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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메탈 자켓] 명확한 반전주의자 큐브릭

미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2. 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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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9-11-1]    큐브릭 감독 영화의 특징은 집요함에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것은 <클락웍 오렌지>에서 몇 개의 분할된 상황이 모두 어디 하나 내버릴 것 없이 아주 냉정하고 집요하게 캐럭터의 손짓발짓을 쫓아가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샤이닝>에서는 잭 니콜슨의 광기를 그런 식으로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큐브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풀 메탈 자켓>의 이야기는 완전히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전반부는 지옥 베트남에 떨어질 해병대 대원을 만들기 위한 신병훈련소를 보여주고, 후반부는 실제 지옥에 떨어진 해병대원의 참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큐브릭의 전쟁을 보기 전에 우리의 군대를 보자.

  내가 논산훈련소에 들어간 것은 1989년 12월 23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이틀 앞두고 였다. 논산 연병장에는 아직은 ‘어린’ 남자들이 머리는 빡빡 민 채, 연대장의 뻔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리고 저쪽 스탠드에는 부모, 애인, 친구들이 연병장에 서 있는 입소병들을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고 말이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가? 연대장은 가족들을 향해 “..... 이제 이 사나이들은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전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뭐 그런 요지의 연설을 한다. 그리고 어영부영 줄 선 입소병들은 이제 사회와 격리되어 훈련소 내무반으로 배치되기 시작할 것이다. 연대장의 인사와 가족의 박수. 그리고 가족들이 떠나간 자리엔 이제 신병과 기간병(훈련소 내의 조교들 그런 사람)만이 남아 있다. 이전까지 남아있던 화기애애, 당부의 말은 사라지고, "이 새끼. 대가리 박아. 굴러.. " 같은 소리가 순식간에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입소병들은 그날부터 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맙소사!!! 그리고 6주 동안 (나의 경우는 논산을 벗어나는데 정확히 8주가 소요되었다. 중간에 연대장 바뀐다고 열병연습 하는 것은 따로 카운팅되었다)의 기본훈련 뒤에 나는 모 군사학교로 후반기 교육을 6주 더 받아야했다. (물론 군홍보 부대나, 군사촬영소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 겨울에 입대하여, 한 봄이 되어서야 자대에 배치받았고, 내 앞에는 묵직한 클로버 타자기가 놓여졌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나는 총 대신 펜을, 펜 대신 타자기를 상대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다시 큐브릭. 이제 미국의 형편없는 어중이떠중이 젊은이들이 훈련소에 배치된다. 해병대 신병훈련소. 영화의 첫 장면은 7분 동안 하트만 상사의 군기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일말의 희망과 기대 속에서 상사의 일장훈시를 듣고 있다. 이내 이들은 자신들을 극도로 모욕하고, 극도로 멸시하는 상관의 존재에서 군대 밖의 인생을 잊어버려야 함을 실감하게 된다. 큐브릭은 7분 동안 집요하게 이 대결구조를 펼친다. 억압자, 상사, 징벌자, 책임자, 권능의 화신 하트만 상사와 모든 것을 - 심지어 생명까지 - 담보로 맡겨버린 불쌍한 신병들을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비춰준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이들 신병들은 살인킬러 훈련을 받는다. 하트만의 이야기. 케네디를 죽인 게 누구지? 오스왈드. 오스왈드가 75미터 거리에서 어떻게 케네디를 암살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스왈드가 해병대 훈련소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훈련병들은 그 어떠한 과거를 지녔고, 실제 어떠한 능력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오직 살인병기로 길들여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민족, 가족을 위한 선한 마음은 애당초 묘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훈련에서 처지는 한 동료 훈련병을 왕따시키고, 린치를 가함에 있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피로와 억압의 시간은 다른 희생자를 만들고 집단적 보복을 가함으로서 조그마한 심정적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것도 변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잔인함의 보상은 당연히 더욱 잔인함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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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생활해 본 사람이면 내무반에는 그런 고문관이 한두 명쯤 있음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이렇게 흘려 돌이켜보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달릴 수 없다든지, 뭔가를 욀 때 남보다 백배의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인간이 존재함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단순과격무식의 공간과 시간이 엄연히 존재했음에 씁쓸할 뿐이다)

