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장률 감독,2009)

2011. 3. 10. 10:10한국영화리뷰

반응형

[두만강] 조선족 감독이 그린 비극적 북한 인민들


[박재환 2011.03.10.] 10여년 쯤 전에 KBS스페셜을 통해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박재환영화리뷰)라는 충격적 북한르포가 방송된 적이 있다. 오랜 풍수재해와 폐쇄적 경제체제로 무너져 내리는 북한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먹고사는 기본적 경제가 무너지면서 가정은 해체되고 중국국경 지대의 장터를 배회하며 걸인신세가 된 꽃제비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박재환영화리뷰)을 통해 같은 내용이 전달되었다. 

이제 남쪽, 대한민국 사람은 분단된 조국의 윗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아선상의 비극적 현실을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얼마나, 언제까지, 혹은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는 이런 현재의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영속적일 것이란 것도 다들 잘 알고 있다. 이들 배고픈 북한사람들은 남으로 내려오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북으로(중국 쪽으로) 넘어가는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함경도와 중국 길림성 연변시 조선족자치주를 가로지르는 두만강에서 바로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고픈 북한 인민은 강을 건너가고, 강 저쪽 중국 사람은 그들을 혈육의 정으로, 인간의 선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현실적 한계를 잔혹하게 영상에 담고 있다. 장률 감독이 여섯 번째 작품 <두만강>이란 영화에선 말이다.

창호야, 내 동생이 배고파 죽어가고 있어…….

길림성 연변의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강변의 한 작은 마을. 분명 중국 땅이고, 그곳에 사는 주민은 대부분 조선족 핏줄을 가진 자들이다. 아마도 이곳 주민 대부분은 대를 거슬러 조금만 올라가도 북한 땅에 가족 형제가 하나쯤은 이어질 것이다. 현재로 말하자면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아빠나 엄마가 저 멀리 서울에서 식당에서, 막노동으로 코리아드림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 마을에 남은 사람은 일할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거나 홀로 남겨져서 친구들과 공터에서 ‘뽈’차기(축구)를 하는 아이들뿐이다. 창호도 그렇다. 엄마는 서울로 돈 벌려갔다. 아빠는 오래 전 홍수가 났을 때 누나를 구하려다 빠져죽었다. 그 누나는 이젠 벙어리가 되어 엄마노릇을 한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빈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창호는 추운 두만강 강변의 공터에서 동네 애들이랑 공놀이를 한다. 내리 3번을 진 아랫동네와의 축구시합에서 한번쯤 이겨봤음 하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애가 먹을 것을 찾아 동네로 숨어든다. 창호로선 늘 보아오던 일. 북한인민들이 한밤에 몰래 강을 건너오다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거나, 중국 공안에 붙들러 송환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들 조선(북한)사람들은 강을 건너다 죽고, 산을 넘다 낙오되어 죽는다. 창호는 그렇게 몰래 넘어온 북한아이 정진에게 관심이 간다. 평양까지 가서 공을 차보았다지 않은가. 창호는 정진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하룻밤 재워준다. 할아버지도, 누나도 북한아이 정진의 처지를 잘 안다. 그냥 두면 곧 죽거나, 얼마 있다 굶어 죽을 운명이란 것을. 정진은 쌀 포대를 얻어 다시 두만강을 넘어 돌아간다. 아픈 동생이 배고파할 것이기에. 남한 관객에겐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 보는 것처럼 시혜적 시선으로 북한의 꽃제비를 쳐다보겠지만 두만강변에 사는 조선족 중국인들은 정말 난처하고 애매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 순희는 ‘불쌍한 마음에’ 북에서 넘어온 아저씨를 숨겨주고 먹여준다. 그리고 술까지 내준다. 그런데 하필 TV에선 북한방송이 잡힌다. “위대한 수령 김정일 동지가 인민의 열화 같은 환호를 받으며.... 어쩌고...” 이 북한 아저씨, 순간 광폭해지더니 순희를 겁탈한다. 상황은 급변한다. 불쌍한 북조선 인민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조금씩 싸늘해진다. 창호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정진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두만강을 건너 찾아오지만 오해와 갈등, 불행한 현실은 통곡과 슬픔의 민족적 비극으로 모두 쓸어 담는다.

체면과 체면불구


 지금도 우리는 북한의 작태를 매일같이 뉴스로 접한다. 내일 당장 망해버릴 것 같은 북한체제는 곧 죽어도 큰소리이다. 인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밥 먹는 장면이다. 정진이 처음 넘어와서 창호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와 나쁜 북한 아저씨가 순희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이다. 두만강 조선족 중국인들은 북한인민이 무엇보다 배고파하는 것을 잘 알기에 밥상을 차려준다. 그냥 밥상이라도 북한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리라. 정진은 하얀 쌀밥이 담긴 밥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다. 이 밥 먹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할까. 아니면, 이 밥 한 공기만 있었어도 우리 아바이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인데 라고 생각할까. “어서 먹어.”라는 소리에 소년은 그제야 밥그릇을 한손에 들고 반찬을 수북이 얹더니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점점 빨리, 더 많이 입속으로 쓸어 담는다. 처음의 주저함, 주춤거림은 이내 사라지고 소년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이 있을 때 최대한 위장을 채워 넣으려는 듯 꿀꺽꿀꺽 삼킨다. 순희에게 밥을 얻어먹는 나쁜 아저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밥그릇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느새 우걱우걱 주워 삼킨다. ‘영광스런 북조선’ 인민의 자존심과 체면은 밥 한 공기에 산산이 날아간다. 그리고, 보는 우리 남한사람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겨우 밥 한 그릇에 말이다.

이 영화는 비극을 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의 문제는 북한인민의 문제이고, 통일 전이나 통일 이후나 그 막대한 대가를 짊어져야할 남한의 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론 중국 또한 거대한 한 축으로 존재한다. 북한 인민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올 때 북한군인은 자신들의 인민을 쏘아죽이지만 (다행히 장률 감독은 그것을 땅땅..하는 총소리만을 공허하게 울린다) 중국 공안, 국경수비대는 결코 죽이지 않는다. 단지 잡아서 도로 돌려보낼 뿐이다. 그들이 돌아가서 수용소로 끌려가든 굶어죽든 말이다. 그것은 북한의 내부문제라고 오래 전에 중국은 규정지었다! 한국은? 한국정부는? 한국의 휴머니즘 철철 넘치는 사회종교단체는?

이 영화에서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트럭에 북한인민을 몰래 태워 빼돌리는 조선족을 보여준다. 아마도 지금도 저 땅에서는 저런 식으로 목숨 걸고 배고픈 북한사람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돈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숭고한 일!


이 영화를 만든 장률 감독은 두만강 출신의 조선족이다. 연변대학을 나온 소설가이자 교수였다. 그러다가 영화감독이 되었다. 영화감독이 된 것도 별스럽다. 친구와 이야기 나누다가 “영화 같은 건 누구나 만들 수 있어!”라고 객기를 부렸단다. (아이폰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그리고는 실제 <11세>라는 단편을 만든다. 2000년에.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리고 그는 만드는 영화마다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찬사를 받았다. 장예모나 그 이후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중국영화감독들의 작품과는 다른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다.  장률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 <두만강>은 프랑스와 한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장률 감독으로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기 동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영화저널 쪽에서는 ‘시네아스트 장률 영상미학’ 어쩌구하는 찬사를 늘어놓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장률 감독이 말하고자한 바로 저 곳의 현존하는 실제적 비극인 것이다. 참 슬프다! 다음 주 개봉될 예정이다. (박재환, 2011.3.10)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