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투카] 심형래의 1996년작 작품

2008. 2. 18. 22:23한국영화리뷰

반응형

(박재환 1999/8/1) 지난 (1999년)7월 한달. 충무로 최고의 화제거기는 단연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였다. 이 작품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로는 뛰어난 CG, 훌륭한 열정,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어설픈 연기, 엉성한 각본, 유치한 전술 등이 아쉬운 점으로 거론되었다. 원래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는 모든 사람에게 다 만족을 시켜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용가리>는 그 외적 화려함에 경도되어 내적 진지함을 결여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심각하게 이 영화를 보아야할지 모른다. 그래서 <용가리> 바로 직전에 내놓은 심형래 감독의 또 다른 SF작품 <드래곤 투카>부터 살펴보았다. 그래야 <용가리>를 보더라도 심형래의 미적 세계나 영화적 창작력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우선, 들어가기 전에 <장미의 이름>같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쓴 움베르토 에코가 생각난다. 그는 굉장한 언어학자, 기호학자이며 역사학자이다. 또한 저널리스트이며 말이다. 소설의 구조나 배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독자를 충분히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다. 그런데 이 사람이 쓴 수필, 잡문을 모아 엮은 책을 본 적이 있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없이 고상하고 진지할 것 같은 상아탑의 어르신네가 대중문화를 꿰뚫어보고 써내려간 글이었는데 그 중 007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한 분석이나,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인식문제 등은 읽으면서 꽤나 감탄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심형래 영화를 올바르게 보기 위해선 영화평론가나 어린이의 눈높이보단 이런 사람이 진짜 필요한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권위와 전문가적인 식견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 모 영화잡지에 <용가리> 글이 하나 실렸는데, 사회학자가 쓴 글이라기에 ‘움베르토 에코’적 탁견을 기대했었는데 그저 그런 용가리 죽이기 살리기 차원의 평문이어서 좀 실망했다. 어쩜 <용가리>를 지금 읽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든지, 아님 그럴 가치조차 없는 영화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직접 보기 전에야 뭐라 말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드래곤 투카>를 보자. 이 작품은 심형래의 96년 작품이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심형래가 영구로 나와 특유의 바보연기로 ‘국민학생’들의 언어습관과 행동거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든다고 어른들이 방방 뛸 때도, 또 다른 한쪽에선 유행성이며 원래 어린이의 스타일이 그런 것이라고 옹호해주는 세력도 많았었다. 어쨌든 텔레비전의 바보연기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던 영구 심형래는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를 필두로 <영구와 공룡쮸쮸(93)>, <핑크빛 깡통(94)>, <티라노의 발톱(94)>, <파워킹(95)> 등 극장용 어린이 영화를 해마다 한편 정도씩 세상에 선보였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성인들이 이 영화들을 실제적으로는 단 한편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의 제목은 인지하고 있을 만큼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 영화팬들에겐 전혀 뜻밖이지만, 심형래 영화는 우리나라 지방극장 (그러니까 세금계산을 피해가는 하나의 편법으로 보따리식 거래가 여전히 통하는 지방영화시장에서조차)에서 최고의 인기영화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한 시즌만 열심히 돌려도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 몰려 볼만큼 인기 하나만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그것은 공룡, 외계인, 그리고 심형래라는 매력적 흥행요소에 기인한다.

그러자, 영화제작자 입장, 혹은 배급사 입장에선 영구의 시장성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화제작 단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영화 <드라곤 투카>만 하더라도 제작비가 16억 원에 달한다. 한석규가 나오거나 심은하가 나오지도 않고, 대규모 세트가 새로 지어진 것도 아니다. (<용가리>가 110억원이 들었다니 도대체 어디다가 그 돈을 쏟아 부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도대체 16억 원을 들인 영화는 어떤가?  

이 영화도 여느 심형래영화처럼 그가 감독했다. 그리고 그가 각본까지 썼다. 물론 주연까지 했고 말이다. 영화는 조선시대와 현대를 오간다. 먼저 조선시대.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한 고을이 있었다. 이무기나 총각귀신도 아니고, 투카神이라고 사람들이 벌벌 떠는 공룡(? 도마뱀같이 생겼음)에게 말이다. 이제 이 투카 놈이 매달 처녀 하나씩을 바치라고 한다. 이에 고을의 어르신네 하나가 죽어서 현대에 나타난다. 바로 LA피자집에 말이다. 그 곳은 심형래가 점원으로 일한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조선시대에서 왔다면서 좀 도와달라고 한다. 심형래는 그 말은 믿지 않다가 어느 순간 시간이동, 공간이동을 하여 조선시대에 옮겨간다. 정말이지 이 고을에선 투카신이 공포의 대상. 고을 사또는 전국의 칼잡이들을 불러들여 투카에게 대항시키나, 당연히 어림도 없다. 이때 하늘에서 외계인이 나타난다. 그들은 심형래와 또 하나의 지구인 (물동이 이고 지나가던 조선처녀)에게 보디 스내이쳐 (신체로 들어감^^)해서는 투카와 싸우게 된다. 사연인즉슨 저 우주에서 나쁜 짓을 하던 투카와 투마란 악당들이 상처를 입은 채, 지구로 도망갔고, 지구에서 제물로 바쳐진 처녀의 피로 상처를 치료하고 번식하며, 힘을 축적하여 지구를 파괴하고, 우주를 정복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특수경찰 우비1(심형래)과 여자전사(우비3)가 지구로 파견되어 이들을 무찌른다는 것이다.

