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1998-9-6] 타이타닉이 미국에서 개봉된 것은 1997년 12월 19일이다. 우리나라는 98년 2월 20일이다. 미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된 것은 98년 9월 1일이고, 우리나라는 98년 9월 20일로 잡혀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을 난 극장세 번 봤었는데, 계속되는 호기심은 이 타이타닉의 전작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미국의 비디오 판매 사이트를 찾아보니, 몇 편이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찮았다. 그런데 오늘 정말 극적으로 EBS-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였다. 너무나 기분좋아 며칠 전부터 잠이 안올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달라붙어, 타이타닉이 침몰해 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난, EBS에서 방영한 <타이타닉 메이킹 다큐멘타리>와, 이전에 <시네마천국>에서 보여준, 제임스 카메론 특집프로, 그리고, 케이블텔레비전 Q채널에서 방영한 타이타닉 다큐멘타리를 다 갖고 있다.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도 곧 살 것이고 말이다. 왜냐고? 내가 보기엔 엑스파일보다 타이타닉이 훨씬 역사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UFO탈 확률보다는 금강산 크루져탈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우선, 타이타닉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는 오전 9시 30분부터 2시간동안 승객들의 탑승이 이루어진다. (이 불운의 여객선의 행운의 마지막 탑승자는 디카프리오이다.^^) 그리고, 정오 최종목적지인 뉴욕을 향해 출항하다. 그날 저녁 6시 30분, 프랑스의 Cherbourg에 중간 기착하고, 마지막으로 저녁 8시 10분 아일랜드의 퀸스타운을 향해 떠난다.
다음날 4월 11일. 오후 1시 30분. 퀸스타운을 출항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역사에 남은 타이타닉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이곳에서 찍혀진 것이다. 4월 12, 13일은 잔잔한 파도와 좋은 날씨에 항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4월 14일 일요일. 그날 하루동안 타이타닉은 인근을 향해하는 Noordamm, Caronia, Baltic, Amerika, Californian,Mesaba호로부터 모두 7번의 빙산 주의 무선을 접수한다. 일요일이었던 그날 그배에서는 10시 30분 1등승객을 위한 예배가 다이닝 룸에서 진행된다. 밤 10시 50분. Californian로부터 빙산에 둘러싸여 멈춰서있다는 무선을 접수받는다. 11시 39분. 20.5노트로 달리고 있던 타이타닉 전망대의 견시선원 (그들의 이름은 Fredrick Fleet 과 Reginald Lee이다)은 빙산을 발견했지만, 스치고만다.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말이다.
4월 15일 정오경. 선장 Smith는 선박설계사인 Thomas Andrews로부터 이 배는 2시간 정도밖에 떠 있진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선장은 무선사 (역사에 남기기 위해 여기서 이름을 밝히자면, Harold Bride와 Jack Phillips이다)에게 "CQD"신호를 보내라고 한다.(무슨 약자인지 확인이 안된다. 긴급구조신호쯤 되는 모양이다^^) 당시 타이타닉호의 위치는 북위 41도 46분 , 서경 50도 14분이었다. 선장의 명령은 신속했다. 배가 기운다는 보고 이후, 그는 즉시 갑판에 승객과 승무원을 모이도록 했다. 그 배에는 모두 2,228명의 사람이 있었다. 타이타닉의 무선을 받은 주위의 선박은 많았다. 타이타닉과 같은 회사의 자매선박인 Olympic( 500 miles떨어진), Mount Temple (49 miles away), Frankfort (153 miles away), Birma (70 miles), Baltic (243 miles), Virginian (170), Carpathia (58 miles)였다. 얼어죽기 전에, 시간내에 도착하기엔 어려웠다. 오직 한척 , 10에서 19마일 떨어진 Californian와의 교신은 실패로 끝난다. 멀리 육안으로 조명탄 신호까지 어렴풋이 보였지만 말이다. 첫번째 구명보트는 밤 12시 45분, 그러니까 침몰 시작 1시간도 안되어 바다에 내려진다. 모두 65명이 탈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28명만이 이 구명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2시 5분 마지막 구명보트가 1,500명을 타이타닉에 둔채 바다로 내려진다. 2시 17분. 선장은 승무원에게 마지막 말은 한다. 각자 살길을 찾으라고.. 영어로느("It's every man for himself.") 그리곤 그는 선실로 들어간다.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시간에 Thomas Byles신부는 기도를 드린다. "어두움 골짜기를 지나고..."하는.. 이 시간쯤 해서 선상 악단의 마지막 연주가 멎은 것으로 추정된다. 2시18분. 배가 두 동강이로 나는것을 목격한다. (이 영화에선 조용히 가라앉는다.) 배는 가라앉았고, 구명보트에 있던 사람과 타이타닉에 남았던 사람, 바닷물에 빠진 사람은 모두 차가운 바닷물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1500명이상이 말이다. 새벽 3시 30분 생존자들은 Carpathia가 쏘아올린 조명탄을 보게 된다. 그리고 4시 10분 첫번째 구명 보트가 Carpathia에 의해 올려진다. 망망대해의 대서양의 침몰구역에서 더이상의 생존자는 찾을 수 없었다. 705명의 생존가자를 싣고 Carpathia는 뉴욕으로 향한다. 뉴욕의 White Star 사무소에 보낸 무선은 다음과 같다. "Deeply regret advise you Titanic sank this morning after collision with iceberg, resulting in serious loss of life. Full particulars later."
