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무척 기대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트 무비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보았다. <터미네이터>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걸작과 오컬트를 넘나드는 작품 아닌가. 제임스 카메론이 이루어놓은 위대한 작품의 명성을 3편에서는 킬링 타임용 범작으로 팬들을 실망시켰기에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엄청난 기대 속에 개봉된 <터미네이터> 극장판 네 번째 이야기는 어떤가.
<터미네이터 새로운 전쟁의 시작>(원제는 Terminator Salvation이다. 이하 터미네이터T:S)의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은 <터미네이터>와 <타이타닉>의 감독으로 ‘테크놀로지에 관한 영화에 관해서는’ 세계 최정상급 감독이지만 그의 출발이 처음부터 워크스테이션급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그는 영화판에 뛰어들기 전에 트럭 운전수를 했단다. 그러다가 죠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보고는 영화판에 뛰어들었고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B급 영화의 대명사 로저 코먼 감독 밑에서 미니어처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존 카펜터의 <뉴욕탈출>에서 역시 특수효과 담당을 하며 자신의 영화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그가 28살일 때 멋진 영감이 떠올라 시나리오를 한 편 썼다. ‘불구덩이를 뚫고 나온 금속물체’라는 콘셉트와 ‘미래에서 온 사람이 어쩌고..’ 하는 B급 취향의 영화였다. 우여곡절 끝에 저예산영화로 완성된다. 그때는 확실히 몸이 최상급이었던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알몸으로 불쑥 등장하는 장면으로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영화이다.
1984년의 <터미네이터>는 핵폭탄이 터진 미래(1997년)이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전략방어 네트워크가 스스로의 지능을 갖추고는 핵전쟁의 참화를 일으켜 30억 인류를 잿더미에 묻어버린다. 이들 기계들에 맞서 싸우는 인류의 전사 리더가 ‘존 코너’이다. 기계들은 인류와의 전쟁을 끝장내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일종의 킬러로봇인) 터미네이터를 1984년에 보낸다. 존 코너의 엄마(사라 코너)를 죽여서 아예 존 코너를 존재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타임머신 방식’이다. 인류는 그 킬러를 막기 위해 보디가드를 서둘러 쫓아 보낸다. 그 남자 이름은 ‘카일 리스’이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로 추앙받는 <터미네이터>에는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를 보는 지금 세대에겐 그다지 ‘멋진 SF’는 아니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와는 확실히 다른 - 오락적인 요소가 더 강한 - 판타스틱 영화로서의 묘미가 있었다. 1편의 대성공으로 돈도 많이 벌고, 발언권도 세진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역사상 큰 획을 긋는 작품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을 내놓았다.
기계들은 미래의 인류전사 리더 ‘존 코너’의 엄마를 죽이는데 실패하자 또다시 터미네이터를 보내어 어린 존 코너를 죽이기로 한다. 이번엔 좀 더 세련된 ‘T-1000’이란 놈을 보낸다. 전편에서 킬러 사이보그였던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오락실에서 꽃상자에서 총을 꺼내어 T-1000을 쏘아 넘어뜨리는 대반전은 영화사상 가장 멋진 대반전으로 기억된다. 악당이 선인으로 바뀌었으니!!!!!! 어쨌든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면서 터미네이터는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터미네이터가 끝났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탐욕스런 영화제작자이다. 이야기 만들어내기에는 천재적인 사기술을 가진 이들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뒷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3편도 만들어졌고, 이번에 4편도 만들어졌다. 물론 그 사이에 TV판으로 <사라코너 연대기>도 만들어졌다. (하다하다 안되면 프리퀄도 만들면 된다)
우려 반 기대 반 속에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 개봉되었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제작자는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이라고 떠들고 있다. 여하튼 제임스 카메론도 없고, 아놀드 슈왈츠네거도 떠나갈 게 분명한 터미네이터는 확실히 또 다른 의미의 B급 영화가 되어가고 있다.
<터미네이터 T:S>는 2004년 감옥에서 시작된다. 1급 살인범이 독극물에 의한 사형집행을 받는다.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서 시신기증을 부탁한다. 이 남자가 나중에 반인 반기계의 터미네이터가 될 모양이다. (으악! 스포일러다!)
<터미네이터 T:S>는 인류 핵전쟁 발발 후인 201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판의 CG가 이루어낸 미래세계의 모습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최첨단의 금속성 초고층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저항군의 모습은 이라크에 나가있는 미군 야전부대를 연상시킨다. 스카이넷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모습은 구식 전쟁의 레지스탕스 전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항군은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며 초보적인 통신수단을 활용하여 공동연합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저항군에는 잠수함도 있고, 전투기도 있다. 아마도 대형 군사기지도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스카이넷은 규모가 더욱 크고, 더욱 최첨단이다. 여기 저항군을 이끄는 리더 ‘존 코너’가 존재론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적을 무찌르든지 아니면, 과거의(미래의)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을 구할 메신저로 보내질 ‘카일 리즈’를 구해야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도 반갑게도 - 한편으로는 조금 안쓰럽게도 -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나오긴 한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한다는 한국계 배우 문 블러드굿도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온다.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력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워낙 유명한데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뜻밖에도 장기기증에 싸인한 중범죄자 마커스(샘 워싱턴) 이다. 그의 터프한 연기가 둔탁한 터미네이터 전쟁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한다.
오리지널 <터미네이터>가 개봉한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터미네이터2>보다 더 휘황찬란한 SF가 쏟아지는 요즘, 오리지널 <터미네이터>에 대한 향수만 기억하고 이번 영화를 즐긴다면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그런대로 재밌다. 새로운 캐릭터도 반갑고, 전작들과 얼기설기 연결시키는 ‘눈에 띄는’ 설정들도 흥미롭다. <T1>에서 <T2>로 넘어가며 킬러가 보디가드로 바뀌는 설정만큼이나 마커스의 인물설정도 꽤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은 맥지(McG)이다. 누구냐고? <미녀 삼총사>를 감독했던 사람이다. 우리가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너무 큰 실망도 할 필요가 없다. 저예산 B급 <터미네이터>가 정말 끈질기게도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니 말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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