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

2019. 9. 17. 15:24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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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작년에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 두 편으로 미국 평단의 스포트라이트를 스티븐 소더버그가 29살의 나이에 만든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트래픽>에서는 촬영감독까지 맡았었다. 이 영화에서는 각본과 편집까지 혼자 했다. 그가 L.A.를 여행하며 8일만에 완성한 시나리오로 1,8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완성시킨 이 영화는 그때보나 지금보나 확실히 문제작이다.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그해 깐느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제임스 스페이드는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말이다. 이때까지 작가 감독이 귀했던 미국영화계에서 그는 새로운 영상작가로 각광받게된 것이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제목만으로 보아도 백만 불짜리 영화이다. 적어도 제목만으로도 한번쯤은 보고 싶어지는 영화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꽤 오래 전에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아직도 제목과 더불어 영화내용이 회자되는 추억의 걸작인 셈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신작 <오션즈 일레븐> 개봉에 즈음하여 극장 갈 시간이 없어 대신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봤다. 옛날에 한번 본 기억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영화는 이런 영화(왠지 사적이며, 은밀하며, 포스트 모더니즘적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빠져들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배역은 30대 전후의 전형적인 미국 남녀 4명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여자주인공 앤(앤디 맥도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그녀는 지금 정신과 의사에게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인가 남편과의 부부관계가 사라진 상태이다. 권태기? 대신 앤은 집안을 청소하며 나오는 쓰레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지구상에서 쏟아지는 이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하고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그의 남편인 변호사 존(피터 개러허)는 열심히 바람을 피우고 있다. 누구와? 놀랍게도 처제인 신시아(로라 산 지아코모)와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신시아는 맹랑하게도 집에서 섹스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니보다 더 잘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바보같은 언니가 쓰레기 문제를 고민할 동안 말이다. 이런 불안한 비밀이 유지될때 한 남자가 등장한다. 죤의 오래 전 룸메이트인 그레이엄(제임스 스페이더)이 근처로 아파트를 구하러 온 것. 별다른 삶의 재미를 못 느끼던 앤은 신비스런 행동의 그레이엄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날 둘이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남편과의 섹스는 만족스러운가라는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이어서 곧바로 그레이엄은 자신의 비밀을 밝힌다. 자신은 발기불능 환자(impotent)라는 것이다. 섹스리스(sexless)한 앤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레이엄에 대해 동정을 느끼게된다. "왜?" "어쩌다가?".. 그런데 앤은 그레이엄이 뭔가 색다른 취향, 취미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레이엄은 몇년동안 줄곧 여자들의 은밀한 경험담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앤이 보게된 테이프에는 놀랍게도 여자가 자신의 첫번째 경험담과 자신의 짜릿한 섹스 라이프를 그레이엄의 카메라에 토로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테이프 속의 그 여자는 비행기 안에서 행했던 짜릿한 자위행위의 순간을 말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10년 전에 출시된 비디오에서는 다음 장면이 잘렸지만..) 앤은 이러한 음란한, 혹은 처량한 (이 영화가 처음 국내에 개봉되었던 1990년대라면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변태같은 악취미를 가진) 그레이엄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동생 신시아의 대담하고 노골적인 돌진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언니에 대한 반발 혹은 열등감으로 존과의 육체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그는 이내 이 발기불능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는 이내 그의 '위험한 비디오 유희'에 동참하게 된다. 앤은 동생의 위험한 장난과 더불어 자신의 남편과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앤은 그레이엄에게 자신도 비디오 인터뷰를 하겠노라고 밝힌다. 물론, 뒷 이야기는 존과 앤은 이혼을 할 것이고, 앤과 그레이엄은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이다.

영화는 비디오 매체를 통해 섹스에 대한 자신의 은밀한 경험과 환상을 털어놓는다는 지극히 매혹적인(내게만?)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다. 인터뷰를 당하는 여자들은 섹스를 통해, 혹은 카메라 앞에서의 자위행위 경험담을 통해 두번 다시 경험하기 힘든 올개즘을 느꼈을 것이다. 앤의 대사를 통해 섹스리스한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진지한 섹스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이나 내용으로 보아서는 누구에게나 유혹적이지만 실제 보고있노라면 그러한 처지에 놓인, 혹은 그러한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낀 사람에게는 또다른 인생의 한 면이 느껴질 영화인 것 같다. 

앤은 그렇게 자신의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박재환 20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