4월 17일 Mackay-Bennet호가 침몰지역으로 파견되어 사체인양을 시작한다. Carpathia호는 4월 18일 9시 뉴욕에 도착한다. 4월 19일 부터 25일까지 미국상원에 의해 타이타닉 재앙에 대한 조사가 펼쳐진다. 82명의 목격자가 소환된다. 놀랍게도 5월 14일 실제 생존자인 배우 Dorothy Gibson이 나온 "Saved From the Titanic"의 최초 시사회가 있었다. 한달정도 진행된 사체수색작업에서는 모두 328구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친다.
이듬해 4월 타이타닉의 재앙에서 교훈을 얻어 International Ice Patrol 이 조직되어 북대서양해의 빙산과 유빙을 관측하 기 시작한다. 타이타닉의 두번째 자매선 Britannic이 1914년 2월 진수식을 갖는다. 이 배는 2년후 침몰한다.이번엔 빙산이 아니라, 일차세계 대전중 폭격으로...
1980년 들어 미국의 기업가이며 탐험가인 Jack Grimm 이 타이타닉 잔해를 탐사하려고 하지만 악천후와 장비불량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후 그는 몇 년에 거쳐 탐사를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1985년 9월 1일 프랑스와 미국의 합동 과학탐사반 IFREMER/Woods Hole이 깊이 12,500 feet. 에 가라않증앉은 타이타닉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1991년 타이타닉 잔해를 촬영한 필름이 IMAX 포맷으로 공개되고, 94년부터, 런던 National Maritime Museum에서 타이타닉 잔해 관련 전시회가 개최된다. 그리고, 1995년 우리의 제임스 카메론이 P. P. Shirsov Institute와 함께 대서양에 들어가서 타이타닉의 실물을 목도하게 된다.
그럼, 이 타이타닉의 침몰을 다룬 영화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타이타닉이 대서양의 차가운 바닷물에 속으로 사라진것은 1912년 새벽 2시 20분 경이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영화화 되기 시작하였다. 가라앉은지 한달도 안되어 제작된 <Saved From the Titanic>는 사라진 모양이다. 1915년 이태리에서 <타이타닉>이란 제목으로 흑백 무성영화가 만들어졌고, 43년에는 다시 독일에서 85분짜리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나찌의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한다. 1953년 미국의 Jean Negulesco감독에 의해 (바바라스탠윅, 로버트 와그너 주연의) <타이타닉>이 만들어지면서, 영화는 좀더 탑승객들의 드라마에 촛점을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결혼한 영국 상류사회의 Julia Sturges가 결혼생활에 불행을 느끼고, 타이타닉을 타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의 남편도 이 호화 여객선 에 오르게 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러한 타이타닉 승객스토리는 Andrew L. Stone감독에 의해 <Last Voyage, The (1960)>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후, 텔레비전 영화와 다큐멘타리로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하몽하몽>의 색깔있는 감독 J.J. Bigas Luna에 의해서는 <Femme de chambre du Titanic, La (1997)>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오늘 내가 본 영화는 타이타닉의 침몰을 다룬 영화중 잘된 것으로 손꼽히는 Roy Ward Baker 감독의 흑백 영국작품 <Night to Remember, A (1958)> 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심 놀란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임스 카메론과 ILM에 의하여 그대로 복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놀랬다. 제임스 카메론 영화를 깎아 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환상들- 디카프리오가 대표하는 스타시스템과 1997년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거대한 유닉스 컴퓨터가 만들어낸 CG만을 탈색시켜 버리면, 단 1인치도 어김없이 이 영화가 되어 버린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선 몇 가지 점에서 따라가보면, 이 영화는 "확신"을 가진 인류과학기술의 상징이 허망하게 주저앉는 것에 대한 인간의 미약함, 전지전능한 신에의 의지를 그린다. 이것은 카메론에 의해 아주, 우습게도. "저 배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라는 말로 재현된다. 처음 출항후, 대하게 되는 2등 항해사의 넋두리, "1등 선객에게 제공되는 향기있는 비누와 모든 것이 여러분을 최상으로 모실 것이라느 타이타닉 출항관련 신문광고를 보면서 "3등칸 손님은 세수도 안하나?" 그렇다. 이 배는 철저하게 1등 선실과 3등 선실이 나누어져 있다. 그것은 카메론에 의해 그리고, 헐리우드 정통 영화기법에 의해 철저하게 선과 악,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으로 나뉘어진다. 이 영화에서도, 침몰하는 배에서 3등선실은 언제나 3순위이다. 그것은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로 인식하는게 카메론과 의 차이점이다. 이 영화에선 케이트 윈슬렛 같은 시대를 앞서가는 페미니스트도, 디카프리오같은 자유주의자도 없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인지 모른다. 카메론이 과학기술로 침몰광경을 리얼하게 만들어냈느지는 몰라도 말이다.
