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2023. 11. 24. 11:09유럽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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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나타샤’, ‘아나스타샤’ 같은 낭만적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레닌과 볼세비키, 공산주의 같은 무서운 얼굴로 바뀐다. 결국 왕정국가는 무너지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들어선다. 그리곤 1991년 고르바초프를 마지막으로 그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가로 존재했다.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로? 시계추는 1938년으로 돌아간다. 레닌의 뒤를 이어 1922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소련과 세상의 절반을 ‘공산주의’로 장악했다. 물론 마르크스 사상만으로 인민을 무장시킨 것은 아니다.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스탈린 치하의 한 시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트로츠키도, 미제(!)와의 전쟁도, 카레스키의 강제이주도 없다. 단지 소련 비밀경찰의 피 묻은 철권통치의 실체만 보여준다. 

 1938년의 소련은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지배하던 시기이다. ‘대숙청’(the Great Terror)의 시기라고 불린다. 스탈린은 비밀경찰조직 NKVD(나중에 KGB로 불리는 조직!)으로 정권을 완정 장악한다. 단지 민주화인사(?)나 반대파만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다. 인민을 송두리째 감시하고, 잡아 넣고, 고문하고, 처형하고, 영원히 입을 다물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 

 주인공 표드로 볼코노고프는 NKVD 소속 대위이다. 군화를 신고 빨간 운동복에 가죽점퍼 차림, 빡빡 민 머리는 NKVD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위와 권능을 상징하는 듯하다. 보기만 해도 위압적인 관공서에서 그들은 배구를 하거나 사격연습을 하고, 시시덕대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어느 날 표드로는 출근하는 길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직속상관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다. 새로운 지휘관 골로브냐 소령이 부임하고 사무실은 어수선하다. 요원들이 한 명씩 불러간다. 재검증을 받는 것이다. 사상검증이든, 업무평가든. 탈락자는 죽음이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표드로는 자신이 처리한 보고서를 챙겨 들고 탈출한다. 골로브냐 소령은 표드로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의 임무는 하나, 잡아서 처형하는 것이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영화는 1938년의 소련의 도시를 보여준다. 그게 1938년인지, 1950년인지, 2023년인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그냥 우중충하고, 전차가 다니고, 러시아어 격문이 휘날리는 공간이다. 표드로가 탈출한 이유는 존재론적이다. 억울하게 죽은 동료가 유령이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는 ‘자네가 저지른 만행을 뉘우치고, 피해자 유가족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다. 단 한 사람에게서라도 용서를 받는다면 구원될 것이라고, 아니면 지옥으로 갈 것이란다. 이제 표드로는 빼돌린 비밀문서를 들고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조직이 마구 죽인 사람들의 유족을 찾아가서는 “당신 남편, 당신 아내, 당신의 아들은 죄 없이, 고문 당하고, 거짓 자백으로 처형되었다”고 말한다. 누가 그 말에 “아, 그래요?” “당신이 용서를 빈다니 용서합니다.”하겠는가. 골로브냐의 포위망은 좁혀져 오고 표드로의 구원의 시간은 줄어만 간다. 

영화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만나는 죄의식과 구원의 여정을 그린다. 영화에서는 NKVD의 잔학성을 수차례 보여준다. 그들은 의심가는, 아니 ‘거의 아무나’ 잡아 들이고, 잡아 들인 사람은 다 처형해 버린다. 처형을 담당하는 도살자는 총 하나만 있으면 된다. “효율적으로, 총알 하나로 끝장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쏘는 거야”라고 보여준다. 

이른바 ‘소련 대숙청’ 시기는 1937년에서 1938년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이른다. 공산당의 숙청뿐만 아니라 농민탄압, 소수민족 탄압이 이뤄졌다. 스탈린에 의해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된 니콜라이 예조프에 의해 대숙청이 진행되었다. 물론, 예조프의 끝도 좋지 않았다. 스탈린은 베리야를 후임으로 보냈고, 예조프는 베리야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된다. 기밀 해제된 소비에트 문서에 따르면 이 시기에 68만 명이 총살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수치는 지극히 ‘공식적’인 수치일 뿐이다. 훨씬 더 많은 인민이, 정적이, 공산당원이,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다시, 영화로. 볼코노고프가 한 유족을 찾아가서는 “당신 아내는 억울하게 죽었다. 내가 대신 용서를 빈다.”고 하자, 그 남자의 반응은? “그 여자는 죽어도 싸!”마려 대위의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거짓말로 충성을 시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아이에게 “너희 아버지는 죄가 없어. 원하는 대답을 강제로 하게 만들 때 쓰는 특수한 방법, 즉 고문으로 죽였어”라고 하자 아이가 “예전에 파시스트에게 당했을 때에는 말을 안 했는데 이번엔 했네요. 파시스트보다 고문을 잘 하나 봐요.”라고 말한다.    

 스탈린의 공산체제의 잔혹함과 비인간적 행위는 인류에 대한 초대형 범죄일 것이다. 누구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인가. 스탈린? NKVD수장? 볼코노고프? 그들이 단지 “악몽을 꿔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면 되는 것인가? 자기가 두 다리 뻗고 잘 자면, 역사가 다시 쓰이고, 희생자가 살아오는가. 볼코노고프 대위가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라고 하자 한 사람의 반응은 “새로운 농담이군”이란다. 

이제는 푸틴의 러시아가 되어 버린 저 거대한 제국에서 끔찍한 일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볼코노고프를 연기한 유리 보리소프 배우는 지난 3월에 개봉된 핀란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6번 칸>에서 존재감 갑의 동석자로 나왔었다.

 

[리뷰]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나타샤’, ‘아나스타샤’ 같은 낭만적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레닌과 볼세비키, 공산주의 같은 무서운 얼굴로 바뀐다. 결국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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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영어제목: Captain Volkonogov Escaped) ▶감독: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츄포브 ▶출연: 유리 보리소프(볼코노고프 대위), 티모시 트리분체프(골로브냐 소령) ▶2023년 8월23일 개봉/ 126분/15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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