물론, 심형래가 각본을 썼다기에 우선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위에 줄거리만 잠깐 봐도 SF적 요소에 <전설의 고향> 스타일을 적당히 믹싱한 것이니까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곽의 유려함이 디테일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지는 절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여기서 구구절절 집어낼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심형래가 얼마 전 텔레비전 대담 프로에 나와 자신의 영화의 각본의 허술함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유명한 영화에는 어떤 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옥의 티를 찾아라>같은 것도 있지 않냐. 자기 영화는 절대 복잡하면 안 된다. 단순하게 악을 응징하면 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러니까 애당초 심형래 영화 보는 사람은 <LA컨피덴셜>같은 스토리 전개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건 한지일의 영화에서 별다른 주제를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모든 용납과 승인은 근본적으로 그의 영화가 어린이용 영화라는 전제 하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또라이가 아닌 이상은 애인하고 비디오방 가서 <티라노의 발톱>을 본다든지, 학교 영상써클 개설 10주년 기념대작 프로그램으로 학생회관에서 <영구와 쮸쮸>를 상영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아도 이 정도 줄거리면 충분히 어린이 관객을 유혹할 수 있다. 그 당시는 나무작대기 하나만으로도 이순신 장군이 될 수 있고, 손가락 두 개만 곧추 세워도 서부의 건맨이 되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그냥 로보트에는 관심도 없고, 적어도 3단 변신로보트여야하고, 칼에서는 광선이 반짝거려야하며, 총에서는 반도체 장착되어 “삐요~~옹” 하고 소리가 나야한다. (정말 그럴까? 요즘 애들하고 놀아보지를 못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카애들이랑 본 영화는 <토이 스토리>비디오였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보기엔 또 그런 장면이 있다. 공룡의 생김새가 우선은 무섭고,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그리고 <전설의 고향>탓인지, 홍콩 무협극의 영향인지, 아니면 심형래가 생각하는 한국적 SF의 한 요소인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액션씬 (의적 일지매 스타일의)은 SF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장래성을 점쳐보자. <드래곤 투카>는 순전히 눈높이 영화이다. 그러니 눈 높은 사람은 보지 말든지 보고 나선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최고다. 아니면 좀 인심 쓰는 체하며 우리나라 같은 영화계 현실에선 하루아침에 <스타워즈>가 나오진 않는다면서 이런 시도가 자꾸 반복되면서 기초 능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한다. 그 말은 ‘진짜’ 사실이다.

우리나라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나 오퍼레이터가 아주 많이 미국으로 유학가서 공부하고, ILM이나 디지털 도메인 같은 곳에서 일도 하고, 하나씩 귀국하여 우리 영화계에 자리잡을 동안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 두 가지 방식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든지, 아니면 특수효과부분은 전부 미국에 맡겨 버리는 방법 밖에 없다. 현재 세계적인 추세가 영화에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첫 장면 깃털(나무잎이었던가?)이 날아가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컴퓨터그래픽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이제 영화는 우주선 날아가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의 유려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선 컴퓨터그래픽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의 얼굴에서 땀 한 방울이 또옥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위해 박중훈을 하루종일 달리기시켜 땀 한방울 떨어뜨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깨끗하고 산뜻한 그 땀방울은 바로 CG의 힘이리다. 이 영화에서 놀라운 장면은 딱 한 장면 바위들이 뭉쳐서 바위괴물로 바뀌는 장면이다. 아마 16억 원의 대부분이 여기에 투입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에 처음 <트론> 만들 때는 몇 장면 넣지도 못했는데도 돈을 업청 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제작 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그 기술능력은 놀랍도록 향상되고 있다. 심형래가 컴퓨터그래픽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영화산업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론 미국에서 덤핑으로도 그런 기술을 커버해줄 업체가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작업에 참여했던 인원이 많이 늘어나면서 기타 산업-컴퓨터 관련산업, 그래픽 산업, 영상소프트산업-이 뜻밖의 기술 축적과 노하우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 맨날 SF나 유령 같은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특수효과는 사실 미니츄어와 화약폭발, 그리고 모핑 장면 등 몇 개 밖에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시행착오, 하나씩 배워가는 자세로 이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앞으로 십년 뒤에는 <영구 VS.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들어질지 누가 알랴.

그리고 나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이다. 츠카모토 신야가 자기 영화의 감독, 각본, 편집, 음악, 주연.. 등을 다 하는 것은 그가 천재라는 것을 증명해주지만, 자기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배용균 감독처럼 말이다) 혼자 하든 열 명이 하든, 적어도 보여주기 위해선 완성도가 최우선 과제이다. 재미있는 줄거리가 최우선일 것이다.

투박한 줄거리를 대강대강 기승전결 연결시켜 ‘한국 최초의’, ‘수십 억원을 투입한’.. 이런 방식의 기술적 우위는 영화자체를 왜곡시키고, 성과를 저하시키고 만다. 만약 특수효과에 투입된 돈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만이라도 우선은 이야기 짜임새에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돈만 있다면”,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돈과 컴퓨터가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한 가지일 테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심형래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인은, 내가 보기엔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라 에드워드 우드나 팀 버튼일 것 같다. 이제 용가리 볼 시간이다!

 

감독:심형래 출연:심형래,민혜진,이소민,김시내,민성원,손무 개봉:1996.12.2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