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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의 거짓말] 거짓말과 희망

미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2. 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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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0-9-17]   히틀러가 점쟁이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언제 죽느냐?"고. 그러자 점쟁이는 그런다. "유태인의 경축일날!" 2차 대전동안 유럽의 하늘아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유태인 1200만 명이 죽어나갔지만 그들이 죽는 순간까지 꿋꿋이 견뎌낸 것은 이러한 유머감각과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죽음과 희롱하는 '웃음'과, '희망'이라는 가느다란 빛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작년 아카데미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로 상을 받았을 때, 루마니아의 라두 미헤일리누(Radu Mihaileanu) 감독의 <인생의 기차(Train de vie)>를 상기시킨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탄 영화였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침공을 피해 유태인 마을 전체가 독일군 복장을 하고선 기차로 러시아 국경으로 도망간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 베니니의 인간미 물씬 풍기는 코믹 연기와 미국 탱크가 등장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때문에 이 영화는 곧 잊혀진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있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한 편 더 개봉되었으니 바로 <제이콥의 거짓말>이라는 미국, 헝가리, 프랑스 합작영화였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우리 나라에서 푸대접받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형편없는 흥행성적을 올리고 조용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로베르토 베니니의 1인 극에 지친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 영화가 더 가슴 따뜻하게 다가올는지 모른다. 물론 이번 영화에선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정신없이 사람을 웃겼던, 그리고, <알라딘>에서 램프의 요정으로 단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관객의 얼을 빼앗아갔던 로빈 윌리암스의 열연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영화는 독일군 점령의 어느 게토마을에서 진행된다. 높다란 담벼락과 철조망이 게토를 둘러싸고 있고 유태인들은 기차에 실려 수용소로 죽으러 끌려가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라디오조차 듣지 못하는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간다. 독일의 패전이 코앞에 다가온 1944년이니 독일군은 유태인들에게 전세와 관련된 그 어떠한 정보도 접촉할 수 없도록 차단하러한다. 외부 정보에 목말라하는 유태인 제이콥은 어느 날 자기 발 앞에 굴러다니는 신문 한 장을 주우러 달러들었다가 인생이 바뀌게 된다. 바람에 날린 신문은 독일군 사령부까지 그를 이끌고 갔고, 그는 그곳에서 독일군 라디오방송을 듣게 된다. "독일군이 폴란드접경에서 러시아군을 무찔렀다!"라는 뉴스를.

똑똑한 유태인답게 그는 이내, 불과 400킬로 밖까지 러시아 군대가 다가왔다는 것을 눈치챈다. 하지만, 돌아온 게토에서 그가 목격하는 것은 희망이 사그라진 동족의 비참함 모습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가스실로 끌러가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의 삶에 지쳐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제이콥은 죽으러 하는 친구에게, 무모한 탈출을 꿈꾸는 동족에게 살며시 전해들은 바를 이야기한다. "400킬로 밖까지 러시아군대가 진격했어!"라고. 그런데, 이 말은 단 하룻밤만에 마을전체의 모든 유태인들이 알아버린 것 같다. 그들 모두는 러시아군이 진격했다는 뉴스를 알고 있고, 이 모든 소식은 제이콥이 몰래 숨겨놓은 라디오에서 들은 확실한 정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제이콥은 있지도 않은 라디오에서 들은 최신 뉴스라며,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러시아군의 진격소식을 지어낸다. 영화는 자꾸만 늘어나는 제이콥의 거짓말과, 그 믿을 수 없지만, 믿고만 싶은 동족들의 기대심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베니니가 엉터리로 독일어를 이태리어로 통역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끌러가며 아들에게 "이건 게임일 뿐이야"라고 이야기할 때, 그리고 담벼락 너머로 총소리가 울러 퍼질 때, 관객들은 눈물을 흘린다. 바로 아름다운, 숭고한 희생에 대한 눈물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죽음의 문턱에 선 동족에게 뉴스를 전하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눈물겨운 장면이 있다.

2차대전 당시의 유태인의 비극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쉰들러 리스트>전에 이미 <안나 프랑크의 일기>,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유로파 유로파>, <사운드 오브 뮤직> 까지. <제이콥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거짓말과 그와 비례하여 끝없이 증식되는 희망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관객은 결코 <브레이브 하트>에서의 멜 깁슨처럼 영웅적인 소리 한번 못 지르지만, 동족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작은 영웅을 지켜보게 된다. 눈물이 난다.

이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정신대문제와 관동대지진을 통해 건져 올린 한국영화가 고작 <낮은 목소리>뿐이란 것은 우리 영화인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재환 2000/9/17)

Jakob the Liar (1999)
감독: 피터 카소비츠 (Peter Kassovitz)
출연: 로빈 윌리엄스,한나 테일러 고든
한국개봉: 2000/9/23
위키피디아 Jakob the Li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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