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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쉬 페이션트] 아라비아의 로맨스

미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2. 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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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8-10-5]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사막 풍경은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게 그려진다. 만약,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를 봤으면,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비행기로 아프리카의 초원을 날아갈 때의 그 장관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막에는 모래 밖에 없지만-가끔 가다 야자수에 오아시스, 그리고 낙타를 타고 가는 터번 두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막은 여전히 거친 모래와 전갈만이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황량한,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도 한밤중에 나타난 모래바람이 차와 사람을 모두 삼켜버리는 장면이 있다. 사막도, 모래바람도 항상 있는 그 곳에 있지만, 우리네 인간은 그곳까지 기어 들어가서는 빼앗고, 탈선하고, 죽어간다... 슬픈 일이다. 어쨌든 여인네의 몸매같은 에로틱하고도 신비로운 모래곡선을 따라, 우리는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사하라로 떠나볼까한다.

amazon.com에서 이 영화의 원작자 Michael Ondaatje를 찾아보니, 그는 소설과 시집을 몇권 낸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영화만큼이나 소설도 읽어볼만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혹시나 종로서적에서 찾아보니, 역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모르긴 해도, 킵으로 나오는 (인도인인지 스리랑카인인지..) 인물로 미루어 보아, 영국과 피식민지 국가의 인물군이 하나의 갈등요소로 충분히 등장했으리라 본다. 시간나면, 읽어봐야지...

이 영화를 추석특선이랍시고 DCN(OCN의 전신)에서 방영하기에 단단히 각오하고 보았다. 사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비디오로 볼 기회는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태 제대로 감상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 영화를 이제사 보고서야 때늦은 후회마냥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마, 오스카마저 석권하지 않았다면, 자신있게 나의 베스트 무비로 삼고 싶을만큼 말이다. 베스트무비라고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더욱 이 영화를 아끼는 영화의 목록에 감히 추가하고 싶은 것이다. 로맨스, 금지된 사랑, 이룰수 없는 약속, 끝없는 기다림, 죽음, 소외, 고독, 역사...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다 녹아들어간 영화이다. 게다가, 이국적인 음악과 적절한 매력으로 뭉친 배우.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는 매력의 요소들이다.

만약 , 이 영화가 그 당시의 제국주의, 혹은 전쟁의 광기 이교도간의 사랑만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난 보다가 주저없이 꺼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욕심을 전혀 내지 않고 오직 "사랑의 여정"을 택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요, 미덕이요, 장점이다.