  큐브릭 감독의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구스타프 해스포드(Gustav Hasford)의 1979년 작품 <단기제대병(The Short-Timers)>이다. 80년 <샤이닝> 이후, 칩거에 들어간 큐브릭은 이 작품을 들고 87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숨어버렸고 99년 죽을 때까지 <아이즈 와이드 샷>에 매달렸다. 해스포드는 미국 앨러배머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베트남 전투 부대원으로 참전하였다. 그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의 두 번 째 소설은 <단기제대병>의 연작물로서, 조크 일병의 월남생활이 그려지는 <The Phantom Blooper>란다. 작가는 세번째 소설 <A Gypsy Good Time>을 완성한 후 93년 그리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

  큐브릭은 그가 이전에 만든 전쟁영화 <영광의 길>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같은 반전주의자 입장에서 영화를 집요하게 만든다. 전반부는 인간성을 차압당하고, 하나의 병기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것은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오직 시민권을 얻기 위해 입대하고,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힘든 군사훈련을 하는 신병과는 또 다른 의미이다. 이들 신병에게는 애당초 애국이나 애족의 관념도 없고, 그들이 보내질 월남이 아시아에 있는지 아프리카에 있는지도 관심 밖의 사항이다.

  한 신병의 광기어린 눈빛의 자살 장면이 있고나서, 관객은 곧바로 문제의 땅 베트남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나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처럼 정글이 아니라 마을이다. 이것은 큐브릭이 베트남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이다. 이 영화는 모두 영국에서 셋트 촬영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헬리콥터와 장대한 포격 씬이 있는 광기의 전장은 이제 중세의 성곽 빼앗기 전쟁처럼 갑갑하고 소규모화된 전투의 연결고리만이 존재하게 된다.

  살아서 신병훈련소를 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창녀와 도둑놈들뿐인 베트남이다. 이들 신병에겐 베트남을 지킬 의지도, 목적도 없다. 이것은 미군철수 이후에 명확해진 전세계적 정치놀음과 이데올로기의 자존심에 얽매인 병사들의 죽음일 뿐이다. 영화 말고, 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을 보면 월남전의 발발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잠깐 나온다. 난 그때 처음으로 월남전의 기원이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원죄였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마지막에 한 월남 소녀병에 희생 당하는 미군 분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어이없는 광경을 보라. 신병훈련소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장대한 전투에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도 통하지 않는 그런 ‘황인족 계집애’의 총질에 벌벌 떨다 죽어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반전에 촛점을 두다보니, 월남전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예 무시해 버렸다. <지옥의 묵시록>이 전쟁에 미쳐가는 인간을 다루었고, <플래툰>이 전쟁에서 함몰된 자아를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전쟁 자체의 부도덕함과 비인간성을 다루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영광의 길>에서처럼 참가자인 군인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게임인 것이다. 그리고, 큐브릭 감독도 전쟁에의 광기만 남긴 채, 그 속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의 욕망은 거세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무거운 느낌이 들 뿐이지, 실제적으로 전쟁에 대한 반감은 탈색되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전쟁의 무의미함을 내세우기 위해 월남인을 희화화시키고, 그들의 공간을 장난감으로 격화시켜버린 것이다. 큐브릭 감독자신도 또 하나의 권능의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영화에서 묘사되는 'Parris Island'신병훈련소는 영국Bassingbourne의 실제 군사훈련기지라고 한다. (박재환 1999/11/1)

Full Metal Jacket (1987)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매튜 모딘, 아담 볼드윈
한국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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