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왕] 난 대한민국 경찰이다!

2011. 5. 6. 09:0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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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살기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일까?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나지 않는 곳일 수도 있고, 명문학교 진학률이 높은 곳일 수도 있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나 와이파이 접시 개수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면? 만약 그런 곳을 찾는다면 객관화된 수치로 검증할 수 있다. 하다못해 OECD국가 범죄율이나 5대 민생사범 체포율 같은 것도 계량화되어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세상이 도시화, 현대화, 문명화, 개인화되고 사회문제가 양극화되면서 다양한 이유로 각종 범죄가 발생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강력범죄들.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면 여러 사람이 상 받고, 여러 사람이 영전하게 된다. 나라님도, 지역구 의원님도, 언론들도 그런 수치에 주목하고 그런 것에 스포트라이트를 쏟는다. 그러니 범인체포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치안당국의 심정은 어떨까. 그물망같이 촘촘히 치안망을 구축하여 개미새끼 한 마리 못 빠져나가게 한다거나, 첨단범죄수사로 수십 년 전 사라진 범인도 잡아들이는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보다 더 나은 ‘한국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아마도! 계량화된 시스템적 범인체포(포상) 방식인 것이다. 살인은 50점, 강도는 40점, 도박은 25점, 폭행은 20점, 절도는 10점같이 클린한 기준을 만든다면. 그러다가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초강력 범죄자를 잡거나, 수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은 유괴범을 잡으면 1000점쯤은 한꺼번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연말에 점수 많이 딴 경찰에게는 푸짐한 상품과 함께 포도왕의 영예를 안겨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럼 뭐..... 이 영화는 현실감이 전혀 없는 영화일 테고 말이다.


 

마포경찰서, 영등포 경찰서 실적경쟁에 올인하다

서울특별시에는 모두 25개의 자치구가 있고 31의 산하 경찰서가 있다. 그 중 마포서와 영등포서는 서로 이웃하고 있다.(한강을 사이에 두고!) 이들 두 서는 라이벌 체제이다. 상부(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범인 잡아라!” “미제해결 빨리 해결하라!” “서울시민 맘 놓고 살 수 있게 하라!”고 채근한다. 소시민에겐 가장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 아마도 “우리 아이들 맘 놓고 학교 갔다 올 수 있도록 하라!”일 것이다. 마포경찰서 황재성 팀장(박중훈)은 뺀질이같이 보이지만 적어도 범인체포라는 실적쌓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다. 경찰대 출신이 아닌 필드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보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재주껏, 요령을 다해 실적을 쌓는다. 나쁜 놈은 무조건 잡아들인다. 잡다보면 점수가 올라가고 그러다보면 관할주민이 더 잘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가끔은 무리수도 둔다. 잡범도 잡아들이고, 민생사범에게도 가차 없다. 훔친 것은 분명 훔친 것이고 죄는 죄이니 말이다. 폐지 줍는 할머니까지 잡아들이며 “아휴, 걱정 마세요. 판사가 풀어줄 거예요..”라며. 이웃 영등포에 신임 팀장이 온다. 정의찬 강력3팀장(이선균). 경찰대 출신이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군대는 육사출신과 비육사출신이, 경찰은 경찰대출신과 비경찰대 출신이 성골-진골마냥 나뉘어 있고 그들의 출세가도가 다르다는 사회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영등포 정의찬 반장은 관할 서 상황파악도 하기 전에 마포서의 황재성 반장과 신경전을 넘어서는 경쟁을 펼치게 된다. 다 잡아놓은 범인을 코앞에서 빼앗기는 일도 벌어진다. 그 와중에 이 일대에서 엄청난 초강력 사건이 발생한다. 오피스텔 여자를 상대로 한 연쇄강간범. 언론에서는 난리이고 잡기만 하면 일거에 2,000점을 획득할 수 있단다. 그럼 반장은 승진할 것이고, 서장은 잘하면 청와대 근무로 영전할 수도 있단다. “민생치안... 좋은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는 일단 잡아들이고 점수 받아야합니다.”라는 경찰들은 오늘도 용의자 집 앞에서 잠복근무하고, 집이고 가정이고 다 포기하며 ‘범인검거’에 올인할 것이다. 인간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대한민국 경찰의 현실을 지금 보시라!


