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맨] 超人과 凡人

2019. 9. 17. 15:30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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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와이프랑 새로 문을 연 안양 롯데백화점의 멀티플렉스관에서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 <스파이더 맨>을 보았다. 유통왕국 롯데가 극장사업에 뛰어든 것은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의 미래가 밝다는 사업적 판단때문일 것이다. 할말 많지만 영화나 보자.

<<스크린>> 창간 초기에 이 잡지에는 미국산 영화패러디 만화가 실렸었다. (물론 그 당시에 별다른 저작권 계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20년 가까이 지난 그 시절에 보았던 그 만화중에 아직도 <이티>나 <록키> 같은 화제작을 패러디한 것이 기억난다. 요즘 정훈이 만화나 이우일 만화의 원형이다. 그 만화들은 내가 일상적으로 보던 한국만화들과는 펜 터치가 달랐다. 어쩌다가 헌책방에서 미국 만화책을 볼 수가 있었다. 빨간 망토가 인상적인 그런 영웅이 등장하는 만화들. 사실 미국의 이런 만화들 - 이른바 'DC코믹스'나 '마블'의 출판물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우리나라의 일부 계층, 일부 매니아가 아니고선 다들 나와 비슷할 것이다. 이들 출판사에서 만들어낸 아메리칸 '코믹' 히어로들 가운데에는 <슈퍼맨>이나 <베트맨> 등 수많은 '-맨'들이 있었다. 이들 영웅전사들이 만화책을 뚫고 TV브라운관으로, 극장 스크린으로 영생을 얻어갔다. 그런데 이런 만화책 세대의 영웅이 극장 영웅으로 옮겨갈때 아날로그 세대의 반발이 항상 뒤따랐다. <엑스맨>이 영화로 만들어질때도 그러했다. 원작을 망쳐놓은 '헐리우드의 돈벌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원작 해석에의 탁월한 혜안과 더불어 영상기술발전을 따라잡는 시대적 감각이 함께 해야했다. 그런 면에서 <스파이더 맨>의 제작은 꽤나 시의적절한 영웅탄생극이다. 미국사회에는 언제나 쓰레기같은 악당이 존재하고 시민들은 언제나 영웅을 기대한다. 911테러로 미국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영웅의 도래를 기다리는 정도는 더했을 것이다. 

물론 <스파이더 맨>뿐만 아니라 많은 만화 영웅들이 非인간적, 혹은 半인간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스파이더 맨>의 존재는 굳이 인간의 DNA(혹은 RNA)에 착근한 거미의 본능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소년에게 벽을 타고, 하늘을 날고, 마스크를 쓰게 했을 뿐이지 소년의 모험과 영웅담은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에서 출발한다. 소년에게 말 못한 사랑이 있고, 갚아야할 가족애가 있으며,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미래가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얻은 막강한 권능, 초능력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의 시간을 안겨준다. 소년이 "막강한 힘에는 막강한 책임감이 뒤따른다"고 두어번 되뇌이는 것은 이 영화가 소년취향의 '대리만족', '힘자랑' 영화가 아닌 것이다. 케이블 카에 매달린 수십 명의 무고한 인명과 단 한사람 짝사랑하는 여자친구 가운데 누구를 먼저 구해야하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는 인간심성에 대한 잔인한 테스트이다. 물론, 영화에선 너무나 간단하게 해결하고 말았지만. <이블 데드> 같은 호러물 감독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이지만, 사실 그의 <심플 플랜>을 본다면 그가 인간본성에 내재하는 근원적 갈등기재에 조예가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영화를 보고나면 토비 맥과이어가 블록버스트 히어로엔 너무 동안이며, 커스틴 던스트가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그처럼 미약하고 인간적인 곳에서 태어난 것이다. 토비 맥과이어가 마지막에 커스틴 던스트의 애틋한 고백을 흘러보내는 것은 그가 더이상 평범한 소년일 수가 없음을 깨닫았기 때문이다. 

아내 말마따나 도심 속을 휙휙 날아다니는 장면은 스트레스를 완벽하게 날려버릴만큼 확실하다. 이 영화는 재미있고 또 재미있다. 또 보고 싶다. 

좋은 의견 부탁합니다 ^^

 박재환 2002/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