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9.7.17) (1997년 7월 16일 OCN방송분 리뷰입니다) 어제 OCN에서 정말 뜻밖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바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바론의 모험>이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아주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 찾아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이 <여인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어 영화팬을 황당하게 한만큼 이 영화 또한 제대로 번역되어 출시되었는지는 의문이다. (OCN번역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원제는 <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이다. 'BARON'은 귀족의 지위 중 '남작'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MUNCHAUSEN 남작의 모험담>이 원제목이다. 그런데 '한국'식 영어표현에 '한국인'식 영화제목인 셈이다. 뭐, <남작의 음모>라고 번역안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릴 때 본 동화책-안데르센, 방정환 동화집 말고- 중에 이 책이 있었다. 오늘 영화보면서 그 옛날 보았던 그 동화책의 그 신비로운 삽화가 계속 떠올랐다. 대포알 위에 올라타서 날아가고, 커다란 고래가 물을 뿜고, 마지막에 거인이 바닷 속에 침몰한 배를 꺼집어 올리는 장면은 무척 오래된 기억인데 생생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장면이 생각난다.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어느 날 밤, 남작은 그의 애마를 어느 말뚝에 매어둔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그는 어느 교회 앞마당에서 쪼그린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앗! 나의 애마는? 그때 그 말은 저 교회의 꼭대기 십자가 탑위에 매달여 대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 교회탑까지 쌓였던 눈이 녹아내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과장과 허풍 - 앗, 맞다. 그 책 제목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뭐 이런거 같구나.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MUNCHAUSEN. 이름으로 보아 독일계쯤 되겠지. 발음은 '문츠하우젠'이 엇비슷하겠지. 아님 '문챠우선'이나. 뭐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로저 에버트 영화평에 그 사람에 대한 소개가 몇 줄 있었다.
Baron Munchausen은 실존인물이었단다. 그의 풀 네임은 Karl Friedrich Hieronymous von Munchausen이다. 1720년생이며 1797년 죽었고, 러시아를 위해(당시에는 유럽문화권의 일부로서 제정러시아였겠지..) 터키와 싸운 용사였단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을 적당히 윤색하는 것을 좋아했단다. (우리나라 군대갔다온 남자들은 모두 특공대 출신이듯이 군대생활의 한 특징은 과장과 미화인 모양이다^^) 또한 1785년에 Rudolf Erich Raspe이라는 보석도둑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단다. 이 이야기가 바로 문챠우센 시대의 이야기와 삶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단다.
어쨌든 18세기 초 유럽을 배경으로 아마, 근세기 최초의 '세계인'인 문차우센의 무용담을 담은 이 황당무계, 자유분방한 소설을 영화로 옮기려는 영화인은 많았으리라. 이 소설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돈키호테>적 상상력과 많은 신화를 적당히 모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을 테리 길리엄이 감독했으니 얼마나 또한 '더' 매력적이리오. 사실, 테리 길리엄의 작품 중 작년에 우연히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75)>이란 작품을 보았는데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몬티파이손 시리즈가 아주 낯선 작품이지만, IMDB역대 영화랭킹에서 그 작품은 25위에 올라가 있을 만큼 작품성과 인기를 두루 누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테리 길리엄의 초기 3부작의 하나이다. Time Bandits(81), Brazil(85),그리고 이 <바론의 모험>은 길리엄이 인간의 각 성장단계 (청년-장년-노년)에서 각 세대가 느끼는 상상력의 충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콜롬비아사 작품인데 제작비는 4,600만 달러로 1988년 당시까지만 해도 제작비가 많이 든 작품 중 상위에 손꼽힐만큼 돈을 많이 들인 특수효과 장면이 많다. 