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9.3.1.) 갑자기 재미있는 영화가 보고 싶어 동네 비디오 가게에 달려갔다. 재미로 보자면 한때 인기 있었던 이 영화를 어찌 빼놓으리오. <레이더즈 -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 (Raiders of the Lost Ark)>이다. 1981년 개봉작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 작품이네. 이것도 20주년 스페셜 에디션으로 나올까? 인터넷으로 보니 그와 관련된 소식은 없고, <인디 4편> 소식이 간간히 흘려 나온다. <스타워즈>의 죠지 루카스와 <죠스>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 007보다 재미있는 영화 하나 만들어보자" 이렇게 의기투합해서 만든 영화였다. 이 영화는 속편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3편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만들어져서 미국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와 관련된 용어로는 제트코스트 무비, 클리프행어 무비, 숨 쉴틈 없는 논 스톱 액션 어드벤쳐 필름, 박스오피스 메가히트 섬머무비, 블록버스트 등등이다. 스필버그가 어디서 말했듯이 자신은 이 영화를 진정한 B급 무비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스카랑은 상관없이, 예술성은 접어두고, 신나는 모험물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적어도 죠지 루카스의 입김을 볼 수 있는 장면이 많다. 페루 정글에서 탈출할 때 타게 되는 비행기는 OB-CPO라고 찍혀있다.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와 로보트 C3PO에서 따온 것이란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스타워즈가 고전짜집기였듯이 이 영화의 기본적 이미지도 그러하다. 중절모의 해리슨 포드는 고전 - 딱 집어 말하자면 <시에라마르다의 황금>의 험프리 보가트이다. 마지막 장면 - 성궤를 엄청난 규모의 창고 속으로 보관하는 것은 <시민 케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미국 헐리우드의 막강 파워맨 죠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재미있는 영화로 작정하고 만든 영화를 한번 보다. 안전벨트 메고 말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인디애너 존스 박사가 정글을 뚫고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독화살과 비밀 장치를 헤집고 들어가서는 황금 신상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곧이어 동굴은 무너지고, 함께 온 자들이 배신을 하고, 박사는 죽자사자 달려서 겨우 동굴을 빠져 나오니, 이번에 인디언들이 활과 창을 겨누고 서 있다. 그리곤 그의 영원한 라이벌 고고학자 벨로크란 작자가 그의 신상을 고스란히 빼앗아 가 버린다. 인디박사는 또 열심히 달려서는 그 OB-CPO를 타고는 달아나다. 이번 모험에서 그는 완전히 허탕친 것이다.
인디애너 존스는 고고학 박사이다. 채찍을 잘 휘두르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멋진 히어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다. 어느 날 대학교 강의실로 미국정부의 정보국 사람이 찾아와서는 몇 가지 물어본다. 우리 요원이 이집트에서 독일로 보내는 통신을 도청했는데 그 내용은 "Tanis development proceeding. Acquire headpiece. Staff of Ra. Abner Ravenwood, U.S...." 란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고고학자 인디박사는 아주 신나게 설명한다. '타니스'는 사라져버린 성궤가 있을지 모르는 곳이란다. 성궤는 십계명을 적은 돌조각을 담아둔 궤짝이었다. 영화 <십계>에서 찰톤 헤스톤이 두 손에 뭔가를 번쩍 들고는 땅에 내려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을 써놓은 돌(stone tablets)이다.(그 당시엔 종이가 없어서 돌판에 글을 쪼아놓았다) 그걸 모세가 헤론 산에서 깨버린 것이다. 그 부서진 조각을 유태인들이 모아 성궤에 집어넣었고 그들이 캐논 Canaan이란 곳에 정착하여서는 솔로몬의 신전이라 불리는 곳에 보관하던 중 사라진다. 그리고 알려지기로는 이집트의 파라오 Shisha가 기원전 980년경 예루살렘에 쳐들어왔을 때 그걸 가져갔고, 그 돌이 지금쯤 타니스란 곳의 영혼의 벽(the Well of Souls)에 묻혀있을 것이란다. 애버너 레번우드는 자신의 고고학 스승이며, 이런 내용에 있어선 전문가였단다. 그래서 인디애너 박사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그 성궤를 손에 넣으러 이집트로 날아가게 된다. 물론 가기 전에 레번우드 박사의 딸을 찾아 나선다. 혹시 무슨 정보가 있을까 해서 말이다. 레번우드의 딸 마리온은 네팔 산골자기에 술집을 하고 있다. 옛날에 마리온은 인디를 무지 좋아했었는데 인디는 모험이 더 좋아 떠나버린 것이었다. 레번우드 박사가 남긴 목걸이 "라"의 표상에는 타니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었다. 그것을 노리는 일당이 또 있었으니 바로 독일 나찌 무리이다. 히틀러가 ‘이런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정보요원, 세뇌된 고고학자들을 풀어서 성궤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오컬트라고 하고 한다. 요즘 컬트무비라는 말이 유행인데 컬트의 어원쯤 된다. 신비로운 숭배의 대상물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자 그럼, 카이로의 사막 어딘가에 파묻혀 수천 년을 잠들어있는 성궤를 찾는 모험담을 보자.
