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2005-12-12] <반지의 제왕> 삼부작으로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어버린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 잭슨 감독의 1992년도 작품 <데드 얼라이브>를 잠깐 보자. 수마트라 남서쪽 스컬섬에 뉴질랜드 동물국 사람들이 섬 사람들의 추적을 받으며 원숭이 한 마리를 밀렵해 온다. 이 원숭이에게 팔을 물리게 되고, 물린 사람은 점점 흉칙한 몰골로 변한다. 그리고는 좀비처럼 전염되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보아 대작영화 <킹콩>의 영향을 받은 소작이다. 피터 잭슨은 어릴 적 뉴질랜드 살 때, TV에서 방영된 <킹콩>(제시카 랭이 나왔던 킹콩말고 1933년의 페이 레이 주연의 흑백 무성 <킹콩>)을 보고는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할리우드보단, 뉴질랜드에선 확실히 수마트라 근처가 매력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대 로봇의 전설보다는 돌연변이적 괴수가 훨씬 인간적일 수가 있을 것이다.
준비는 다 되었다.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거치면서 피터 잭슨은(할리우드는) 이제 스크린에 못 만들 것이 없다. 스필버그가 <쥐라기 공원>에서 보여준 공룡 쯤은 '그 까이거 대충 할리우드 지나가는 알바생 하나 붙잡아 일 시켜도 PC로 만들어낼 정도로 기술이 축적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피터 잭슨 감독은 그 동안 자신이 이룩해놓은 영화적(기술적) 상상력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지난 9일 있었던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영화는 앞서간다. 물론 그 항해사는 피터 잭슨이고 말이다.
<킹콩>은 어떤가. 영화의 시작은 노스탤지어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시절 미국 뉴욕. 가난하지만 한 건 터뜨리고 싶은 영화감독, 지금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지만 내일은 브로드웨이의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여배우 등등. 원작대로 배는 수마트라 해골섬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섬에서 보게 되는 엄청난 존재에는 피터 잭슨의 상상력을 직접 목도하게 된다. 쏟아부은 제작비를 팍팍 느낄만큼 넘쳐나는 CG 화면을 만나게 된다. 공룡과 킹콩이 싸우다니. 마치 '성룡과 이소룡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보다 더한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헤엄을 잘 칠까'하는 이종격투기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제시카 랭의 짜증나는 히로인을 기억한다면 이번에 나오미 왓츠의 재롱을 공감하며 보게 된다. '괴수에게서 살아남는 인간의 지혜'란게 저렇게 깜찍하게 비굴하구나라는 공감말이다.
186분의 영화에서 킹콩은 영화가 한참 흐른 후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공룡떼와 혈전을 벌인다. 그리곤 배 타고 뉴욕으로 오게된다. 여기서 피터 잭슨은 돈벌이에 눈이 먼 흥행사와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 이외의 관심을 갖지 않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킹콩>이나 <타잔> 같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드벤처이다. 여기서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 혹은 자연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라는 환경보호에 대한 문제를 꺼낼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단지 영화가 심금을 울리고 길이길이 명작으로 남기 위해선 인간의 정을 느끼는 따뜻함이 존재해야할 것이다. 물론 거대 괴수와 연약한 인간의 정서적 교류는 <킹콩>의 간판 브랜드일 것이다. 하지만 피터 잭슨의 <킹콩>에선 결코 느낄 수 없다. 왠지 단절된 느낌이 든다. 공룡이 빌딩을 기어올라가 전투기와 혈전을 펼치는 거대한 액션은 있어도 "야, 둘은 사랑하구나..."라는 엽기적인 필을 받는 감정의 이입은 없다. 킹콩이 손바닥에 인간을 올려놓고 폭포물로 감겨서 입김을 후후 불때 느끼게 되는 정서가 왠지 없다. <킹콩>은 거대한 드라마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함이 넘쳐난다. 하지만 '딱' 그까지이다.
참, 9일 시사회에서 UIP의 유명인사 이은주 부장이 나와 있길래 괜히 아는 체를 했다. 영화 끝나고 이 영화 어떠냐길래 잠시 고민하고는 "태풍 두 배네요."라고 대답했다. 뭐가 두 배 일까? 영화사 사람이야 관객이 두 배 들기를 가장 기대하겠지.
근데 정말 궁금하다. 피터 잭슨은 왜 수마트라에서 힘들게 '킹콩'을 데려올까. 그냥 공룡새끼나 공룡 알 하나 주워오면 훨씬 효과적일텐데. 속편을 위해 남겨두었나보다. 궁시렁궁시렁..
아! 참참참...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에게 반한 필자 <킹콩>에서도 반했다. 킹콩도 반할 만한가? (박재환 200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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