업 ''드라이클리닝 세탁소'운영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심스런 남자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에드는 만 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빅 데이브에게 편지를 보내 도리스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역시 부자마누라에게 얹혀사는 신세였던 빅 데이브에겐 큰 위협이다. 빅 데이브는 돈 많은 아내에게서 독립할 요량으로 준비해두었던 1만 달러를 갖다 바친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도리스가 장부조작을 했다!)
코엔 감독 작품답게 문제는 자꾸만 꼬이게 된다. 드라이크리닝은 무슨 얼어 죽을 드라이클리닝.. 그놈은 사기꾼이었고 1만 달러를 갖고 사라진다. 빅 데이브는 자신을 협박한 것이 에드인 것을 알아내고는 한밤에 그를 불러낸다. 에드는 얼떨결에 그를 죽이고, 경찰에선 뜻밖에 도리스를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그 누구도 샌님 에드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입만 살아있는 유능한 변호사 덕분에 무죄가 선고될지도 모르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리스는 그만 자살해버린다. 돈 날리고, 아내 날린 에드에게 불행은 끝났는가? 아니다. 일은 더욱 꼬여만 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부부'의 일상적 가정을 해체시키는 외도를 다룬다. 에드와 도리스는 부부지만, 도리스는 빅 데이브와 관계를 맺고 있다. 에드의 성생활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호모 사기꾼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다. 그리고, 그가 롤리타 증후군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 어린 여학생에게 관심을 쏟지만 딴 뜻은 없는 듯하다..
코엔 형제의 상상력은 때로는 황당하다. 아내가 살인 용의자로 감옥에 갔을 때 죽은 자의 아내가 그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당신 아내가 우리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사실 오래전 우리 부부가 피크닉을 갔다가 UFO에 납치된 적이 있다. 이 사실은 정부 비밀기관만이 알고 있다. 우리 부부 사이는 그 날 이후 전혀 육체적 관계가 없었다.."
아내가 자살한 후 검시관이 에드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린다. "도리스를 부검했더니 뱃속에게 아이가 있었다. 3개월 된." 그러자, 에드는 무겁게 입을 연다. "우리 부부사이는 오랫동안 아무런 일이 없었다"라고."고.
관객들은 하나의 사실만은 알아차린다. 에드와 그의 아내 도리스, 빅 데이브와 그의 아내는 무미건조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우나기>를 떠올렸다. <우나기>의 남자 주인공의 살인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외도하는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인 그지만 오히려 남편인 그가 더 큰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그의 남성적 능력이 여성의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이라는 남성적 판단에 의한 위축된 심리인 것이다. 에드는 이미 오래전에 심리적 임포텐츠에 빠진 상태이다. 못난 남자는 처남의 이발소에서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빅 데이브도 동일하다. 그는 마을 유지로 한때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일본군들을 신나게 섬멸했다고 떠들지만 그것은 그의 허풍일지도 모른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UFO때문일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죄짓고 못 산다는 권선징악은 아니다. 결국 지구 상 수 억의 남자들 중 이처럼 일이 잘 안 풀리는 남자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를 올 컬러로 찍은 후 다시 흑백 필름으로 프린팅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상과정의 실수로 첫 번째 릴이 컬러로 나온 프린트가 딱 한 벌 있다고 한다. (우표수집가라면 "와우! 돈 된다!"소리가 나올 것 같다!)
아, 어쨌든 답은 가르쳐 줘야지.. 그 남자는 기개가 없었다!! (박재환 2003/1/6)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빌리 밥 손튼, 프란시스 맥도먼드, 제임스 갠돌피니,스칼렛 요한슨 개봉: 2002/5/4 [위키피디아 The Man Who Wasn'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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