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1999-6-] 이건 사랑하는 와이프와 사연이 있는 영화라서 당시 썼던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여기는 부산^^ 아주 오래된 친구(?), 옛 애인(?),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장국영처럼 그녀를 서면 맥도날드에서 만났다. 나는 딸기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그녀는 쵸코아이스크림을 먹었다.그리고 남자는 실로 두어달 만에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봉두난발을 손질하러 서면의 ** 미용실(태화쇼핑뒤 4층건물에 있는 미용실인데 예쁜 미용사가 머리 손질해준것은 기분좋다만 내 생전 만오천원짜리 커트는 처음 해본다 --;) 갔고, 산뜻하게 자른 머리로 기다리는 그녀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맛없는(--;) 점심을 먹었고, 둘은 매트릭스를 보게 되었다. 부산의 서면이란 곳의 은아극장이란 곳에서 말이다. 은아는 옛날 영화스타 고은아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그녀 남편이 우리나라 극장대부이며 충무로의 파워맨의 한사람이다.)
노자도덕경의 첫 문장은 아주 재미있다. 도가도비가도(道可道非可道)이다. 도올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번역하였지만, 아주 대중적이며 단순하게 번역하면 이렇다. "도란 어떤 것인가." 이사람 저사람 모두 하나씩의 도에 대한 정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스님이 생각하는 도, 도둑놈이 터득하는 도, 클린턴의 도부터 시작하여 네티즌의 도까지.. 이러한 도가 진짜 도이니라...이처럼 누군가,무언가 확정시킬수 있는 그러한 도는 결코 도가 될수 없다는 소리이다. 상당히 철학적이며 재미있는 결론이다. 그러니 적어도 도는 누구나 떠들수 있지만, 결코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세상인 셈이다. 여기 그런 중국철학적인 영화 한 편이 헐리우드에서 공수되어 왔으니 바로 <매트릭스>이다. 와쇼스키 형제의 화두는 "현실"이란 무엇인가? 이다. 꿈과 대비되어지는 , 살아 숨쉬는,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법률과 사회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이런 저런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실인가? 와쇼스키 형제는 이러한 우리가 인식한 현실을 가상현실로 만들어놓는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것은 과연 잠들어 꿈꾸는 것인지, 살아 숨쉬는 것이 자율의지인지, 그러한 모든 현실적 인식체계에 의문과 모호함의 시선을 돌린다. (또다른 거대한 통제시스템으로서의 21세기적 음모론의 핵심인 셈이다.)
여기 정말 멋진 키에누 리브스가 어느날 사건에 말려든다. 그에게 그 누군가로부터 모피스란 사람을 찾으란 말을 받게 되고, 어느 기관원이 그를 뒤쫓기 시작한다.그리고 마치 에이리언 같은 추적기를 '배꼽'을 통해 몸속에 이식받게 된다. 이젠 인류의 구원자, 메시아로 키에누 리브스=네오는 세상에 던져지게-아니 이러한 진짜 현실과 현실로 여겨지는 가상의 세상 틈사이에 끼어들게 된다. 우리가 현실로 인식하는 이 모든 시공간이 컨트롤 되어지는 노예의 상태라니.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맛과 냄새가 중앙컴퓨터의 제어결과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망가'적 상상력은 쿵후의 수련을 통해 훨씬더 황당무개, '영화'스러워진다.
이제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라는 것이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제까지는 공중에서 멈추어서고, 총알을 피해가는 것은 코미디 아니면 황당무개였다. 하지만, <매트릭스>를 통해서 이제 재미는 중국 쿵후의 옷을 입고, 특수효과로 분장되어, 이미지의 진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관객은 즐겁게 보며 감탄하고 박수 보내며 이 어이없게 재미있는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가 '커다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Sci-Fi란 것이다. 이 이야기의 오리지널 컨셉은 아마 <트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디즈니의 82년작 <트론>은 그 조잡한 특수효과에 실망할 수 도 있겠지만, 82년도 작품이란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굉장한 작품인 셈이다. 역시 해커인 한 프로그래머가 컴퓨터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서 인류를 말아먹을 - 아니 컨트롤할 존재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인데, 그 영화에서도 사랑이 개제된다. 물론 곁가지로 말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훨씬 발전된 특수효과만큼이나 훨씬 더 진보된 인간의 감정선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키에누 리브스는 인류의 수호자로서 선택받아지는 과정이 지극히 인간적이다. 관객은 영화중반부 너무나 인간적인 예시자의 입을 통해 '그=네오'가 우리가 바라는 -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 수호자 메시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운명론적으로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구원받으리란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가능한 모든 예외와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처음 '니오'가 빌딩에서 노키아 핸드폰으로 전화 한통을 받으며 빌딩 벽을 기어오르다가, 그 전화기를 땅에 떨어뜨리고마는 뜻밖의 사태처럼, 우리 주위 - 현실이라 인식되어지는 공간-에서는 너무나 많은 돌발변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네오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는 트린의 운명처럼 말이다.
실컷 달리다가 마치 <12몽키스>의 그 라스트 공항씬처럼 절망적인 인류의 최후를 지켜봐야한다. 네오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이 가상 현실을 벗어나야 하지만, 그 수화기를 들어올리기 전에 요원의 저지를 받게 되고, 총알을 뒤집어서고 죽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기적을 바라는 것은, 최소한 주인공이 비록 총알을 뒤집어섰지만 살아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가사상태 혹은 기적의 개기일식이라도 때맞춰 발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오는 죽는다. 인류는 이제 영원히 기계/로보트/컴퓨터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영화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바로 인간적인 선택이다. <파워 오브 러브>이다. 이제 그 동안 보아왔던 그 모든 황당하고, 그 모든 멋진 영상들은 모두 동(動)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액션의 경지였고, 이제부터는 정(靜)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마치 문 워킹하는듯한 네오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동안 메시아로서의 의문과 설마하는 환상을 단숨에 환상과 선(禪)의 경지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와쇼스키 형제의 <바운드>를 보면 벽을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교류하는 감정은 전화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전화선을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려가는 전기신호 장면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에서 전화선의 의미는 특별하다. 가상과 현실세계를 연결시키는 것은 전화선이었다. 하지만, 왜 무선전화기는 안 될까? 왜 꼭 공중전화같은 특별한 전화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질까? 요즘같이 각종 무선통신망이 발전했는데 말이다. 하나로통신서비스나 두루넷을 쓰면 더 빠를 것인데... (역시 키에누 리브스영화 <엑셀런트 어드벤쳐>에서 왜 타임머신은 냉장고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멍청한 사람의 생각이고, 그런 생각만 하게 되면, 어떻게 공중에 뜬 채 멈출 수 있냐고 따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영화는 여전히 현실을 현실로만 인정하는 멋대가리는 없는 20세기형 영화관람객이 되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 좀 어설프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런대로 멋진 쿵후장면은 이소룡과 성룡의 환상적 아크로바틱을 충분히 서구인이 체현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더 이상 동양적 무예는 카림 압둘 자바나 척 노리스, 혹은 장 클로드 밴담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어쩜 전적으로 무술감독을 맡은 원화평의 공로인지 모른다. 와쇼스키 형제도, 키에누 리브스도 모두 원화평의 지시에 잘 따라주었다니 말이다. 넉달간 쿵후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이 영화 진짜 재미있다. 서울 올라가서 한번 더 봐야지...^^ (박재환 19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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