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인 러브] When Shakespeare met Gwyneth

2019. 9. 17. 15:2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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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책 중에 복거일 씨의 <비명을 찾아서>란 것이 있다. 요즘 식으로 치면 '역사대체가상환타지소설'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일제통치가 36년만에 끝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성공적으로 조선점령,통치에 성공하고, 한글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그래서 반도인 조선인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자가 없이 지내다가, 주인공이 어느날 이상한 문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자신의 조상(조선)의 고유한 글자란 것을 알아내고는 잃어버린 역사,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었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감동깊게 보았다. 요즘 와서 흔히 보게되는, 유치한 국수주의적 일본쳐부수기와는 분명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난 항상 왜 그 소설이 영화화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늘 이 영화를 보고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났다. 

셰익스피어라는 영어권 최고의 작가가 있었다. 영문학사에서, 아니 전체 인류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문필이었다.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엄청난 찬사, 논란의 여지까지 문학적인 수사로 안겨줄 정도의 이 당대의,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극작가는 얼마전 영국 BBC방송국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인 1위로 선정되었었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잉글랜드 중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런던에서 이런저런 연극의 대본을 썼었고, 이런저런 성공을 거둔 후, 말년에 고향으로 내려가 일생을 마쳤다.(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와 같은날 죽었다-1616년 4월 23일)라는 野史 비슷한 기록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위대한 극작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수백년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완벽한 파악은 못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라는 황당한 주장에서부터, 그는 이름만 빌려준 대명작가였다는 설까지.. 그가 죽고 나서도 별 이상한 소문과 전설에 휩싸였다. 그리고 세월은 휭-하니 흘려 이제 무대위가 아니라, 스크린에서 그는 또 한번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의 작품은 지겹도록 다시 울거먹고, 지겹도록 재방송되며, 지겹도록 재해석되고, 지겹도록 리메이크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하나인데, 오손 웰즈, 케네스 브네넌, 로렌스 올리비에,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까지 셰익스피어의 직계-방계 영화인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제 여기에 또다른 셰익스피어가 등장하니, 바로 21세기를 눈 앞에둔 헐리두드적 상상력의 극치 로멘티스트 셰익스피어를 목격하게 된다. 여왕의 말 한 마디에 극장의 존폐가 달려있고, 여왕의 말 한마디에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글 한줄로 밥벌이를 하던, 당대의 문필가 셰익스피어가 그 고갈된 문학적 창의력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되살렸고, 어떻게 그 아름답고, 가슴 뛰게 하는 열정의 대사를 써내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예술작품 창작의 근원은 바로 사랑- "파워 오브 러브"인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빠진 그 시대의 여인은 누구일까. <불멸의 여인>은 바로 기네스 펠트로우였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내가 기네스 팰트로우를 만났더라도, 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평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도도하고, 자신감에 차 있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기네스 펠트로우를 보라. 셰익스피어는 그녀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녀에게서 사랑을 알고, 그녀 때문에 펜이 필요했고, 그녀를 위해서 종이가 사용되어졌던 것이다. 

16세기 진탕물과 꾀죄죄한 옷가지를 걸친 영국의 극장가로 날아갔다. 지금 영국 런던엔 두 극장이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두 극장엔 걸출한 극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Christopher Marlowe와 셰익스피어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언젠가부터 도대체가 '글'이 안 떠오르는 것이다. 오 마이갓. 글이 안 떠오르다니... 오 마이갓... 그러던 그가 사랑에 빠지게되고 다시 문장이 술술 풀리게 된다.^^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그네들의 헛소리만이 아닌 것은 그만큼 그의 글과 그의 문학성이 세월이 바뀌어도, 시대가 바뀌어도, 문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찬미받을 그럴 작품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독도와도 바꿀 수 없는 영화평론가"(물론 수사법임. 쓸데없이 시비걸지 말 것!) 하나쯤은 키워야하지 않을까? ^^

이 영화 감상 포인트.

하나. 쥬디 덴치가 여왕 엘리자베스도 나온다. 그녀는 젊은 시절 연애하다가 상처를 입고는 평생 독신이었다. 중국황제(男)가 주지육림에 빠지는 것과는 비교하면 참 불쌍하다. 그녀가 Lord Wessex (웨섹스)에게 말하는 것. "기네스 팰트로우는 딴 남자랑 잤구나. 여자만이 느낄 수 있지."라는 말에서 이미 여왕님께서는 심리학을 상당히 공부한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감히 무대에 선 것에 대해, 기네스에게 그런다. "남자가 하여야 할 일을 여자가 할 때의 마음을 알지..." 남자가 하던 왕의 역을 엘리자베스가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그 어려움과 혼자만의 고통을 알리오. 참으로 매력적인 대사였다.

둘, 뭐니뭐니 해도 기네스 펠트로우의 매력. 처음에 이 여자 이름 외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블러드라인>이라는 올가미 씌운 영화에서 날 유혹하더니 이 영화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기네스다!!!!! 가짜 콧수염을 기르고 깡총깡총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그녀를 보라. 그리고 창가에 어둠이 내리고 침대 위에서 남자 옷을 벗어던지고 한 여인네로 다시 피어날 때의 열정의 부드러움을 보라.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세르반테스라도 사랑에 빠지고 말리라. 좀 유치하지만 둘이 첫날밤을 보내고 비올라 팰트로우가 그런다. I would not have thought it. there IS something better than a play! (이런 건줄 몰랐다. 플레이(연극각본)보다 더 좋다. 

셋, 그래도 이 영화는 세익스피어 영화이다. 세익스피어는 위대한 작가이다. 오래 전에 강수지(미국에서 공부한 가수답게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영어발음은 정말 본토발음 수준이더구나)가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가 미국에서 연극을 했다고 하니,사회자의 강권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영어로 뭐라 뭐라 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한 대사는 "로미오, 어쩌구 저쩌구"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OST에 들어보면, 대사가 나오다가 그 다음에 줄리엣이 그만 키스하며 "응"하는 짧은 신음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 장면이었을 것이다. 난 그때 내 기필코 강수지를 캐스팅하여, <가짜 로미오와 진짜 줄리엣> 뭐 그딴 영화 만들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강수지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보고 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들이 마구 쏟아진다. 내가 중고등학생쯤 된다면 아마, 그 영어대사를 다 외워 버릴 것이다. 그래서 여자친구 앞에서 마구 지껄일 것이다. "오, 줄리엣 매일 그대와 함께 아침태양을 받으며 어쩌구 .." "저 소리는 아침을 깨우는 자명종이 아니라, 밤을 부르는 야경꾼의 징소리예요.. " "그녀는 상사병의 아픔과 함께 치료제도 갖다 주구나.."(Like a sickness and its cure together.) 저쩌구.. 정말, 세익스피어는 위대한 작가이다.

넷. 마지막 장면도 멋있다. 셰익스피어는 줄리엣 펠트로우와의 다짐대로 새로운 작품을 쓴다. 한 여자가 배를 타고 가다 폭풍우를 만나고 혼자 살아남아.. 어쩌구저쩌구 인데 <피아노>와 <타이타닉>의 장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게 된다. 

짧게 못 끝낸 점 미안하고요. 이 영화는 비디오로 나오면 당장 구해서, 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듣고 또 들어도 될 만큼 정말 멋진 명대사가 많다. 이전에 <시라노>란 비디오를 보며 흉내내고 싶었는데 불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했지만, 이건 정말 실용성있는 대사가 많다. "다음엔 내 차례다. 이건 지독한 약인걸.." 

 박재환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