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를 지켜라

2008. 2. 18. 22:15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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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6/12/11]   지난 주말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개봉되었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 보이>,<친절한 금자씨> 등 이른바 ‘복수 3부작’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박찬욱 감독이 한류 톱스타 정지훈(비)을 캐스팅하여 내놓은 작품은 제목마저 ‘무지’ 찬란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이다. 뭐가 괜찮은가.

박찬욱식 라이스메가트론 취식법

정신병원. ‘영군’(임수정)이 새로 들어온다. 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인 줄 안다. 형광등과 자판기와도 말을 나눌 수 있다. 그런 증세는 이런 곳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싸이보그이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고 충전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녀를 지켜보는 일순(정지훈). 일순은 타인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특이공능을 지녔다. 일순은 영군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무지 애쓴다.

정신병원이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일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영화 속 정신병자들은 자기가 어떤 특정 사물이라고 인식하고 그것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에 극심한 부조화를 이룬다. 여기서도 싸이보그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박찬욱 감독의 상상력, 혹은 설정은 독특하다. 하지만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비교하여 뭔가 더 센 것을 기대한 것은 그동안 박 감독이 엄청난 수위를 자랑하는 파격적 독창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뜻밖에도 ‘12세 관람가’ 눈높이에 맞춘 창의력과 표현력의 제한속도를 지킨다. 그게 아쉬울 뿐.

영화는 정신병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펼쳐지는 한없이 순수한 사람들의 천진한 상상력을 소심하게 구현해낸다. <복수 삼부작>에서 보여준 기가 질릴 정도로 대범했던 박찬욱 감독은 정신병원에서는 도식적 정신분열 증세를 풍성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개개인의 역정이 정확히 밝혀질 순 없지만 친절한 박 감독은 환자들의 거듭되는 행동과 동어반복을 통해 전(全)사회적 모순을 단순화시킨다. 두 주인공 정지훈과 임수정도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정체가 드러난다. 언제나 '탈=마스크=가면'을 써고 등장하는 정지훈은 ‘자신이 너무 잘 생겨서’ 피해를 보았고, 자신이 원해서 정신병원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지훈의 엉덩이(항문? 괄약근?)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지면 ‘비욘드 12’에 해당하는 또 다른 박찬욱식 영화읽기도 가능해진다. 이들 등장인물의 불명확성과 모호함 때문에 그들의 비범함과 초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꾸역꾸역 밀어 넣는 순대의 이미지와 불편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틀니’라는 사물을 통해 할머니는 임수정에게 “존재의 목적”이라는 묵직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관객은 우선 독순법을 통해 어렵게 그 ‘목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박찬욱 감독은 <트웰브 몽키스>의 브래드 피트와 <오복성>의 오요한을 한군데 비벼놓았고, ‘비’의 깨끗함과 ‘임수정’의 포스에 의해 ‘0’군과 ‘1’순의 청순 드라마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의 흐릿한 라스트 씬 역시 박찬욱식 농담이다. 인간과 싸이보그의 결합은 ‘12등급’에서는 도저히 분해할 수도, 결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몽상적 유토피아이다.

사족. 박찬욱 감독이 왜 정신병원을 택했을까. 오대수를 사설감옥에 감금했듯이, 복수극이든, 아동용 판타지이든, 박 감독은 상상가능한 설정 속에서 모호한 관계를 그려내는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아마도 다음 작품은 군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불가해한 관계와 속박, 그리고, 속죄일 듯하다. 아니면 은하울타라 제국에서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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