스필버그는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위태위태하게 인디박사를 달리고, 뛰고, 처박고, 싸우게 만든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트럭 밑바닥에 매달려 가는 인디박사 장면이다. 요즘이야 CG로든 스턴트맨이 하든 이런 장면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박진감 넘치는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이 장면 촬영담을 보니, 길바닥에 땅을 얕게 파고는 모래를 살짝 덮어서는 그 위로 해리슨 포드가 질질 끌려가는 식으로 촬영한 것이었단다. 어쨌든 몸을 던지는 해리슨 포드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신나는 어드벤처를 즐기게 된 것이다.
결국은 성궤의 엄청난 위력을 맛보고, 인디애너 존스 박사는 나치 손에 넘어갈뻔한 인류의 보물을 안전하게 미국 땅에 옮겨다놓으며 영화는 끝.. 참, 끝나기 전에 성궤를 보관하는 창고를 보여준다. 거대한 격납고 같은 곳에 층층이 쌓여있는 궤짝들. 마치 <엑스파일>에서 봄직한 미국정부의 비밀 보따리들 같다. 성궤를 넣은 궤짝에 찍힌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TOP SECRET, ARMY INTEL 9906753 DO NOT OPEN!
자, 여기까지가 재미있는 영화이야기이고 이제 재미없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생각해 보자.
성궤는 인디애너 존스 박사가 죽을 고비를 다 넘기고 찾아왔는데 미국정부가 가져가서는 특급연구원이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넌 그만 가봐 그런다. 자. 그럼, 여기서 우리는 ‘인디 박사=대학연구소’가 그 성궤를 가지지 못한 점에 대해 분개해야 하는가? 그 성궤는 이제 미 합중국 재산이 된 것인가?
몇 해 전 유럽 알프스 산맥에서 독일인이 시체 하나를 발견한다. 처음엔 눈 속에 파묻힌 조난자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시체는 5,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파묻힌 원시인이었다. 피라밋 속에서 발견된 인공방부제 사용의 인체가 아니라 자연산 원시인인 것이다. 엄청난 과학적/고고학적 대발견이다. 그런데 때 아닌 재산권 논쟁이 붙었다. 발견자의 나라 독일을 포함하여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간의 내 땅에서 나왔다는 영토논쟁이 불거진 것이다. 그리고 지각변동 사실까지 곁들여 각자 자기 조상이라고 우기는 고고학적 코미디가 잠깐 벌어졌다.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문화유산, 자연유산의 소유권은 보통 그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 누가 발견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성궤가 정말 있다면 그것은 이집트 것도, 이스라엘 것도, 미국 것도, 독일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 누구거지? 예수님은 국적이 어디였지?
여기에 우리나라가 관여되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하나는 우리나라 흑백필름 <아리랑>의 소유권과 프랑스가 가져가버린 <규장각-외규장각>도서이다. <아리랑>영화 필름은 원래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우리네 조상들의 무지와 몰이해로 그 많은 것들이 다 소실되고, 오직 바다 건너 일본사람이 갖고 있는 필름이 단 한 벌 남아 있고, 그걸 수십 년 동안 제발 돌려주세요.. 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건 아쉽게도 우리네가 절대 우리 것이라며 돌려달라고 못할 성질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있는 것이라도 잘 보관해야겠다. 우리가 갖고 있는 최고의 필름은 해방이후 것이라나.
