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3. 10:41ㆍ홍콩영화리뷰
D. H. 로런스의 <차탈레부인의 사랑>은 대단한 문학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영국에서 금서로 남아 있었다. '외설'논란 때문이다. 중국에도 그런 책이 있는데 바로 <금병매(金甁梅)>이다. 이전에 학교 다닐때, 연세대에서 우리나라 중국소설 전공교수님들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발표 도중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금병매>를 전공하신 어느 교수님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을 전공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쩌니.."하는 이야기. <금병매>는 그 내용의 특수성(!)으로 인해 연구하는 전공자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 내용 중에 서문 경(西門慶)과 반금련(潘金蓮)의 정사(情事)를 다룬 부분이 있다. 무송(武松)의 형은 조금 많이 덜떨어진 무대(武大)였고, 무대의 마누라는 그런 바보에겐 너무 아름다운 "반금련"이다. 반금련은 시동생 무송을 유혹해보기도 하지만, 무송은 형님을 너무나 아끼는 위인이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반금련은 남편 무대를 독살한다. 그런 내용이다.
<금병매>라는 제목은 서문 경의 첩인 '반金련'과 '이병아'(李甁兒), 그리고 반금련의 시녀인 '춘매'(春梅)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 한다. 그럼 영화 <반금련>은 이 사연 많은 중국 고전을 어떻게 옮겼을까. 당연히 에로티가게, 외설스럽게 옮겼을 것이다. (심야 케이블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할 때) 자막에서 '각본 이벽화가 나올때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이벽화는 바로 <패왕별희>의 원작자이다. 소설가인 이벽화는 <진용>,<인지구>,<청사> 등의 영화 각본을쓰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영화 <반금련>은 '진용'스타일의 시간이동 영화이다. 처음에 '반금련'의 이야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살인이 일어나고,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더니 화면은 곧바로 '1960년대의 중국'을 비춘다.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으로 빠져든다.
"조반유리! 혁명만세!" 등등의 구호와 격문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예의 그 꼬깔 모자 쓴 사람들이 인민재판 받는 광경이 보인다. 여기에 한 소녀-발레연습을 하고 있는 소녀가 나완다. '옥련'이다. 이 소녀는 천년전에 죽은 그 반금련의 화신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潘金蓮之前世今生'이다. 지옥을 떠돌다가 "꼭 복수하고 말리라"하며 저주하던 그 여인네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고전 서적이 몽땅 불살라지는 것에서 최고조를 맞는다. 불구덩이에 내던져지는 책더미 속에 <금병매>가 있었다. 소녀는 그 책에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된다. 불씨 속에서 한줌 재로 변하는 <금병매>.
시대는 좀 흘러 그 어린 소녀가 이제 어느새 성숙한 여인네(왕조현!)가 되어있다. 옥련이 다니는 무용학교의 늑대같은 교장이 어느날, 옥련을 부른다. "애야, 잠깐 교장실로 와 봐라.. " 그러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이 시작된다. "너가 반혁명적인 짓거리를 하고 있다던데 사실이야? 내가 입만 열면 넌 무용를 못하게 돼!.. 가만 있어.."라며. 하지만, 이내 교장실에 들어 오는 사람들. 교장은 엉거주춤하게 "저 년이 유혹하고 있어" 그런다. 평소 옥련의 미모에 시샘하던 여자들은 앞다투어 옥련을 매도하고 때린다. 그렇게 옥련은 노동계급으로 떨어진다. 신발공장에서 노동하는. 하지만, 그녀의 신세는 더욱 나빠진다. 같은 공장노동자 계급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농구를 하고 있는 그 남자, 임준현이었다. 그 남자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을 옥련은 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순간적인 장면이 삽입된다. <옛날 금병매>의 장면. 근육이 아름다운 그 남자, '시동생' 무송이었다.
