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2001-7-26] 우선, <혹성탈출>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혹성'이란 표현은 '행성'의 일본식 표기라고 한다.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주기를 갖고 움직이는 별이 바로 '행성'이다. 하지만, 찰톤 헤스톤의 <혹성탈출> 이전부터 그렇게 불리었으니 아마도 '혹성'이란 말은 이미 우리말화 되었는지 모른다. 영어제목 'ape'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꼬리가 짧은 큰 원숭이로'를 뜻한다. 그러니, 몽키,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 많은 유사동물들 중에 어떤 것이 진짜 이 '행성'의 마지막 주인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듯. 인간도 같은 유인원에 속한다면 말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챨톤 헤스톤이 우주 탐사를 나섰다가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곳은 핵전쟁 이후의 지구였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아주 오래 전 TV에서 방영된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말을 타고 바닷가를 달리던 찰톤 헤스톤은 모래밭에 파묻힌 '횃불을 치켜든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서야 그곳이 지구임을 알게된다. 팀 버튼의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은 어떨까? 어제 한국에서도 시사회가 있었다. 수입사인 폭스사 관계자는 누누이 이 영화의 결말을 알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유주얼 서스펙트>도 아니고, <식스 센스>도 아닌 이 영화의 라스트 씬은 과연 어떠할까?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에펠탑이라도 보일까? 그런데 폭스사 보도자료나 팜플렛에는 흥미진진한 글이 한 줄 추가되어있다. "그러나 원작과는 달리 영화 <혹성탈출>은 지구가 아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고립된 행성이 주요무대가 된다..."고. 그럼, 팀 버튼의 '혹성'은 지구가 아닌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보아야할 것 같다. 영화는 시사회까지 뒤로 미루어가며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듭하는 산통을 겪어야했다. 아마도 폴 버호벤 팬들이 <할로우맨>에서 느꼈을 느낌을 팀 버튼 감독 팬들이 이번 영화에서 느낄 듯 하다.
◇ 여기는 어디인가?
영화는 서기 2029년에 시작된다. 광활한 우주의 커다란 우주선에서는 지구인들이 새로운 실험에 분주하다. 수많은 원숭이들이 우리에 갇혀있고 이들 생물이 지구인을 대신하여 위험한 우주탐사를 펼치게 된다. 그런데 순간 우주공간에서 엄청난 전기자기장이 생기고 지구인들은 한 원숭이를 캡슐에 태워 자기장 속으로 보내어 정체를 탐사하게 한다. 그런데 그 원숭이를 태운 탐사선이 우주의 심연사이로 사라지고, 레오 대위(마크 왈버그)가 그 뒤를 쫓는다. 그는 엄청난 자기장에 휘말려 들어가고 가까스로 가까운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 우주선의 계기판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르락내리락할 뿐,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인지는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늪에 비상착륙 하지만 곧 원숭이 사냥꾼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그곳은 이미 인간은 노예가 되었고 원숭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인간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암원숭이 데나에 의해 그곳을 탈출한 레오는 무리를 이끌고 자기를 구조해줄 지구 탐사선이 기다리고 있을 칼리마라는 땅으로 향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가. 도착했어야할 우주선은 오래 전에 추락한 것처럼 고철덩어리가 되어 있다. 원숭이들은 지구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돌진하고 있다.
◇ 팀 버튼이 그리는 혹성의 지배자
적어도 <비틀쥬스>(국내비디오 출시제목 <유령수업>)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팀 버튼의 영화에 열광하게될 것이다. 그는 이번 영화가 1968년에 프랭크 샤프너 감독이 만들었던 걸작 SF의 리메이크도 속편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줄거리만 언뜻 보아도 이 영화는 별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지난 30여 년동안 월등히 발전한 컴퓨터그래픽의 힘이라면 이 영화가 엄청난 특수효과로 치장된 볼거리 풍부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예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 버튼은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고는 근래 보기 드문 아날로그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요즘 헐리우드 경향으로 봐서는 그다지 풍성한 화면도 아니다. 사실, 털로 뒤덮인 원숭이 무리를 그리는데 그다지 섬세한 CG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광선검이 등장하는 우주전쟁 장면대신 도끼나 몽둥이로 싸우는 원시 시대적 전투장면이 간혹 관객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 볼거리를 최소화한 대신, 팀 버튼은 <화성침공>처럼 여전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 원숭이의 지성의 대결구도이다. 한정된 행성의 지배자는 과연 어떤 생물체가 지배해야 하는가. 영화에서는 두 부류에서 각각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잔인함과 권력욕에 의해 짓눌린다. 원숭이가 인간을, 그리고 후반에서는 인간이 원숭이를 거의 학살 수준으로 격돌하게 된다. 인간의 천재성과 잔인함의 공존이 이끄는 파멸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이 인간을 노예수준으로 전략시켰는지, 그리고 무슨 결정적인 힘으로 원숭이가 한순간에 지배체제를 역전시켰는지는 짐작할 뿐이다. 영화에서는 줄곧 원숭이들이 인간에게서 지저분한 냄새가 난다고 하고, 인간은 잔인하다고 말한다. 감독은 그러한 인간의 잔인성을 그다지 표출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원숭이들 속에서도 애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권력욕이 상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마크 왈버그가 보게되는 '충격적' 장면은 이 영화의 속편을 충분히 만들 여지를 남겨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나 유명한, 그리고 너무나 명백한 주제의식을 가진 오리지널을 다시 한번 그럴듯하게 답습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더 화려하지도 더 시니컬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박재환 200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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