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리뷰(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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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2024)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일본 영화감독이다. 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을, 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그랑프리)을 수상하더니 신작 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세계 3대영화제를 석권한 감독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초(超)기대작이다. 이 영화는 의 음악작업을 한 이사바시 에이코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먼저 기존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한 뒤, 라이브공연을 영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기획대로 영화 와 라이브 무성영상 [GIFT]가 완성된다. 영화는 음악가의 작업실이 있는 나가노현 야쓰가타케산(八ヶ岳)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단다. 도쿄에서 차로 두어 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림을 보여준..
2024.04.09 -
여기는 아미코] “아미코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오버!” (모리이 유스케 감독)
지난 주 개봉된 일본영화 (원제: こちらあみ子)는 같은 날 개봉된 한국영화 와 함께 본다면 영화적 충격이 배가될 듯하다. 의 11살 소녀 동춘이는 순수한 호기심이 안드로메다까지 뻗어가는 작품이고, 의 주인공 아미코는 순수한 호기심이 비극을 잉태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철저한 비극이다. 영화는 이마무라 나쓰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히로시마의 교외에 살고 있는 아미코는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이다. 하교 종이 울리자 아미코는 열심히 ‘노리’를 찾는다. 아미코는 노리가 좋지만, 노리는 귀찮아하는 모습이다.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아미코의 산만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하지만 아미코는 아빠, 엄마, 오빠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이답게 정원에는 ‘금붕어 무덤’..
2024.03.08 -
[대결! 애니메이션] “훗, 아니메에 인생을 걸어봤어?” (요시노 코헤이 감독)
한창 일드가 인기를 끌 때, 일본드라마의 특징을 ‘특정 직군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라고 분석했다. 세대를 이어가는 노포(老鋪), 투철한 직업정신 등이 드라마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루는 직업군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일반적 직장인 수준을 넘어 파견 직군에 대해서도 돋보기를 들이대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그런 요소를 쉽게 만난다. 물론, 한국에서는 ‘로맨스’나 ‘멜로’가 빠질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내일(6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은 그런 일본의 특정 직업군의 화려하고도, 고달픈, 그들만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업계의 속사정이다. 흥미롭다. 극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본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인 애니메이션의 시장규모는 연 2조엔, 매 분기 양 50편의 신작이..
2024.03.08 -
[괴물] STAND BY ME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포스터의 한 줄 태그라인이 궁금해서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 때가 있다. 아마도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의 이 그런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보기 전에 (이런, 영양가 없는) 영화리뷰도 읽지 말고, TV영화 프로그램의 상세한 소개도 보지 말고, 유튜브 짜깁기 영상도 멀리한 채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스크린을 응시하기를 권한다. 당신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소신, 사고방식, 철학관의 반영일 테이니. 에는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나온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장난을 치고,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그 친구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관..
2023.11.27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지브리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감독이 은퇴작이라고 공언한 (風立ちぬ,2013) 이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내놓은 영화 (원제: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가 지난 달 개봉되었다. 가 되었던, 가 되었던, 이 되었던 미야자키의 지브리 세상에 입문한 영화팬이라면 이 거장의 신작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 개봉 때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전에 홍보(선전) 활동을 전혀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언론시사회 같은 행사 없이 바로 극장에 내걸렸다. 지브리의 자존심인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작품만을 오롯이 보고,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2023.11.27 -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너의 임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지금부터 12년 전, 일본열도의 동쪽 바다에서 커다란 해일(츠나미)이 몰려온다. 311 도호쿠(東北)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자연재난이었다. 그 때 지진은 일대 해안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크면, 사람을 잊을 때가 있다. 그때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아침이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거나 “여보 출근할게요”하고 집을 나섰을 그 사람들 말이다. 여기에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 과 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이다. ‘스즈메’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다. '문단속'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꿈속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린 소녀 하나가 폐허가 된 ..
2023.07.22 -
[버드 우먼] 지하철의 여자들이여 가면을 써라! (BIFAN2022)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49개국에서 출품된 268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중 비주얼 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편 [버드 우먼](원제:Bird Woman)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빨간 패션의 인물이 괴이한 마스크를 쓴 스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일본 지하철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오오하라 토키오(大原とき緒) 감독의 21분짜리 히어로, 아니 ‘히로인’ 무비이다. 출퇴근 시간, 한국 버금가는 지옥철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의 지하철 안. 직장여성 토키는 오늘도 변태들의 틈바구니에서 일터로 향한다. 저 변태들의 눈길과 손길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토키는 마스크샵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특이한 형태의 마스크를 부탁한다. 커다란..
2022.10.24 -
[시크릿 카운터] 오징어게임 같은 세상에서 평안을 얻으려면...(人数の町,2020)
[박재환 2022.02.16]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극장가는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미룰 만큼 미루고, 버틸 만큼 버티고 있는 영화사, 제작사, 수입사들이 개봉을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일본영화 (원제: 人数の町/ The Town of Headcounts)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극장 개봉한다. 아라키 신지 감독의 이 영화는 재작년(2020) 일본에서 개봉된 작품이다. 무엇이 ‘시크릿’할까. 영화는 미스터리한 세상사를 다룬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빚 독촉에 쫓기던 아오야마(나카무라 토모야)가 사채업자에게 곤욕을 당할 때 한 남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그를 따라 어떤 특별한 시설로 들어간다. ‘오징어게임’이라도 할 것인가?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오야마는 ..