이루지 못한(유혹하지 못한) 사랑은 한이 되어 같은 공장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녀는 그날 밤 그 남자에게 농구화를 가져다 준다. 이걸 신고,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라고.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더욱 최악의 곳으로 몰아 넣는다. "저 년이 농구화를 훔쳐, 임준현을 유혹한다.."라고. 왕조현은 아무리 "내 돈으로 산 거에요..."라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준현씨 말좀 해봐요..." 하지만, 임준현은 문화대혁명의 집단광기를 잘 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선,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난 모른다.!"
세월은 또 흐른다. 이번엔 중국 산골마을이다. 홍콩으로부터의 부자 관광객이 몰려온다. "이것 사세요. 이것이 가장 싸요.."라며. 그 관광객 중 증지위도 있다. 그는 첫 눈에 반한다. 이것저것 물량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에어콘도 장만해준다. 에어콘을 켜는 순간. 그 시골 동네의 전기는 모두 나가버린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 "아니 저 년이 동네 남자 다 끌어가더니 이젠 그것도 모자라 전기까지 다 가져가..." 증지위는 그녀에게 쏘옥 빠져서 "나랑 같이 홍콩으로 가자..."그런다.
옛날 반금련, 문혁을 거친 옥련, 그리고 이제 홍콩의 돈많은 사업가의 아내가 된 왕조현. 하지만, 증지위는 수호지의, 금병매의 그 바보같은 "무대"인 셈이다. 게다가 증지위가 아내에게 선물한 벤츠의 기사가 누구인가. 바로 임준현이 아닌가. 운명의 장난인가? (금병매식 표현을 빌자면...) '淫心이 動한' 왕 소저는 임준현 서생을 조금씩 조금씩 유혹하기 시작한다. 순간순간 왕조현은 아주 옛날 꿈을 꾸고, 누군가가 죽고, 자기는 지옥에 떨어지는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임준현은 언젠가 오래전부터 자기가 사랑했던 사모했던 사람이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임준현은 비록, 농구화 사건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증지위가 누군인가. 자기에겐 형과 같은 존재, 생명의 은인처럼 잘 대해 주지 않는가.
영화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간다. 결국은 아주 슬프게 끝난다. 증지위의 천진난만 그 자체, 바보스런 남편 연기는 훌륭하다. 악연과 악몽에 시달리는 왕조현은 갈수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한다. 왕조현은 이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나온다.반금련의 화신이 되어 화면을 가득 채눈다.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마치 <인지구>같은 느낌이 들고 말이다 (박재환 1999/1/14)
▶潘金蓮之前世今生/The Reincarnation of Golden Lotus (1989) ▶감독: 나탁요(羅卓瑤 ▶출연: 왕조현, 증지위
'홍콩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용] 2,000년의 사랑 (1) | 2008.02.24 |
---|---|
[천왕1991] “카드를 주세요~” (우인태 감독 千王1991 The Great Pretenders 1991) (2) | 2008.02.24 |
[PTU] 잃어버린 총 한 자루를 찾아서.... (두기봉 감독 機動部隊: PTU, 2003) (1) | 2008.02.24 |
[폴리스 스토리] 最後動作英雄 成龍 (성룡 감독 警察故事 Police Story 1985) (1) | 2008.02.24 |
[옥보단] 그것만(!) 부기나이트 (맥당웅 감독, 1989) (0) | 2008.02.23 |
[홍콩 레옹] 귀신잡는 레옹 주성치 (주성치 주연, 回魂夜, 1995) (1) | 2008.02.23 |
[우연] 세 여자를 사랑한 장국영 (초원 감독, 偶然 Last Song in Paris,1986) (1) | 2008.02.23 |
[용형호제2 = 비응계획] 성룡, 모로코 사막을 가로지르다 (1) | 2008.02.23 |
[독비도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장철 감독의 기념비적 무협작품 (1) | 2008.02.23 |
[책상 서랍 속의 동화] 내 제자의 집은 어디인가? (1) | 2008.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