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7. 15:25ㆍ미국영화리뷰
<샹하이 눈>이 성룡영화라는 것은 110분의 본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NG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룡의 매력은 그 NG장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기를 하다 실수하여 겸연쩍어하는 모습이나, 커다란 위험을 넘긴 후 파안대소하는 주먹코 성룡에게는 일반 톱스타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느낄 수 있다. 성룡(재키 찬)의 미국 진출은 이미 10여년 전에 <베틀 크리크>나 <캐논볼>같은 영화로 한차례 시도한 적이 있었다. 지금와서는 성룡의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로바틱한 묘기나 목숨을 건 스턴트 장면이 오히려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단지 아시아에서 온 이소룡의 아류, 혹은 우스꽝스런 포즈의 묘기꾼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성룡은 조용히 아시아 땅에서 차츰차츰 인기와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성룡은 아시아 최고의 배우로 성장했고,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마침내 <러시 아워>로 미국을 공략하였다. 물론 성룡은 <취권> 등의 몽키 액션극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곧장 자신의 영화의 제작 스타일을 세계화하기 시작하였었다. 그가 제작한 영화의 배경은 동남아로, 미국으로, 호주로, 알래스카로, 러시아로 마구마구 확대되어나갔다. 나머지 홍콩 스타들이 홍콩 뒷골목을 배경으로 주먹질을 할때 성룡은 세계인을 상대로 자기자신을 상품화하였던 것이다.
<홍번구>같은 영화를 제외하고 성룡이 직접 미국 메이저와 손잡고 만든 두번째 헐리우드 작품이 <샹하이 눈>이다. 관객들은 이젠 안스러움이 느껴질만큼 확실히 나이든 성룡의 얼굴주름을 지켜봐야한다. 그러나 한때 그렇게 '정말' 날고, '정말'기던 성룡의 신화를 아련히 기억하며 신천지에서 펼치는 새로운 액션 씬을 여전히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려진바로는 성룡은 '문맹'이다. (어릴때 팔려가서 매맞아가며 경극을 배우느라 어린 시절을 다 보낸 그의 인생자체가 극적인 것이다) 성룡의 자서전인나 그가 각본을 담당했다는 수많은 영화는 분명 그의 머리에서 나온 구술 문서들에 불과하다. 이 영화 또한 그러하다. 그가 <러시 아워> 촬영할때 "중국의 쿵후보이가 서부개척시대의 미국에 떨어져서 활극을 펼치는 이야기가 어떨까요?"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대극이 실제로 제작된다.
물론 연대기적으로 조금 뒤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조상들이 커다란 배에 실려 하와이로 건너가서 그곳의 수수농장에서 피땀을 흘릴때, 중국조상들은 더 커다란 배를 타고 서부로 실려와서는 미국의 대륙횡단 철로 공사에 피와 땀을 쏟았었다. 이미 아메리카와 청나라에는 그러한 가교가 있었으니 궁중 근위대 한명이 미국에 건너오게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비행기도 없이 이틀만에 황금 천냥을 공주에게 넘겨줘야한다는 설정이 영화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웠을 시대임에 분명하지만.
<마지막 황제>에서 보여주었던 그 웅장하면서도 자폐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자금성'에서 페이페이 공주가 납치되면서 영화는 중국을 떠나게 된다. 서부개척시대에 공주를 구하려 도착한 성룡에게는 이제 인디언과 무법자들, 보안관과 총싸움이 기다리는 것이다. 주먹코 성룡을 온전히 믿을수 없었든지 아니면 흥행의 안전판을 노렸든 것인지, 미국제작자들은 성룡 옆에 또다시 멀쑥한 미국배우를 하나 붙였다. 오웬 윌슨이라는 배우를. 이 뺀질거리는 허풍선이 악당과 함께 성룡은 공주를 구하고 사랑을 구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CF감독 출신인 톰 다이는 이 영화에서 성룡의 장기를 적절히 살려내고 오웬 윌슨을 적절히 키워주며, 헐리우드 오락영화 공식에 성룡식 코미디를 가미시켰다. 그러한 새로운 방식은 즐거운 영화를 만드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가 성룡영화에서 기대하는 엄청난 스턴트 장면이나 성룡이 직접 해내는 위험한 장면은 사실 미국이기에 더욱 어려운 형편이 되어 버렸다. 성룡의 위험한 연기는 미국영화산업에 있어서는 허용할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니 말이다. 성룡이 홍콩에서 영화제작을 할때는 머리를 다쳐 반년 가까이 영화촬영이 중단되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미국의 영화산업은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지 않는다. 성룡의 위험한 연기는 그만큼 영화제작비를 상승시키고(보험문제), 배우조합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성룡은 나이때문에, 그리고 미국의 영화제작 시스템때문에 좀더 차분하고 아기자기한 - 덜 위험한 액션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가 말편자를 가지고 묘기를 부리는 것은 이전에 그가 하던 수많았던 소품이용의 묘기와 다를바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는 또한 몇몇 클래식 서부영화에 대한 낭만이 엿보인다. 마지막 장면이 <내일을 향해 쏴라>의 패러디인 것을 포함하여, 와이어트 어프나 반 클리프같은 이름이 귀에 익다. 그리고 <하이눈>스타일이 이 영화의 묘미. 성룡이 오랜만에 돌아온 종루에서의 결투 장면 또한 볼거리이다.
이 영화에서 교류하는 동서양의 만남은 결코 배격과 갈등이 아니라 웃음과 여유이다. 존 웨인을 연상시키는 장 웨인(극중 그의 이름은 정확히는 '장 위엔'이다)과 페이 페이 공주, 그리고 하다못해 청조의 황궁 '자금성'을 영어로 옮긴 포비든 시티(Forbidden City )마저 미국인에게는 멀고먼 엘리스의 나라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영화에서 성룡에게 '중국어랍시고'하는 "사요나라"라는 인삿말이나, 중국인을 "유태인들이야"라고 하는 대사, 그리고, 인디어 추장 딸과의 결혼을 두고 "최소한 백인은 아니잖아"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갈피조차 잡을 필요가 없는 인종과 국적의 믹싱이 빚어놓는 유쾌한 코미디인 셈이다. 부담없이 보고 즐기면 되는 오리지널 성룡표 영화인 것이다. 영화에서 성룡이 오웬 윌슨과 목간통에서 술마시며 놀이하는 장면이 있다. <매버릭>에서 멜 깁슨 부자마냥 서부의 사내 냄새를 풍기는 이 장면은 '당연히' 성룡이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란다. 사내들은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동이나 서나...
1억 4천만달러를 벌어들인 <러시아워>보다는 못하지만 성룡의 <상하이 눈>은 미국에서만 개봉 10주를 맞아 5,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 영화는 톰 다이 감독과 오웬 윌슨과 함께 이미 속편이 기획중이다. 성룡에게는 내년 여름개봉 예정인 <러시 아워2>도 이미 제작에 들어간 상태이다. 그외 레니 할린 감독과 함께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테러범과의 대결을 그린 < Nosebleed>란 작품도 준비중이다. 물론 그 와중에 우리나라 김민과 공연하는 <엑시덴탈 스파이>도 홍콩과 터키를 오가며 촬영 중이다. 성룡은 정말 나이들어도 여전히 바쁜 스타이다.
좋은 의견 부탁합니다 ^^
박재환 20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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