2022.05.22 -
[드라이브 마이 카]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2021)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나요?” “예! 그렇고말고요.”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장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그 정도 읽었으면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며, 비틀즈 매니아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하루키가 2013년 쓴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비틀즈가 1965년 발표한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 제목의 그 소설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영시간은 179분. 충분히 길다.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스케 감독이 직접 부산을 찾은 가운데 소개되었고, 마침내 어제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류스케를 좋아하거나, 일본영화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 남편, 아내, 정부, 그리..
2022.01.22 -
[JIFF리뷰] 해변의 금붕어, “아무도 모른다, 하나만 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국제경쟁부문에 출품된 일본 오가와 사라(小川紗良) 감독의 영화 (원제:海邊の金魚)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금 현재 일본 사회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유사가족’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지금 위탁시설에서 살고 있다. ‘고아원’ 같은 커다란 건물은 아니지만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꽤 많이 모여 사는 위탁가족 집 같다. 아주 어릴 때 이곳에 와서 이제 18살이 된 하나는 시설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정이 든 이 곳에서 아저씨와 함께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잘 살아간다. 어느 날 8살 하루미가 새로 들어온다.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언젠가 부모가 찾아와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하루미를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 그..
2021.05.07 -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 “731부대를 고발한다”
일본식 독립영화 시스템에 성장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97)를 기점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본의 대표적 작가주의 영화감독이다. 호러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최신작은 1940년대 일본의 불온한 분위기를 담은 (スパイの妻)라는 작품이다. 는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파격적 내용’의 작품이라 투자를 받지 못해 하마터면 엎어질 뻔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의 지원으로 ‘8K’ 화질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현재 보급되는 UHD(울트라HD)가 4K인데 이보다 더 선명하다는 것이다. 8K는 풀UHD로 불리기도 한다. 찍어도 내보낼 방송사도, 볼 TV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NHK가 자사의 4K/8K채널에 내보낼 콘텐츠로 기획,..
2021.03.31 -
[굿바이] 마지막 화장사 (おくりびと,2008)
혹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있는지. 정신없이 어수선한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관속에 누워있는 마지막 모습을 보면 회한의 눈물이 쏟아진다.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그런 장면. 그런데, 누가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을 어루만지고, 거친 수의를 입혔고, 어떻게 관을 장식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일본영화 [굿바이](원제:おくりびと,2008)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와는 장례의식, 절차가 조금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차와 과정, 수습의 결정적 순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도쿄의 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막 베토벤의 합창 연주를 끝내고 주섬주섬 자신의 첼로를 챙길 때 청천벽력 같..
2021.01.04 -
[고하토] 감각의 사무라이 (오시마 나기사 감독 御法度 1999)
(박재환 2000/10/10) 올해(2000년) 칸느 영화제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고하토(어법도)>를 출품하자 서구 영화비평계는 굉장히 흥분했다. 원래 프랑스야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대해 전통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었고, 주연배우 키타노 타케시 또한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거장으로 대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사랑 막스>이후 14년 만에, 그리고 그의 영화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고하토>는 칸느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그때 한국 언론은 똑같이 우리 춘향뎐>이 깐느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감각의 제국>으로 익히 짐작하다시피 모든 사회적/국가적 금기와 압제에 전공투 투사처럼 싸우며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왔었다. 이 영화는 강철 같고 ..
2019.08.27 -
[비밀] 아내와 딸을 사랑한 남편이자 아버지…
[비밀|秘密 ,1999] 감독: 타키타 요지로(龍田洋二郞) 출연: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 코바야시 카오루(小林薰), 이시다 유리코(石田ゆり子), 키시모토 가요코(岸本加世子),이토 히데아키(伊藤英明) 원작 :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한국개봉: 2002/10/11 일본개봉: 1999/9/25 (박재환 2002/12/30) 지난여름 KBS에서 조기 종영된 프로그램 중에 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미스터리 터치의 유사 과학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었는데 매번 편성되는 것이 귀신 봤다는 이야기 아니면 신들린 여자이야기였다. 지난여름 꽤나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이다. 아마, 그 프로그램을 나처럼 재미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일본영화 도 재미있게 봤을 것으로 사료된다. 은 ‘빙의(憑依)’라는 것을 다룬다. 아마 불교용어에..
2019.08.14 -
[프라이드 드라곤 피쉬] 이와이 슌지의 생선요리 (이와이 슌지 감독 Fried dragon fish 1993)
(박재환 1999/5/2) 이와이 슌지의 를 본 사람은 이 미지의 감독의 다른 작품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야 조금만 노력하면 그의 작품을 다 볼 수 있다. 하다못해 그가 텔레비전 드라마로 찍은 영화까지 볼 수 있다. (놀라워라! 우리나라야 필름 보관 안하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줄은 몰랐다. 필름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전에 한 영화잡지를 보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얼마 전에 상영한 필름마저 엉망인 상태로 보관 중이란다. 잘 보존하자!) 는 이와이 슌지가 극영화로 인기를 끌기 전, 텔레비전 드라마 소품을 찍을 시절 작품이다. 일본 후지TV에서는 음식을 소재로 한 연작을 찍도록 했는데, 이와이 감독은 이 중 등 몇 편을 찍었단다. 이 작품은 1993년도 작품이다...
201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