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2002-8-26] 편견이랄지 아니면 영상산업의 최신기술동향을 그저 즐기면서 받아들이는 편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DVD라는 것을 그다지 '유니크'하다든가 특별히 '판타스틱'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LD나 VCD, Divx처럼 언젠가 퇴화할, 혹은 또다른 유사형태로 진화할 하나의 영상매체로 여길 뿐이다. 아마도 VHS 비디오테이프만큼은 사랑을 받거나 대중적일 수는 있겠다 생각한다. 아마 작년 이맘 때에 우리 동네(과천임)에 DVD대여점이란게 생겨난 것 같더니, 내가 즐겨가는 비디오 대여점 한켠에도 언젠가부터 DVD타이틀 코너가 생겨났다. 얼마 전에 국내에 두 장짜리 타이틀로 출시된 <반지의 제왕>을 보았다. 어쩌다 극장에서 놓쳤고 divx파일을 받아두고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유니크'하며 '판타스틱'하다는 DVD로 '반지의 세상'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서두를 이 정도로 밝혀두면 'DVD'에 대한 예찬론이 나오든지 '반지의 제왕'에 대한 격찬이 쏟아지겠지만 불행히도 난 두 가지 모두, 여전히 '글쎄요올시다'이다.
<해리 포터>와 함께 <반지의 제왕>을 본 대부분의 평자가 먼저 하는 말이 원작소설에 대한 소개와 영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소설을 읽어야한다는 등의 상투적인 '원쏘스 멀티유즈'한 어법일 것이다. 불행히도 난 <반지의 제왕>을 읽지 못했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낌은 지극히 단편적일 수 밖에 없다.
DVD타이틀의 풍성한 서플(먼트)에는 원작자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J.R.R. 톨킨이라는 옥스포드 교수는 1950년대에 10여 년에 걸친 집필 끝에 방대한 분량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내놓았다. (북)유럽을 지리적 배경으로, 중세와 그 이전의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하여 장구한 대하모험소설을 써내려갔다. 물론 '미들 어쓰'(중간계)란 가상의 공간과 미지의 시간대가 소설의 진짜 배경이지만 말이다.
샤우론라는 '절대 악(惡)'이 금반지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게되면 세계를 정복하게 되는 엄청난 '포스'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엑스카리버> 시대의 둔갑한 무장병력과 <아미 오브 다크니스>스타일의 어두침침한 대결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반지'를 노리는 수많은 군웅들이, 혹은 존재들이 쟁탈전을 벌이면서 반지는 흘러흘러 결국 '호빗'이라는 스머프 비슷한 종족의 프로도 배긴스(엘리아 우드 분)라는 앳된 주인공 손바닥 위에 놓이게 된다. 이 반지의 힘과 저주를 충분히 아는 마법사 간달프(이안 멕켈런 분)는 반지의 저주, 반지의 힘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반지'를 샤우론이 오래 전 그 반지를 만들었던 용암이 흘러넘치는 화산에 집어 던지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란 것을 일러준다. 그래서 프로도와 간달프, 그리고 7명의 용사가 원정대를 구성하여 험난한 머나먼 길을 떠나게된다. 그 과정에서 겪게되는 모험담이 바로 피터 잭슨이라는 뉴질랜드 감독의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이다.
원작소설이 반세기 만에 스크린에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소설을 하나가 아닌, 3부작으로 만들겠다는 무모한 계획과 날이 다르게 발전하는 현재의 헐리우드 영상 기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CG부문만 이야기하자면 <반지의 제왕>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특수효과로 도배된 영화이다. 게임<디아블로>(불행히도 내가 알고 있는 마지막 게임 이름이다--;)나 실사영화 <스폰> 등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구현되는 엄청난 특수효과란 것이 결국은 1997년의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과 1958년 영국영화 <A Night to Remember>에서 침몰하는 배를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했느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그런 면에 보자면 <반지의 제왕>은 시대에 발맞춰가는 오락영화이지 결코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영화는 아닐 것이다. 시대에 발맞춰간다는 점에서는 전세계적인 마케팅과 영화 이외의 콘텐츠 사업에서 진공청소기같은 흡입력을 내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DVD만 보아도 8월에 두개짜리 dvd로 나왔다가 11월에는 네장 짜리로 다시 나온단다. 이름은 Platinum Series Extended Edition Collector's Set라는 아주 거창한 이름을 달고 말이다. 보고 있노라면 빌 게이츠가 버전 숫자바꾸면서 끊임없이 돈벌어먹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근데 많은 절대매니아들이 아낌없이 이러한 상품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 미국 아마존에서 프리 오더, 판매 예약을 받고 있는데 기프트 세트를 사면 석상 두개를 주는 모양이다. 매니아라면 갖고 싶을 것이다. (난, 1984년에 <이티>개봉할때 손가락에 불 들어오는 조잡스런 이티 인형을 사서 한참이나 국보1호로 소중하게 간직했었던 기억이 있어 콜렉터의 기쁨을 안다)
<반지제왕> DVD감상에 동참했던 와이프는 1시간도 안되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CG란 것이 너무 표가 난다는 것이다. 나로선 뉴질랜드의 절경과 헐리우드의 CG란 것을 양분하여 받아들이는 시신경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아 "요즘 영화가 다 그렇지 뭐.."라며 계속 몰입했다. 게임같은 화면들이 끝나고 프로도 배긴스와 그의 시종이 되어버린 샘이 장대한 산의 정상에서 끝없이 펼쳐진 2편의 모험담으로 뛰어들 자세를 보여주면서 1편은 끝난다. (원작을 안 보고, 3편짜리로 기획된 것을 모르는 영화관객이라면 "이게 뭐야"할것이고, 절대매니아는 DVD에서 피터 잭슨이 잠깐 보여주는 2편의 이야기에 환호성을 질러댈 것이다!)
자, 옥스포드 고대 신화학과 언어학 전공자인 톨킨 교수가 그린 <반지의 제왕>의 절대주제는 무얼까? 소설을 못 봤으니 이야기할 수가 없다. '강력한 힘', '제어할 수 없는 유혹', '갈등구조' '모험담' 등을 보자면 죠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어디에서 양분을 섭취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원정대라면, 저 멀리(!) 떨어진 오지의 '엑스카리버'라도 건져 올려야할 터인데 <반지의 제왕>은 손 안의 '절대반지'를 다른 사람에게 탈취당하지 않고 분쇄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이게 왠 사이버다인의 터미네이터인감.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반지를 노리는 수많은 악의 무리와 함께 9명의 원정대원의 많은 수가 똑같은 유혹과 갈등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부의 적은 원정대의 결집력을 떨어뜨릴 수가 있고 평화의 위험성을 급격히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아니 <스타워즈>만 보더라도 아나킨 스카이워크가 꼬마에서 성인이 되면서 사랑과 포스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프로도'는 자기 키에 불과한 영웅담을 보여줄 뿐이다. (호빗 족은 키가 1미터 남짓이란다) 외부의 침략을 물리치고 자신의 유혹을 이겨내고 불구덩이 속으로 악의 근원 반지를 던져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깐. 그 과정에서 우정이 커나가고 충성심이 배양되고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은 설명체적 영화보기일 뿐이다. 차라리 거대한 계단이 무너져내리고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같은 물보라를 바라보며 <고무인간의 최후>를 만들던 피터 잭슨이 이렇게 컸구나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 반한 것은 톨킨의 문학적 힘도, 피터 잭슨의 영악함도, 엘리야 우드의 매력때문이 아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매혹적인 나레이션 때문이란 것을 특별히 밝혀둔다. --; (박재환 200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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