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토] 감각의 사무라이 (오시마 나기사 감독 御法度 1999)

2019. 8. 27. 14:27일본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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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2000/10/10) 올해(2000) 칸느 영화제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고하토(어법도)>를 출품하자 서구 영화비평계는 굉장히 흥분했다. 원래 프랑스야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대해 전통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었고, 주연배우 키타노 타케시 또한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거장으로 대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사랑 막스>이후 14년 만에, 그리고 그의 영화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고하토>는 칸느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그때 한국 언론은 똑같이 우리 <춘향뎐>이 깐느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감각의 제국>으로 익히 짐작하다시피 모든 사회적/국가적 금기와 압제에 전공투 투사처럼 싸우며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왔었다. 이 영화는 강철 같고 얼음 같은 냉혹한 사무라이 집단 내에 동성애 스캔들로 무너져가는 일본역사의 아이러니를 유머스럽게(!), 그리고 너무나 유장하게 풀어나간다. 칸느에서 거의 대부분이 일본기자들로 채워진 기자회견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느릿느릿 자신의 작품세계를 힘들게 이야기하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모습을 일본의 공영방송 NHKBS2로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엄청나게 공격적이고, 심오하며, 혹은 철학적이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직접 본 사람들은 의외의 영화진행에 놀라게 된다. 영화 상영 내내 관객들은 웃기 바쁘다. 동성애의 코드가 희화화되는 극단적 경험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일본이 근대화로 치닫기 직전의 한 사무라이 조직을 보여준다. 정확히는 일본 막부시대의 말기인 1865년의 교토(京都). 최고의 칼잡이들로 구성된 신센구미(神選組)의 하나인 콘도부대는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새로운 무사를 모집한다. 기량을 다툰 끝에 타시로 효조(아사노 타다노부)와 카노 소자부로(마츠다 류헤이)가 발탁된다. 카노 소자부로는 곱상하게 생겼다는 이유하나로 상관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많은 구애를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감춰진 욕망은 조금씩 살인과 음모로 연결되며 집단 전체의 충성도에 심한 균열을 이끈다. 관객은 단지 외모가 여자같다는 이유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에 빠지는 광경에 우선 웃음을 터뜨린다. 모든 구성원이 남자라는 사실과 엄격한 상하관계가 존재하였기에 이들 내부의 공공연한 동성애는 무마, 묵인, 경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노 소자부로의 미모가 출중하다보니 사건은 꼬리를 물고 터지게 되고 마침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관객은 카노가 욕정의 단순한 희생자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지만 영화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영화초반에 카노는 규율을 어긴 한 사무라이의 목을 가볍게 쳐버리는 냉혹성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 모든 소동의 진앙지이며 발산처가 어디인지를 관객이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동성애가 몰고온 파장의 끝을 봉합하려는 상층부의 시도가 여러 석연치 않은 감정의 개입으로 무너져버리는 것을 내비친다. 마지막에서야 소지의 발걸음과 히지카타 의 칼 휘두름의 뜻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라는 대감독이 만든 <고하토>가 보여주는 것이 마초집단의 성적 경향에 대한 호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붕괴 직전의 파멸현상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많은 일을 겪었을 상관들은 소동의 추이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스캔들은 역사의 한 장을 넘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에 숨어있던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차피 오시마 나기사는 <감각의 제국>에서는 온통 남성 생식기에 모든 것을 거는 무모한 선택을 하였으니 말이다. 

<개 달리다>의 최양일 감독은 이 영화에서 콘도 대장으로 나온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의 인연은 그가 <감각의 제국>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것으로 시작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대단하지만, 일본인으로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 와다 에미의 의상도 폼 난다.

[고하토|御法度,1999] 감독: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출연: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마츠다 류헤이(松田龍平), 다케다 신지(武田眞治), 아사노 타다노부(淺野忠信), 사이 요이치(崔洋一, 최양일) BIFF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