카메론 영화에서 고뇌하는 지성적 과학자인 선박설계사 앤드류스도 여기에 나온다. 아마도 카메론 영화에서 가라앉던 배에서 마지막에 디카프리오와 케이트가 기울어져가는 선체에서 시계를 쳐다보는 앤드류와 마주쳐서 나누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 웃기게도 똑같은 대사가 펼쳐진다. 앤드류는 한 커플(이 커플은 1등 과 3등의 분단된 커플은 아니지만, 나중에 충분히 카메론버전으로 윤색될 소지가 있는 커플이다) 살아남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방법을 일러주고 말이다.
그리고, 선상 악단 Hartley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곡 "Nearer My God to Thee" 는 사실 실제로 연주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카메론은 그 곡까지 표절한 셈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몇개를 소개하면.
영화 제작자 William MacQuitty는 1911년 5월 31일 실제 <타이타닉>진수식을 구경하였다고 한다. 6살때였다고 한다. 타이타닉 4등선원 Joseph Boxhall이 영화제작의 기술적 자문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Walter Lord의 책 <A Night to Remember>에 바탕을 두고 찍은 것이다. Walter Lord는 저작시 생존자 64명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잠깐 나오는 승객중, Edith Russell이라는 디자이너는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행운의 돼지인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격인 2등 기관사 Lightoller은 생존하여 1,2차대전에서참전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의 침몰광경을 촬영하는데 소요된 돈은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1,000만달러 정도란다. 이 영화에서 가장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한 것은 불과 10마일 떨어진 또다른 선박 Californian호가 구조신호를 접수하고, 가장 빨리 달려와 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당시 24시간 동안 무선신호기를 작동하라는 규정은 없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첫장면은 화이트스타 선박회사의, 인류최고의 과학적 성과물이며, 인류 오만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신형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진수식 장면을 보여준다. 배가 출항하고 나서 30분동안은 배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씩 조금씩 보여준다. 모든 것은 나중에 칼라로 채색되고, 디카프리오가 첨가되어, 활기를 더 띄게된다. 1등실에서는 거들먹되는 돈많은 귀족들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3등칸 손님들은 자기 나름대로 노래를 부르면 신나게 논다. 그리고, 배 밑바닥에서는 열심히 석탄을 떼고 있고 말이다. 배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때 흐르는 음악은 <2001 스페이스오딧세이>이래도 어둠의 유영을 상징하는 <짜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른다. 배의 침몰과정을 이끄는 감독의 솜씨는 카메론 못지 않다. 옥탑의 견시선원에게는 거듭 주의를 주고, 무선사에게는 끊임없이 체크하도로 하고, 지하의 물통이 얼지 않도록 주의 하라며... 모두들 주의주의 조심 조심..강조한다. 그리고, 따분한 1등승객들의 화젯거리는 내일 전속력을 낼것인가 라는 것이다. 카메론은 선박회사 높은사람 때문에 속도를 내다가 빙산에 부딪친 것(사실은 견시요원이 디카프리오 뽀뽀하는것 훔쳐보다가 빙산을 못 봤을 뿐이지만...)으로 이야기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점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유빙이 가득찬 대서양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는 것에는 선장의 지휘통솔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엔 진 해크먼정도의 파워가 있었는데 말이다.
배가 가라앉는 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은 카메론것이나, 이 영화나 똑같다. 만약 자그마한 모니터에 색맹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것이다. 갑판에 떨어진 얼음덩어리로 축구하는 3등선원들. 갇힌 3등 승객들의 반발. 구명보트 앞에서 끝까지 거들먹되는 귀족네들... 물은 차오르고, 위선과 거들먹의 시간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3등 승객들이 도끼로 문을 부술때 바보같은 승무원이 하는 소리 "회사기물 손상죄로 고소하겠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같지 않은가? 모두가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앤드류는 기울어가는 선실에서 그림앞에서, 시계를 쳐다보고만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아닌가?
그렇게 배는 가라앉았고,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영화화되었다. 배에 탄 사람이 많기에 그만큼 극적인 요소도 많았겠지. 2,228명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카메론처럼, 젊은 애들의 러브스토리에 컴퓨터시대답게 재현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호화 여객선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적 요소를 찾을려면 <비터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카메론의 침몰씬은 몇번봐야 질리지 않을까?
카메론 영화나오기 전에 이 영화 한번 봐두는 것도 좋을것 같다. 성공한 혁명만이 혁명이고, 성공한 영화만이 표절의 오명을 빗겨나가기에 말이다. 아니다, 이건 표절도 아니네. 원래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 것이니까..하지만, 생각할수록 좀 그렇다. 드라마적 요소가 너무 일치하는 것이 말이다... (박재환 1998/9/6) New York Times front page April 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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