영화는 회상씬과 현재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너무나 관능적인 사막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며, 쌍발기 한대가 추락한다. 그리고, 원주민에 의해 거의 타버린 형체의 생존자가 이태리에 위치한 군인병원에 호송된다. 자기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이 남자는 이제 단지 "잉글리쉬 페이션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다. 회상과 플래쉬 백으로 뒤쫓아가는 이 남자의 과거는 이렇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헝가리 출신의 백작 알마시 (랄프 파인즈)이다. 그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서 영국지리학회 회원들과 함께 북부 아프리카의 지도를 작성하는 작업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학회의 자금이었는지, 영국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비밀스런 작업이었는지 간에 사막에 모인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교양과 이국의 정취를 맘껏 향유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동료 Geoffrey Clifton (Colin Firth)의 아내 Katharine(크리스틴 스코트 토마스)을 보는 순간 숨이 멈춰버릴 것 같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음..과격한 표현인가?) 그리고, 둘은 이내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둘을 잇는 감정은 쉽게 설명되어질 수 없다. 랄프 파인즈의 이미지는 차갑고, 이성적이며, 때로는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한 냉정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지성과 미모와 함께 충분한 자제력을 가졌던 캐서린은 급격히 그에게 빠져든다. 사랑을 한 후, 알마시 백작은 매력적인 대사를 남긴다. (여자의 인후부에서 쏘옥 들어간 특정부위를 가리키며) "여기가 어디지? 앞으로 알마시 해협으로 명명하도록 국왕께 보고하겠다.."라고.. 나중에 친구가 가르쳐주는 용어는 정말 멋없게도... "쇄골절흔"이란다... (외워뒀다가 써먹어야지...^^)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담당한 캐나다군 소속 간호병 Hana (Juliette Binoche)는 약혼자를 이 전투에서 잃는다. 그리고, 부대이동 중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눈앞에서 폭격으로 죽어갔고... 한나는 왠지 모르게, 모든 기억을 상실하고, 가끔 가다 노래만 흥얼대고 있는 이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곧 죽어갈 이 환자를 끝까지 지키기로 한다. 그래서, 위험한 부대이동 대신 폐허가 된 수도원에 피난처를 마련하여 전쟁이 끝나기만을 아니면, 알마시가 죽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한나는 이곳에서 지뢰제거 임무를 맡은 인도인 장교 Kip(Naveen Andrews)과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회복을 기다리던 (=죽음을 기다리던) 어느날 이곳에 Caravaggio(Willem Dafoe)가 나타난다. 이야기는 이제 알마시 백작이 어떻게 죽음을 앞둔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되어버렸는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친구의 아내 캐서린과의 사랑이 깊어가고, 밀회가 잦아질수록, 둘은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제프리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아끼는 쌍발기에 캐서린을 태우고는 알마시에게 돌진한다. 그 사고로 제프리는 즉사하고, 캐서린을 중상을 입는다. 사막 한가운데의 매력적인 그 "수영하는 사람들의 벽화가 있는" 동굴로 알마시는 캐서린을 옮긴다. 중상을 입은 그녀 -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알마시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가장 가까운 마을로 사흘 밤낮을 걸어간다. 하지만, 경우 도착한 영국군 진지에서 그는 스파이라는 오해를 사고 잡혀간다. 그는 기차에서 탈출한다. 사막의 동굴에서 죽어가는 캐서린을 위해, 그는 마지막으로 배반을 생각한다. 그가 그 동안 그린, 모아둔 사하라 일대의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겨주고, 쌍발기를 얻는다.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선 한명을 위해 여덟 명이 죽지만, 이 영화에선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여자 하나를 구하기 위해 수천 명이 죽어야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이른바 "파워 오브 러브"이기 때문이다....) 그가 허겁지겁 날아왔을때 이미 캐서린은 죽어 있었다. 그녀의 사늘한 시체 곁에는 그녀가 죽어가며 써내려간 슬픈 사랑의 이야기만이 남아있을 뿐..... 알마시는 타고 온 쌍발기에 캐서린을 앉히고는, 연합군쪽으로 날아와서는 추락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된 것이다.

카라바지오는 원래 영국의 스파이였고, 그는 알마시가 넘긴 사막지도 때문에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두 엄지손가락을 잘리웠고, 그 복수를 하고자 알마시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알마시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은 카라바지오는 마침내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킵은 떠나가고, 한나는 끝까지 알마시의 곁에서 그의 최후를 지켜본다. 그의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이 영화의 음악은 Gabriel Yared가 맡았다. <베티블루 37.2>의 음악이라면 아마, 이 영화의 음악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바하의 Aria From The Goldberg Variations는 영화를 더욱 클래식컬하게 만든다. 한나가 (지뢰가 설치되어있는줄도 모른채) 고물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 곡은 전쟁에서 피어난 한떨기 장미같은 부조화와 알수 없는 멈춰선 시간의 공간감을 표현하고 있다. 감독 밍겔라가 원래 뮤지션이었다고 하니, 그의 음악성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에 핀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비록, 불륜과 죽음, 반역과 배신이 얼룩진 이야기이지만, 충분히 남녀간 사랑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의 처지와 선택을 이해하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무국적성을 띈다는 점도 새겨볼 만하다. 영국인 환자는 결코 영국인이 아니었으며, 캐나다 간호원은 끝까지, 캐나다인임을 내세우지 않으며, 인도인은 영국군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목숨을 걸고 지뢰를 제거하고 있지만 말이다....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절망적이며, 이해가는 도피의 수단처럼 느껴진다.

곧,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 로렌스 감독판>이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도, 즐거운 일이다.  (박재환 1998/10/5)
 
English Patient (1996)
감독: 앤소니 밍겔라
주연: 앨프 파인스, 쥴리엣 비노쉬, 윌리엄 데포, 크리스틴 스코트 토마스
1996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 9개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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