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1998-8-14] 우선,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1916년 1차 대전중인 유럽. 프랑스군 사단사령부에 군단장 브루랄드 장군이 밀러 사단장을 찾아온다. 난공불락의 개미고지를 48시간이내에 점령하라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밀러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진급시켜줄 것이라는 말에 그 작전을 수락한다. 그리고, 밀러 사단장은 이 명령을 닥스 대령에 하달한다. 닥스는 자기 부하의 대부분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격렬히 반대하지만 결국 그 명령에 따를수 밖에 없다. 막상 작전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아군은 고지 점령은 고사하고 참호에서 세 발자국도 더 나가기 전에 죽는다. 게다가 밀러는 참호에서 나가지 않는 아군을 향해 포격을 명하고, 포대장은 이를 거부한다.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화가 난 밀러 사단장은 병사들의 용기없음을 벌한다며 한 중대당 열 명씩, 백 명을 총살시키려 하고, 닥스의 항의와 브루랄드 장군의 제지로 세 명의 병사만을 군법회의에 회부시키기로 한다. 변호사 출신인 닥스 대령은 전심전력으로 병사들을 변호한다. 병사들의 행동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신나간 작전 명령과 이 우스꽝스런 재판이야말로 길이길이 후세에 비난 받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 우스꽝스런 군사재판 결과 세 명은 총살당한다. 그리고, 뒤늦게 밀러 사단장의 아군진지 포격명령을 알게된 브루랄드는 미러를 쫓아내고 닥스에게 그 임무를 맡도록 한다. 닥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아군병사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다가가보니, 술집에선 독일여자 하나를 두고 희롱한다. 그 여자가 구슬피 노래를 부른다. 곧 군인들도 이 적국 여자의 구슬픈 독일 노래에 아련한 향수라도 느끼듯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57년도 작품이다. 1차대전 이야기는 너무 오랜만에 보아 이전에 무슨 영화가 1차대전이 배경이었는지조차 기억도 안 난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이 제공하는 광기와 열정의 영화이다. 이 영화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다수를 위한 희생양 찾기가 줄거리이다. 이러한 희생양 찾기는 전시(戰時)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위급의 시기에는 곧잘 먹혀든다. 관동 대지진때 불행히도 그런 집단광기의 희생양이 된 '조센징'들. 그러한 잘못된 희생양 찾기는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리가 무너지고, 비행기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사고의 원인을 찾아 재발을 방지하려는 遠慮보다는, 희생자 유가족과 국민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 찾기에 먼저 나선다. 마녀사냥에 다름아닌 이러한 비이성이 때로는 전체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되는 것이다.
음..이건 얼마 전에 영화화 된 것인데 제목이 안 떠오른다. 십수년 전 미국의 한 평화로운 마을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등교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뒤집어진다. 탑승한 대부분의 어린학생이 희생 당한다. 그리고 이 마을엔 거의 대부분 그 또래의 아이들이 사라져버렸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삶의 의의를 잃었고, 정신적 황폐함을 겪게 된다. 이 마을에 더 이상 평화롭게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고 오직 죽음과 우울함의 집단의식만이 남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한 것은 마을사람이 모두 한마음으로, 살아남은 그 운전기사를 법정에 세우는 형태로 발현되었다. 심한 상처를 입은 그 기사는 당시 불가항력의 상황이었음을 재판을 통해 밝히고 - 그럼으로써 법원에서 무죄판결받기 전까지, 재판에 가지기 전까지 마을사람들로 부터 받았던 모든 책망의 시선을 거둘 수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재판과정을 통해 동병상련의 심정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학자, 심리학자의 분석이다) 재판결과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법률적인 과정을 거쳐 선악의 판별이 확정지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써 적과 아가 구별되고, 더욱 정확한 삶의 목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집단광기의 상징 군사재판이 열리는 것은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전이 무모해서"라기보다는 "작전을 수행할 병사들의 의지부족과 용기부족"이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군사 지휘자의 생각을 형식적으로나마 뒤받침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군 총알이 싫다면, 프랑스 총알 맛을 보여주겠다며" 총알받이를 강요한다.
이 영화에서 몇 번씩이나 재촬영했다는 그 영창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장면. 신부(목사?)가 와서 마지막 미사를 집전할 동안 세 군인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건 일반적인 사형수들의 반응과도 통하는데 만약 당신이 내일 총살당한 흉악범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느님에게 아님, 부처님이나 마호멧에게 귀의하여 혼령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 마지막 걸어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데드맨 워킹>이다. 이 세 군인은 정말 재수없이 뽑힌 희생양이다. 한 놈은 제비뽑기에서, 한 놈은 상사의 비급함을 나무라다가 눈밖에 나서, 한 놈은 첫 방에 뻗어버려 비겁한 자 국가의 해를 끼칠 놈으로 몰린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 처벌하고, 또 목사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들의 영혼을 구제해 준단 말인가.... 한 병사가 그 감옥의 벽을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보고 하는 말. "내일 아침이며 난 죽고, 넌 살겠지.. 넌 세상의 향기를 계속 맡겠지."라고.
다른 병사에 대한 교훈이 될 것이라며..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적군에 대항하는 용기부족에 대한 댓가로' 총살형에 처한다. 전쟁의 광기와 지휘자의 독선이 벌이는 이러한 상황은 사실 따져보면 역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순신은 기억해도, 그 거북선에 올라 노를 저었던 그 어느 한 사람 이름을 모르고, 징기스칸과 함께 중원을 달리던 그 수많았던 몽고쫄병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관심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영웅중심의 사관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영화 본질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35년 출판된 험프리 코프의 반전소설 <영광의 오솔길>이다. 1차 대전 중 프랑스군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기초로 한 것이다. 내용은 무리한 작전 책임을 지게된 죄없는 세 병사가 총살을 당한 사건이다. 큐브릭감독이 열 네살때 이 소설을 읽었고, 제작비는 93만 5천달러(그 중 30만달러가 커크 더글러스 출연료라고 한다.) 프랑스와 그 인근 국가에서는 오랫동안 이 영화 개봉을 주저했다. 프랑스 국가체면 때문에 꺼려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개봉되었고,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반전과 광기의 대표작으로 꼽기 시작한 것이다.
사족: 마지막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독일군 여자 - 수잔 크리스틴은 이 영화 만든 이듬해 큐브릭과 결혼하여 여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박재환 1998/8/14)
[올 더 킹즈 맨 = 모두가 왕의 사람들] 순수 시민운동가에서 마키아벨리스트가 된 주지사 (로버트 로선 감독, All the King's Men 1950) (0) | 2008.03.20 |
---|---|
[게이샤의 추억] 기생, 창녀, 그리고 게이샤 (롭 마샬 감독 Memories Of A Geisha 2006) (0) | 2008.03.11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 남자는 그게 없었다 (코엔 형제 감독 The Man Who Wasn't there 2001) (0) | 2008.03.11 |
[반지의 제왕 1편 반지원정대] Game Start! (0) | 2008.03.11 |
[워터프론트] 불의에 맞서는 정의 (0) | 2008.03.07 |
[올리버] 죽 조금만 더 주세요.. (0) | 2008.03.06 |
[타이타닉호의 비극] A Night to Remember (0) | 2008.03.06 |
[미니버 부인] 2차세계대전 프로파간다의 고전 (윌리엄 와일러 감독 Mrs. Miniver 1942) (0) | 2008.03.06 |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웅신화 (0) | 2008.03.05 |
[내가 마지막 본 파리]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