우선 그 부분만 보자면, 달나라의 세트, 화산 속 이야기, 달나라에서 밧줄로 타고 내려오는 장면(그것도 아주 짧은 밧줄을 이용하여 마치 마술처럼 연결한다!), 터키 군대와의 대치 장면, 폐허가 된 城 등등.. 매력적인 미술장치였다. 이는 단순히 겉만 번지르르한 CG가 아니라, 인간애가 묻어나는 침울함과 또는 그 반대로 완전히 인간미가 사라져버린 현대 미술사조의 하나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주인공인 문츠하우젠 남작역은 존 네빌이라는 캐나다 출신의 세익스피어극 전문배우가 맡았다. 다른 무슨 영화에 나왔는지도 모르는 이 배우는 상상력 풍부하고, 사고의 폭과 행동의 방향이 아주 유연하다. 그래서 실제로 18세기의 실존인물같은 묘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나머지 터키 궁전의 기하학적, 혹은 변태적인 사람의 모습과 그의 하인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은 전적으로 내가 본 어린 시절의 그 동화책의 일러스트를 고스란히 따른다. 하지만, 존 네빌 말고 인상적인 배우는 세 명이 더 있다. 하나는 당연히 로빈 윌리엄스. 로빈은 달의 왕(he King of the Moon) 역으로 나온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이 괴상망측한 캐럭터는 상상력의 극치이다. 그리고 남작 일행이 겨우겨우 달나라를 탈출하여 지구로 떨어지는데 이번엔 화산 분화구 속으로 떨어진다. 그곳에 그들이 만나는 화산족은 처음엔 거인족으로 보였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각종 무기를 만들어 판다. 칼, 도끼, 창... 하지만, 그들이 가장 아끼는 무기는 레이다가 장착된 대륙간 탄두 미사일이다!!! 세상에 세상에.. 이 곳에서 플레이보이 기질이 있는 남작은 선녀, 아니 여신을 만난다. 보티첼리의 그림 (조개껍질에 있는 나신의 그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럼 등장하는 배우는 "우마 써먼" 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바로 Sally라는 꼬마애로 나오는 Sarah Polley라는 아역배우이다. 상당히 귀엽다. ^^
자, 그럼, 이 영화는 PG등급의 그냥 애들이 보고, 와 신난다 와 멋있다. 하고는 꿈과 희망과 창의력을 키우는 영화로 만족하는가? 그런데, 길리엄 감독 작품은 좀 난해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다. 영화 시작할때 올라가는 자막 "18세기 말. 이성의 시대"라는 것이 범상치 않았음을 이해한다. 당시 유럽은 연금술과 마녀사냥의 어두운 중세는 지나갔고, 과학과 발견, 그리고 발명, 계몽, 발전 등의 사고체제가 휩쓸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대포알을 타고 난다든지, 달나라에 가서 왕과 논쟁하고, 분화구 속에서 여신을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황당한 상상력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돌격해 들어오는 터키군은 바로 저 성문 밖에 포진해 있다. 이제 남작은 어디론가로 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와야한다. 그런 현실적 난관을 풀어헤치는 데는 이성의 도움보단, 이런 상상력의 도움이 더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남작이 달나라에서 왕과 마주친다. 왕은 머리만 둥둥 떠 다닌다. 왕은 이성을 옹호한다. 육체와 붙어 있기를 꺼린다. 그 불가해한 이성과 감성, 혹은 육신과 영혼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한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이성이 감성을 이기면, 인류가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존재하는 한 왕과 여왕, 그리고 남작의 관계처럼 비정상적인 질투와 증오가 싹틀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화산 속의 대장장이가 극단적이다. 비록 여신을 아내로 두었지만, 그는 분노를 삭이질 못하는 것이다.
천상의 싸움은 곧 지상의 싸움이다. 터키의 궁궐에서 목격하는 것은 이성이 증발해 버린 극단적인 처형과 독재가 있을 뿐이다. 남작은 자신의 나이마저 잊을만큼 오래 살면서 이러한 갖은 험악한 꼴을 다 본 것이다. 영화는 그런 어둡고, 암울한 중세의 끝자락과 근세의 시작을 그리는 것이다. 재미있다. 상당히.. (박재환 199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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