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0.4.20.) <에이리언 2020>이라는 멋진 제목으로 개봉되는 영화가 있다. 시고니 위버가 나왔던 그 유명한 <에이리언>의 메이저 업그레이드 영화는 아니다. 원제는 전혀 뜻밖에도 ‘Pitch Black’이다. 직배사 UIP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디오급 제목으로 개봉시키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핏치 블랙>으로 했더라면 무슨 말인지 한참 머리 써야하니-어쩜 이런 영화는 머리 같은 건 전혀 안 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전혀 새로운, 그리고 아주 익숙한 제목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제목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데이빗 트오히라는 작자이다. <터미널 벨로시티>와 <G.I. 제인> 같은 영화의 각본을 썼던 사람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어둠 속의 공포'이다. 그것은 오드리 헵번이 <Wait Until Dark>에서 느꼈던 공포와 비슷하다. 고립된 공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게 쫓기는 불안과 공포 같은 것 말이다.
배경은 '아마도' 2020년경. 우주여객선 하나가 유성에 충돌하여 한 행성에 추락한다. 10여 명이 살아남는다. 이들 중 몇 명이 고향 지구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끝없는 사막, 이글거리는 태양이 세 개나 떠오르는 죽음의 항성에 내버려진 지구인들에게는 몇 가지 보이는 위험과 보이지 않는 위협이 공존한다. 그 우주선에는 극도의 중범죄자가 한 명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행성에 불시착하며 족쇄가 풀린 것이다. 이제 이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언제 선량한 지구인을 공격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행성에는 분명 지구의 탐광대원들의 흔적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뼈만 남아있다. 어떻게 해서 이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일까?
공포영화의 키워드는 그런대로 다 가지고 있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같은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살인자의 숨결, 고립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아집과 독선, 과학과 종교의 갈등. 그리고 SF영화의 특징도 다 가지고 있다. 관객은 영화시작 5분만에 이 영화의 모든 특수효과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우주선이 유성우에 부딪쳐 행성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감탄할 만할 정도의 속도감과 충격감을 전해준다. 일찍이 메이저 영화에서조차 이런 화면을 선사한 적은 별로 없다. 조용하고도 장엄한 우주의 전경, 유유히 항진하는 거대한 모형 우주선만 보다가 이렇게 급전직하로 추락하는 우주선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니 이런 면에선 이 영화가 결코 허술한 SF인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는 지구인의 단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뜻밖에 그 무서운 중범죄자가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인간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가 람보같이 싸움을 잘하거나 시고니 위버같이 모성애가 있어서가 아니다. 파충류 같은 그의 특수 '눈' 구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만든 이러한 억지 수법에는 한 가지 더 장치가 있다. 바로 일식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최고 살상무기는 어둠 속의 에일리언이다. 커다란 새 모양의 이 괴물은 어둠에서만 활동한다. 그런데, 지금 세 개나 떠올랐던 이 행성에 일식이 일어나고, 수십 만 마리의 새때가 어둠을 틈타 지구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벌떼, 새떼, 매뚜기떼만 하더라도 지구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인데, 이 에일리언 버드는 키가 2.5미터, 팔길이 1.2미터, 날개 길이 2.5미터, 머리 크기가 1.2미터에 달하는 철갑 식인조류이다. 지구인이 이 에일리언 버드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플랫쉬나, 횃불로 이들의 접근을 막는 것. 하지만, 외딴 행성에서 무슨 발전 장비가 있으리오. 게다가 비까지 쏟아지니 말이다.
영화는 그러한 극한의 어둠 속에서 인간들이 희생을 치러가며 우주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대부분의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고귀한 희생을 보여준다. 마치 모성애의 시구니 웨버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올 2월에 개봉되어 짭짤한 수익을 올린 저예산(2,300만 불)영화이다. 생소한 이름의 감독에 유명 배우라고는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SF영화이다. (박재환 20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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