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X통에 처박힌 사법권위

2012. 1. 30. 11:0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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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의 전당’ 대한민국 국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다. 국회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 내리면 된다. 작년에는 9호선 국회의사당역이 새로 생겼다. 9호선 노선 공사와 관련하여 국회 앞과, (건물) 밑을 지나가는 문제와 관련하여 믿지 못할 논란이 있었다. 여하튼 9호선 생기고 국회에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9호선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1인 시위자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1인 시위라 함은 각종 억울한 사연을 쓴 샌드위치 패널 하나를 목에 걸고 추우나 더우나 국회 정문 앞에 서서 국회의원이 한번쯤 억울한 사연을 읽어보라고 애처롭게 ‘버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짐작하다시피 짙게 선팅된 검은색 중형차를 탄 국회의원들이 쏜살같이 정문 앞을 스쳐지나가면서 그런 1인시위자의 사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1인 시위자는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중에는 억울한 사연의 당사자도 있고, 그런 사람의 취지에 동감하는 의인도 있다. 한동안 ‘석궁판사를 비난하는 사람’이 1인 시위를 벌였었다. 당사자 김명호 교수는 국회가 아니라 서초구 대법원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었다. 내용은 자신은 억울한 판결의 희생자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김명호라는 교수 이름은 몰라도, 한동안 ‘석궁사건’(2005.3.15)은 기억한다. 대체로 “무슨 억울한 사연을 가졌는지 몰라도, 그렇다고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그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해를 가하다니... 말세다!”라고.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허구한 날 이상한 일만 벌어지는 대한민국에서 또 벌어진 이상한 일로만 생각하고 넘겼을 이 사건에 대해 새롭게 바로 볼 계기가 생겼다. 바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사건과 영화가 다른 점, 아니, 정확히는 판사동네 사람들과 국민들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김명호 교수 vs. 판사 A,B,C....

김명호 교수는 한 대학 수학과 교수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귀국하여 교수로 재직 중 그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 채점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출제된 문제의 오류를 집어내었다가 학교 측의 괘심죄에 걸려 교수재임용에 탈락했단다.(김 교수의 주장은 그렇다!) 그런데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학교 측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럴 경우 한국의 교육현실(대학문제)이나 사법제도의 경직성에 환멸을 품고 미국에 가서 수학연구 더 하여 ‘필즈상’을 타거나, 고등수학 전문학원이나 학습교재를 만들어 제2의 인생을 살만도 한데 김 교수는 다른 길로 나간다.  그 자신이 재판을 받으면서 법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판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법에 의하면....”  “판례를 볼 때...” “몇 조에 따라...” 그리고 김 교수는 재판정에서 ‘고귀한 판사님’께 대드는 것도 일상적이었단다. 전례 없는 피고의 역습에 대한민국 판사는 당황하거나 황당하다 반응일 수밖에.

정의의 재판이나 정상적 사법시스템이라면 충분히 스크리닝 되고 정제될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항상 부족하게 보이는) 국선변호사나 신경질적인 판사들에 맞서 억울한 피고인은 혼자 육법전서를 뒤지거나 아니면 민권변호사의 조력으로 감격적인 사법승리를 일궈낸다는 뻔 한 스토리 말이다. 그런데 김명호 교수는 모든 재판에서 패소한다. 유죄선고를 받고, 징역형을 받고 꼬박 형기를 다 채우고 출소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김 교수가 유죄이고, 무리수를 두었고,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김명호 교수의 재판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 있었다. 물론 몇몇 언론과 매체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했었다. 김 교수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고. 그런 사람 중에 ‘서형’이라는 프리랜서 작가도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공판에 참가했다가 특이한 피고인을 보게 된다. 김명호 교수였다. 여타 피고인과는 달리 판사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법전문가에게 법을 들이대는 김 교수를. 서형은 그 공판과정을 책으로 써낸다. 그때 책 제목이 <부러진 화살>이었다. 또 사연은 흘러간다. 이 책을 본 문성근이 정지영 감독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고 당시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던 정지영 감독은 관심을 갖게 되고 교도소로 김명호 교수를 면회하기도 하고, 공판기록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는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영화사는 다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란 어렵다는 것은 말은 안하지만 다 알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어렵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알려졌다시피 안성기, 문성근 이하 전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였고 단지 5억 원으로 영화가 완성되었단다.