대한민국 경찰, 이렇소 - 비리편

 영화 보면 초반부에 대한민국 경찰의 실적경쟁 쌓기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 리얼함은 하드보일드 터치가 아니라 코믹 터치이다. 벽면 가득하게 검거율 그래프와 현상수배범 사진이 붙어있는 경찰서에서 짜장면 시켜먹고, 사무실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잡범이 들락거리는 그런 눈에 익은 광경들. 두 경찰서의 한심한, 그러나 나름 열심인 범인검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과연 대한민국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 혹은 암묵적인 도움을 받았을까 싶은 의문이 일 정도이다. 아무리 코믹하게 그렸더라도 경찰의 치부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특히 관할 도박장(오락장) 업소 사장을 불러 모아 놓고는 브리핑과 함께 단속 정보를 로또 번호 미리 알려주기처럼 귀띔하는 장면은 <투캅스>의 20년 진화형 한국경찰모습이리라. 경찰이 피라미급을 잡아 협박하여 정보를 알아내는 고전적인 방식도 ‘매일 신문에 나고 있는 골치 아픈 사연들일 뿐’.

대한민국 경찰, 이렇소 - 고생편

사실, 대한민국 경찰을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집단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아침마다 신문 사회면에서 어두운 기사를 보게 되더라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 신문 정치면에서는 나쁜 짓하는 국회의원 볼 수 있고, 사흘이 멀다하고 나쁜 짓하는 학교 선생들 이야기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경찰은 더 열심히 나쁜 놈을 잡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점수쌓기에만 올인하는 영등포서 박중훈 반장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비경찰대 출신인) 그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마도 가족도 포기하고, 개인사도 온연히 포기하고 오직 범인 잡기에만 매달린 결과이리라. 경찰대 출신이라고 다르리오. 이선균은 폼 나는 엘리트 경찰하고는 거리가 멀다. 어제까지 육법전서 외고, 승진시험 공부하다가 오늘 갑자기 필드에서 땀 냄새 풍기며 잡범과 강력범을 쫓아 뛰어다니는 것이다. 정의사회구현 같은 아름다운 구호는 나중의 문제이다. 이해한다. 그들의 노고를!

박중훈, 이선균, 그리고 명품조역들


박중훈은 20년 전 <투캅스>에서 ‘비리경찰’ 안성기 밑으로 들어온 경찰대 출신 풋내기 형사로 경찰과 연을 맺었었다. 박중훈은 그 후 코믹영화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한국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그리고 이번이 6번째 경찰 역할이란다. 뛸 만큼 뛰었고 살만큼 살았으니 그에게는 한국영화의 현실에 대해서만큼 대한민국경찰에 대해서도 보통이상의 애정과 실질적 시선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는 능구렁이 강력반장 역할은 멋있게 해치운다. 얄미울 정도의 노하우로 실적쌓기에 함몰된 인간적인 형사. 그리고 범인검거에 실패하고 승진에서 밀려난 좌절감. 청춘을 다 바쳐 밤이고 낮이고 경찰에 투신해왔던 자신의 직업이나 작업노선에 대한 회의감. 박중훈 형사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리얼리티나 연계성 부족이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여백의 미다. 그의 청춘을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별안간 ‘착한 경찰’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이해한다. 한국경찰!

두 경찰서 서장 주진모와 이한위의 연기도 달인 수준이다. 시민들은 매일 터져 나오는 초강력 범죄 관련 기사에 대해서 경악한다. 그리고 더 높으신 분들은 당연히 경찰을 닦달할 것이고. 뛰는 경찰을 불러 모아 ‘더 뛰어!’라고 채근해야하는 이들의 고뇌가 묻어난다. 박중훈과 이선균의 팀원들을 연기한 조연들도 하나같이 땀 냄새와 현실감이 묻어있다.

 
그리고 범죄사실

영화는 확실히 코미디이다. 그러나 다루는 범죄는 비극적 사건이다. 실제 ‘마포 발바리 사건’으로 알려진 연쇄강간범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니 경찰도 미쳐버릴 것이다. 정말 이전 <살인의 추억>의 카피처럼 미치도록 잡고 싶을 것’ 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범인은 사이코패스이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잔혹범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범인이 뜻밖에도 ‘오피니언 리더’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른바 ‘떡찰’과 ‘언론’이 나란히 손잡고 ‘이너서클’의 범죄를 눈감아 준다는 암울한 현실의 사회극은 아니다. (영화 보면 알겠지만) 사진 액자의 플레임으로 범인을 잡는 ‘나름’ 최첨단 육감 수사의 한국경찰을 코믹하게, 그리고 휴머니티 콸콸콸 넘치게 그린 ‘한국’ 영화이다. 재밌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눈감아는 주는 한국 경찰청의 대민서비스정신은 칭찬받을 만하다. 경찰 좀 더 뛰기를 바란다. (박재환, 2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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