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투비] 전쟁의 기원

2012. 8. 20. 14:1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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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판의 큰손 CJ가 한류 톱스타 비(정지훈)를 캐스팅하여 100억 원을 쏟아부은 영화, 한국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한 작품 <알투비 R2B: 리턴 투 베이스>를 보고 나면 제일 먼저 톰 클랜시의 소설 <OP센터>가 생각난다. 이 작품의 연관성은 공고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아래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한반도에 파멸적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지, 혹은 그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를 극적으로 걷게 되는지를 비쥬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63빌딩을 배경으로 북한 미그 기가 휘젓고 다니는 전반부와 한국 전투기가 북한 미사일기지를 맹폭하는 후반부가 관객에게는 어떤 감정을 던져 줄지 궁금하다.

 

사고뭉치 탑건, F-15K를 몰다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 태훈(정지훈)은 에어쇼에서 위험천만한 묘기를 자의적으로 연출하다 21전투비행단으로 좌천된다. 국민 혈세 수백 억, 혹은 그 이상 들어간 전투기를 개인의 짜릿한 모험을 위해 사용한 태훈이 만나게 되는 공군용사들은 상상가능하다. 정말 가족 같은 편대장과 생사를 같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동기와 후배들. 그리고 공사 출신 장교와는 또 다른 군생활을 하는 하사관들까지. 그리고 군대가 배경이다보니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고 명령을 하늘같이 여기는 이철희 대위(유준상)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정지훈 중위는 바로 이곳에서 전투기 정비대대의 중사(신세경)에게 흠뻑 빠져들고 드라마는 상큼한 멜로의 빛깔을 더한다. 그런 비행기지에서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현재의 남북분위기만큼 위태롭다. 한반도 평화무드를 깨는 불온한 움직임은 북한에서 먼저 일어난다. 미그기 한 대가 귀순의사를 밝히며 남으로 향하더니 돌연 서울상공을 휘저으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된다. 곧이어 북에서는 쿠테타가 일어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포착된다. 아마도 한국의 어느 군사기지 벙커 안에서는 최첨단 군사정보시스템이 작동하고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외과의 사식 핀셋 공격, 궤멸적 핵 선제공격이 논의된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이 순간에 한국의 전투기 먼저 북으로 출격한다. 물론 정지훈과 유준상 편대장이다. 이들은 휴전선을 가볍게 넘어 북한의 미사일기지로 직진한다. 이들이 북의 방공망을 무사히 뚫고 원산기지의 격납고에서 막 발사되려는 노동호인지 대포동호 미사일을 무사히 폭파시킬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있으려니 서울의 방공망이나 북한의 제공권이 이렇게도 허술할까 싶을 정도이다. 미국은 자신의 본토로 ICBM이 날아올지도 모를 극한의 상황에서 한국의 사고뭉치 모험주의자 정지훈의 전투기몰이에 올인할 수 있을까? 영화 제목 ‘R2B’는 ‘리턴 투 베이스’로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기지로 무사복귀한다는 공군 용어란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창공을 수놓다

 

이 영화는 지난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대한 규모의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출격준비를 마쳤었다. 당시 소개된 이 영화의 제목은 <비상: 태양가까이>였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개봉이 늦춰지더니 여름방학을 맞아 <알투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영화로는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무척 오랜만에 항공촬영을 감행한 영화이다. 사실 <빨간 마후라>(1964) 이후 뚜렷이 떠오르는 ‘공군’영화가 없었던만큼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그 동안 한국관객 눈높이는 하늘만큼 높아졌으니 제작사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그 옛날 <날개>(윙스)(27)처럼 반전영화나 휴머니즘을 다룰 것이 아니라면 100억 투자에 공군지원이라면 줄거리나 주제는 이미  이미 정해진 매뉴얼대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평시에 가능한 ‘군인등장 러브스토리’를 열심히 나열한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묘기비행도 하랴, 전투기 탑건에도 도전하랴 비상출격도 하랴 바쁘고 계급을 뛰어넘은 연애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군인정신, 전투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뚜렷한 인식차이도 보여줘야한다. 그리고 전시에 준하는 긴급상황 발생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노선을 기다려야하고 한미방위체제를 뛰어넘는 독단적 전투역량도 선보여야하니 여러모로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셈이다.

 

OP센터와 21전투비행단

 

톰 클랜시 이름으로 나온 소설 <OP센터>는 미국의 오피센터라는 특수기관의 활약상을 다룬다. 노태우 시절의 한반도가 배경이다. 일제의 잔재인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고 이곳에서 광복절 기념행사가 거행되던 날 폭탄테러가 일어난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조사에서 북한의 소행임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 나타나고 휴전선에서는 화학전 발발 위험이 커진다. 게다가 북한 미사일기지에서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의심된다. 각종 정보를 취합하던 미국대통령은 ‘시작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는 전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라크 전쟁처럼. 선거에서 전쟁만큼 애국심을 부추키고 표를 긁어 모으는 방법도 없으니 말이다. 물론 소설은 <알투비>와는 달리 남한의 일부 극우세력이 평화무드를 깨기 위해 ‘북한의 책동’으로 몰고 가는 자작극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OP요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 기지에 침투하여 북한군 고위장성과 힘을 합쳐 발사직전의 미사일을 폭파시킨다.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대결구도임에도 한국과 북한은 조역에 불과하고 미국의 힘과 지혜에 의지하여 문제가 해결된다는 구조는 억울하지만 미국소설이니 참을 수밖에. <알투비>는 동일 사안의 ‘대한민국 국공군지원’영화답게 적당히 조정된다. 한국과 북한의 평화무드(통일무드까지는 안 가더라도)는 어느 한 쪽의 정치현안의 불안정과 맞물러있다. 남에서도 선거를 앞두면 ‘북풍’이나 ‘김현희’ 논란이 제기되고, 북한도 김정일 사후 줄곧 ‘군부 쿠테타 우려’같은 정체불명의 동향분석이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알투비>는 작품 면에서 보자면 아쉽다. 100억 원을 투입했다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트와 비교하자면 초반 타이틀 크레딧 올라갈 정도의 시간에 화력을 다 써버릴만큼 저예산에 불과하다. 그러니, 초반부 정지훈의 ‘제로노트’ 묘기 이후엔 공군기지를 배경으로 전투기 조종사들이 화이트보드 앞에서 침투작전만 세우는 것을 보여줘야했는지 모른다.

 

서울상공이 그렇게 허술하게 뚫리거나 북한 미사일기지 침투가 이렇게 수월하다는 것은 실제 전쟁이라도 발발할 경우 전쟁의 양상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간단하거나, 허탈할지 모른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선 다행스럽게도 미국(군)이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박재환 201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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