영화 vs. 대한민국



영화 <부러진 화살>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다. 당시 부산영화제는 복잡한 위상을 보여줄 때이다. ‘영화의 전당’이라는 근사한 건물에서 이용관 위원장이 새로이 단독 위원장으로 세계적인 영화제로 제2의 출발을 알릴 때였다. 그런데 당시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김진숙 위원장이 고공시위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의식’있고, ‘개념’있는 영화인들이 그런 현실을 나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부러진 화살> 팀을 위시하여 많은 영화인들(주로 독립영화계열)은 레드카펫행사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고통과 민중의 힘을 체험하기 위해 영도의 조선소를 찾아 희망버스에 오른다. 영화 상영 다음날 이용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부러진 화살>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그 자리는 확실히 한국영화판의 동지애를 느끼게한 자리였을 것이다. <도가니>이후 한국 사법부에 정조준을 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이 영화가 일반에 개봉되었다. 그것도 설 연휴 특급기획영화에 나란히 어깨를 겨루며..

예상대로 논란이 거듭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 사법부에 대한 일갈만큼이나 복잡한 시선을 이끈다. 네티즌들이 일치단결하여 사법부에 침을 뱉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진중권의 시니컬한 트윗이 올라온다. 그 외에도 몇몇 인물들의 예상 밖의 반응에 ‘석궁사건’ 아니 재판진행과정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이정렬 판사’까지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고 논란이 계속되자 뒤늦은 반론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가장 궁금했던 ‘서형’ 작가도 자기의 의사를 밝혔다. 사법부는 허겁지겁 국민과 사법부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이미 종결된 재판, 옥살이까지 끝난 사안, 그리고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시각은 물론 관찰자마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김명호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대학 측이 보자면 곤혹스러울 것이고, 사법부와 결탁한 것쯤으로 묘사된 매스 미디어들의 이야기도 휘발성이 강한 사회극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사건을 “재판이 개판!”이라는 외침이 대표하듯 단선적으로, 표피적으로, 일면만을 우직하게, 정직하게 그려낸 셈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외눈박이 선동인 것은 결코 아니다. 억울한 피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1인 시위용’ 영화로 볼 수도 있으니, 국회 앞에서 법원 앞에서 아무리 샌드위치맨이 되어 외쳐 봐도 거들떠도 안 보던 사안을 대한민국을 온통 들쑤셔 놓아야  “아, 그렇지..” 하는 것처럼. 김진숙 열사가 309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주장’을 외쳐도 누가 신경이라도 썼었나. <부러진 화살>은 ’기드온의 나팔‘이 아닌 대한민국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경고등‘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반응과 대책들도 ‘2012년 대한민국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듯하다.

그런데 김명호 교수의 좌충우돌 사법투쟁에 이런 것도 있었다. 작년 FTA가 국회에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여와 야가 지루하게 밀고당길 때 당시 외교통상위의 남경필 위원장이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다. 이 때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 독소조항 12가지’를 내세우며 신(新) 을사늑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명호 교수가 남경필 교수와 민노당을 동시에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민노당 주장(한미 FTA 독소조항 12가지)이 맞다면 남경필 위원장은 국헌문란(헌법 91조)이니 내란죄(형법87조)로 처벌해 달라는 것. 반면 민노당 주장이 허위라면 민노당을 허위사실유포죄(형법 307조)로 처벌해 달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남경필이 옳은지 민노당이 옳은지 법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다. 몇몇 판사들이 FTA연구회를 만들자고 해서 논란이 되었는데 김 교수는 직격탄을 쏜 것이었다. 참 궁금했다. 과연 김 교수의 고발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피고, 원고, 증인, 참고인들이 연일 불러오고 김 교수는 하루가 멀다하고 판사와 씨름하고 법조문을 떠들고 했겠지. 그렇게 법원이, 국회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치고박고 싸우면.. 그렇게라도 결국 결론이 나오게 된다면...... 국민이 또 그 결과에 만족할까? 그때는 <부러진 화살>이 아니라 <안전판 빠진 핵폭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재환, 2012.1.30)


▶ 르포르타지 <부러진 화살> 서형 작가 인터뷰
http://m.cctoday.co.kr/articleView.html?idxno=680215

▶ 이정렬 판사, ‘실정법 위반’ 불구 ‘김명호 재판’ 합의 공개
“인내심 한계”…네티즌 “민사와 ‘석궁테러’ 형사재판은 별개”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748

▶  수학자 김명호, 10년 맺힌 한 풀릴까
‘성대입시부정’, ‘대법원 부패’ 고발하며 9개월째 1인 시위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748

▶  김명호 전 교수, 남경필, 민노당 검찰고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8632

▶  판사 석궁 테러 사건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D%8C%90%EC%82%AC%20%EC%84%9D%EA%B6%81%20%ED%85%8C%EB%9F%AC%20%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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