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마지막 화장사 (おくりびと,2008)

2021. 1. 4. 11:33일본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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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있는지. 정신없이 어수선한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관속에 누워있는 마지막 모습을 보면 회한의 눈물이 쏟아진다.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그런 장면. 그런데, 누가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을 어루만지고, 거친 수의를 입혔고, 어떻게 관을 장식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일본영화 [굿바이](원제:おくりびと,2008)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와는 장례의식, 절차가 조금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차와 과정, 수습의 결정적 순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도쿄의 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막 베토벤의 합창 연주를 끝내고 주섬주섬 자신의 첼로를 챙길 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오늘부로 해체된다고. 갑작스런 악단 해체로 실업자가 된 다이고는 결국 대출로 겨우 구한 값비싼 첼로를 처분하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인 야마가타현 사카타로 돌아온다. 도쿄 첼리스트의 허세를 뒤고 하고 그는 ‘연령무관, 경험 무관, 정규직 보장’이라는 ‘NK여행사’ 광고를 보고는 찾아간다.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사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격시킨다. 그런데, 이 NK여행사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을 배웅하는 일종의 상조(喪助)서비스업체였다. 초상집에 가서 시신을 관에 넣기 전에 옷을 곱게 갈아입히고, 얼굴에 분칠하여 유족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그런 다이고의 새 일자리에 아내는 기겁하고, 고향친구들은 화를 낸다. 

직업의 귀천, 소명

 아주 오래 전, 동네 친구 중에 ‘연탄집’하는 아이를 좀 꺼려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쓰레기나 분뇨수거(X차)일을 하는 집안의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걔 아버지가 장례업자라면? 모르긴 해도 기겁을 했을 것이다. 불결해서인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철없는 아이의 마음 한구석에는 경원시하는 두려움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경원시 하는 일에는 망나니, 도살자, 더 거슬러 올라가면 향,소,부곡에 사는 사람들처럼 직업과 계급에 대한 편견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어엿하게 ‘장례지도사’라는 명칭을 얻은 직업군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이런 직업에 대한 불온한 시선이 있는 모양이다. “어디 할 게 없어서...” 이런 시선이 존재한다는, 편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봐야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주인공 다이코는 번듯한, 우아한 첼리스트에서 갑자기 ‘납관사’(納棺師)로 나선다. 장례지도사는 우리식 개념이고, 이 영화에서는 ‘납관사’가 등장한다.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직종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염습(殮襲)사’라고 해서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갖춰 입히고 관에 넣는 일련의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건 중국고전인 사서오경의 하나인 <예기>에 등장하니 2천년이 더 된 의식이다)  21세기 한국 장례식장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잘 모르겠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의 과정을 거친) 마지막 모습을 만날 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유족들이 그 일련의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회한의 눈물을 쏟는다. 물론, 때로는 격하게 원망하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납관사 다이코는 오래된 고독사의 시신을 처리하기도 한다. 

연어와 돌(石)편지

 영화는 납관사에 대한 그런 일반적인 시선을 어떻게 교정하는지 보여준다.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는 사람에겐 산만큼 높은, 바다만큼 깊은 사연과 슬픔이 있을 것이다. 납관사는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의 죽음에 대해 전해 들은것도 없다. 오직 경건하게 마지막 떠나는 사람의 육신을 정성껏 분장한다. 

 영화 [굿바이]에서는 납관사의 모습과 더불어 다이코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어린 시절 가족을 떠나버린 무정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돌편지), 직업에 대한 아내와의 갈등, 그리고, 고향사람들과의 소소한 인연과 정(연어)이 영화의 중압감을 덜어준다. 

 장례식장은 무겁고 경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장례‘식’ 문화도 바뀌고 있다. 밝은 장례식 이야기도 가끔 나온다. (극단적으로는 밈으로 유명한 아프리카 장례식장모습까지). 

 첼리스트와 납관사라니. 지난 연말 일본에서 재판 받던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악기케이스에 숨어 레바논으로 도망간 일이 있었다. 그때 이용한 악기케이스는 첼로 가방은 아니고 더블베이스 케이스였다고 한다. 어쨌든 숨 막히는 [케이스]에 들어가는 신세가 인간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말이다.

참, 이 영화는 실제 납관사의 자서전을 보고 영화화를 진행했는데 제목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시나라오를 쓴 코야마 쿤도가 ‘납관사’의 완곡적인 표현으로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라는 말을 붙였단다.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2009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코로나로 온통 우울한 시기인데 어떻게 다시 재개봉한다. 삶은 무겁고, 죽음을 대하는 자는 진지할 것이다.  2020년 12월31일 재개봉 ⓒ박재환 영화리뷰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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