문제는 규장각 도서이다. 대원군의 선교사 탄압에 대응하기 위하여 프랑스군이 우리나라 서해 앞바다에 나타난 것은 1866년 10월. 이른바 병인양요이다.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도서들을 약탈해 갔다. 1천2백12종, 6천4백 책 중에서 프랑스군은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는 3백40여 책을 본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불지른다. 그 문서들이 파리국립도서관 분관에 수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75년이다. 마침 그곳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여사에 의해서이다. 당시 프랑스측 기록의 전리품 목록에 따르면, 구식/신식 대포 80문, 화승총 1만정, 다량의 화약, 비단, 무명, 도기, 쇠가죽, 쌀, 소금, 마제은 49만7천프랑, 진기한 서적 약 3천권, 문헌으로서 귀중한 실록 60권, 고운 비단으로 장정된 서적 수권, 붉은 함에 담긴 옥새 9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단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고문서 중 한 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팔려가서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고 한다. 이들 문서에 대한 반환요구는 YS-미테랑 시절부터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당시 미테랑은 TGV팔아먹기 위해 줄 것 같이 나오다가 지금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말이다. (외교적 제스츄어로 한 권 돌려줄 때 프랑스박물관 여직원이 절대 안 된다고 울고불고 하였다고 한다. 프랑스 입장에선 문화재를 무단유출시킬 수 없다고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져온 그 많은 것들에 대한 우려도 깔려있다)
<1999년에 쓴 글이라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겠네요. 하지만 기본 생각은 변함 없읍니다.>
그러나 난 지금 프랑스를 욕할 생각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한다. 우리나라 병인양요 즈음하여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중국 이화원에 쳐들어갔었다. 서태후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무식한 이교도 영불연합군이 놓은 불로 이 이화원은 열흘 밤낮을 계속 타올랐을 만큼 규모가 컸었다. 그 당시 영불연합군이 약탈해간 유물 - 물론 군인들은 금,은,보석만을 긁어갔지만, 조금 심미안이 있었을 장교들은 온갖 그림, 문서류를 실어갔다. 못 가져가는 것은 불태우고 말이다. 오늘날 그 보물, 보석, 화폐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도자기, 그 그림은 돌려줘야하지 않을까? 이는 엄청난 규모이며, 한 두 나라의 선심으로 될 문제가 아님에는 분명하다. 수백 년간 약탈된 이집트의 보물들, 제정 러시아 붕괴 후 (독일의 모스크바,레닌그라드 침공당시) 약탈되어간 보물들, 그리고 우리가 짐작도 못할 1,2차 대전당시의 피식민지국가들의 그 많은 국가유산을 다 어떻게 찾고,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이 일제시대 때 가져가버린 그 많은 유산들은 다 어쩌고..
실제로 뺏고 빼앗긴 많은 나라들이 서로 유물을 제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2차 대전당시 프랑스에서 가져간 유물들이 지금 러시아에 있고, 독일이 훔쳐간 러시아 제정시대 유물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백여 년 동안 빼앗아간 유물은 그런대로 "너가 훔쳐갔잖아"가 가능하지만, 그 옛날의 물건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가져갔던 이집트의 옛 문물들을 지금 되돌려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전 세계 박물관의 재산권 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껍데기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훔쳐간 나라, 가져간 나라의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들 조상을 욕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고, 비호하기에 급급하다. '문화유산이란 인류 공통의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누가 보존하든, 문화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보존할 능력이 있는 나라가 그것을 보존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나라의 많은 박물관, 도서관의 유물 보존 상태는 정말 형편없다. 아마 대학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 학교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쯤은 다들 알 것이다. 그런 박물관에 보존된 것들이 값이 나가든 나가지 않든 그 유물 보존 상태를 보라. 도둑이 안 들것 같은가? 비가 오면 안 샐 것 같은가? 똑 같다.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의 보존 실태도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란다. 우리나라 국립문서보관소 실태도 마찬가지란다. 항온 항습장치, 카메라 후라시 터질 때의 미세한 변화, 그 모든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문화재 보호에 관한 시설과 그러한 인식조차 형편없는 우리네들이 문화보존의 기치를 내건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텔레비전 프로 중에 <진품명품>을 비난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문제 삼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문화를 문화로 보기보다는 치부수단으로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현재로선 차라리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자조섞인 소리까지 있다.... 있는 거라도 제대로 아끼고 관리하고, 보관하자. 더 빼앗기지 말고. 그리고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국제법을 제대로 배우고, 우리 것을 당당히 찾아오는 길을 연구하자. 이왕이면 그 동안의 손해배상과 관람료,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까지 받아내고 말이다.... (박재환 19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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