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9-2-17)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은 영화 [체인질링]을 최근 보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누구인가. 올해 78살인 이 노친네는 정말 지칠 줄 모르고 끝없이 문제작을 만들어낸다. 그의 신작 [체인질링]에서도 사회와 사람에 대한 그의 끝없는 고민과 갈등을 느낄 수 있고, 사회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회파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는 옛날 옛적 한 시절 미국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범죄와 그 사회적 여파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사회악에 대한 응징도, 매스미디어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도, 억압받는 여성들의 자기주장도, 그리고 아동대상 범죄에 대한 각별한 사회적 인식제고의 촉구도 깊은 충격과 메시지를 우리가 기대했던 것처럼 강렬하게 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너무 먼 이야기에,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호순이나 유영철이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를 살펴본다. 이 영화 때문에 꽤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체인질링’(Changeling)은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라는 뜻이란다. 아이가 바뀌었다니... 한번 보자.
1928년. 로스엔젤레스의 싱글맘 크리스틴 콜린스는 여느 날처럼 아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9살 난 아들 월터는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다고 한다. “너희 아버지 도망 갔어”라고 놀리는 친구와. 여자 혼자 몸으로 애를 키우는 엄마는 현실적이며, 인생을 살아가며 꼭 기억할만한 충고를 해준다. “절대 먼저 싸움을 걸지 마. 하지만 일단 싸웠으면 네가 끝내!”라고. 그런데 어느 날(1928년 3월 10일) 전화회사에서 특근을 한 콜린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유괴된 것일까? 혼자 밖으로 나가 길이라도 잃어버린 것일까. 엄마의 답답함과는 관계없이 경찰의 말은 “집나간 애들은 열은 아홉은 다음날 아침에 들어온다. 애들은 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차가운 대답만 듣는다. 애는 실종되고 불쌍한 싱글맘의 심장은 타들어간다. 치안 부재를 비난하는 시민의 여론에 경찰이 5개월 만에 아이 하나를 데려온다. “콜린스 부인, 아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달라졌다. 키도 3인치나 줄어들었다. 콜린스는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L.A.경찰은 그런 콜린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콜린스는 구스타브 목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구스타프는 LA경찰의 자의적이며, 폭력적인 그리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줄곧 대립해 왔던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반체제 민주인사’였다.
콜린스는 경찰이 데려온 아이가 자기의 실종된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를 모아 기자회견을 갖지만 경찰에 의해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이곳에서는 ‘12번 유형’이란 게 있다. 경찰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건의 당사자들(여자)은 모두 이곳에 끌려온다. 정신병자 아닌 정신병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전혀 딴 곳에서 풀린다. 캐나다에서 건너온 소년 ‘샌포드 클락’이 경찰에 잡혀오면서 이 15살 소년이 끔직한 고백을 한 것이다. 자신의 삼촌 고든 노스콧이 소년들을 유괴 감금하고는 죽였다고. 20명이나... 피해자 중에는 월터도 있었다고. LA경찰은 엉뚱한 아이를 콜린스의 아이라고 떠들어대었고 콜린스를 정신병원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캐나다로 도망간 고든이 체포 송환되지만 월터의 유해도,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살인마 고든은 자신이 월터를 죽였다는 것을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월터 콜린스 사건과 와인빌 살인마
이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월터 콜린스(Walter Collins)는 실제 1928년 3월 10일 실종되었다. 그리고 LA경찰에 의해 ‘월터’라고 주장하는 아이가 콜린스 부인에게 인계되었고 콜린스 부인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정신병원으로 격리 수용된다.
영화에서 보이듯이 당시 LA경찰의 부패상이나 ‘시민중심’적이지 않은 치안시스템은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당시 LA경찰은 '법' 위에 군림하고 법원의 영장 같은 사법적 절차 없이 경찰의 명령만으로도 ‘골치 아픈 사람들’을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자신들의 뜻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러기에 구스타프 목사 같은 사람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했으리라.
영화에서 끔찍한 와인빌(Wineville) 닭장농장 살인마도 실제 했던 연쇄살인마이다. 14살 소년 샌포드 클라크(Sanford Clark)는 캐나다에서 삼촌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Gordon Stewart Northcott)에 의해 황량한 와인빌의 농장에 머물게 된다. 영화에서는 도끼와 닭장, 수많은 도살용 칼만을 화면에 보여줄 뿐이지만 상상은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14살 소년 샌포드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삼촌에 의해 감금되고, 성적 학대를 당했고, 또 다른 소년유괴에 이용되었고 .. 그리고 때로는 삼촌이 도끼를 건네주며 소년을 죽이라고도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이겠다는 협박에 의해.... 고든 노스콧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과정에서 끔찍한 사실들이 밝혀진다.
함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체포된 고든의 어머니 사라 루이스 노스콧(Sarah Louise Northcott)이 자신은 고든의 어머니가 아니고 할머니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라의 남편(이자 노스콧의 아버지)이 딸을 강간하고 그 결과 고든을 낳은 것이란 것이다. 언론에서는 노스콧의 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어릴 때부터 성적 학대와 근친상간을 하였다고 보도했다. 고든 노스콧은 영화에서처럼 사형당하고 살인공모자 사라는 종신형에 처해졌다가 나중에 감형된다. 이런 끔찍한 사건의 오명을 뒤집어쓴 와인빌은 마을이름을 ‘미라 로마’(Mira Loma)로 바꾼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미국의 잡지 <<피플>>에서는 실종된 ‘월터 콜린스’ 대신 돌아온 아이 ‘아서 허친스’(Arthur Hutchens)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어릴 때 생모를 잃고 일리노이의 계모 품에서 자란 그는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려고 길을 나섰고 그러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캘리포니아까지 왔고 자신이 월터라고 주장한 것이란다. 사건 이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했다. 허친스는 1954년 숨졌다.
실종소년 월터, 불쌍한 콜린스, 사악한 LAPD
그나저나 실종된 아이 월터는 어찌되었을까. 영화에서 살인마 스콧 고든은 교수형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월터’를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에 대해서 확답을 하지 않는다. 고든이 처형된 후 1935년 '데이브 클레이'라는 아이가 발견된다. 이 아이도 고든에 의해 납치되어 와인빌 농장에서 죽은 것으로 사료되던 아이였다. 이 아이의 말에 따르면 고든의 닭장에 감금되어 있다가 밤을 이용하여 탈출을 했다고 한다. 같이 탈출한 아이 중에 월터가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하지만 고든의 추적을 피해 헤어졌기에 그 후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월터는 그 후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에선 LA경찰국장이 청문회결과 파면되고 정의가 마치 이긴 것처럼 묘사되는데 결론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그는 2년 뒤 복직했으니 말이다. 아이를 잃은 콜린스는 죽을 때까지 월터가 살아있을 것이라 믿었단다. 이 불쌍한 아줌마는 1985년 숨을 거두었다. 향년 94세.
살인마 삼촌과 함께 끔찍한 범죄의 현장에 있었던 소년 산포드 클락은 23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고 사회에 나왔고 1991년에 숨졌단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호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이 범인체포 후에도 겪게 되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놈은 죽어야 돼! (박재환 200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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