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정윤석 감독,2016)

2017. 9. 5. 22:22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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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거대한 농담’

 


 

[박재환 2017-09-05] 11:31:39


 

“김구 짱, 김정일 만세, 전두환 장군 만세!”

 

지난 달 24일 개봉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라는 제목부터 ‘불온한’ 다큐멘터리에는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의 기이한 활약담이 담겨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상천외한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초반부에 ‘백범살인일지’라는 노래가 나온다. (비교적 덜 알려진, 그러나 알수록 논란이 가열되는) 백범 김구의 젊은 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내용이다.

 

만주에서 있었던 일 김구가 지나가다 / 국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X발 왠지 모르게 화가 나는 것 같아 / 어떤놈이 일본말을 쓰는가봐

김구 짱! 김구 짱! 김구 짱! 이승만 XX!

 

정윤석의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김구 짱! 이승만 XX!”이라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 시작하여 밑도 끝도 없이 사회체제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놓는다. 게다가 제목이 ‘서울불바다’라니. 국정원이 기겁할 노릇이다. 그렇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이야기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 펼쳐진다.

 

권용만, 장성건 두 멤버로 구성된 밴드 ‘밤섬해적단’은 이른바 그라인드 코어밴드를 지향한다. 이게 어떤 장르인지는 유튜브에 ‘10 Greatest Grindcore Bands’란 영상을 보면 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하드한 록 비트에 괴성과 비명을 지르는 장르이다.

 

밴드 ‘밤섬해적단’은 주로 시위현장에 나가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서울대법인화를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시위를 벌일 때도, 강제철거 현장에서도, 제주도 강정마을 데모 현장에도 참가하여 시위대에게 열정과 투지를 북돋워준다.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은 그들이 이런저런 시끄러운 곳에서 판을 벌리고 더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의 음악적 성과나 혁명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록 스피릿을 이야기하기도 난해하다. 그라인드코어 밴드를 누가 제대로 평가하리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의 핵심은 밤섬해적단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음반 프로듀서인 박정근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박정근은 ‘음악성 판단불가’, ‘시장성 제로’의 밤섬해적단 음반을 프로듀싱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라인드코어 록’보다 SNS를 좋아하는 게 문제였다. 음반은 지독히도 안 팔리지만 그의 SNS, 트윗질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파워 트위터리안 박정근씨는 음악을 논하기보다는 트윗에 빠져든다. 그는 이런 뉴스, 저런 소식을 마구 리트위하고, 품평한다. 그 중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사이트도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사이트이다. 이걸 퍼나르다 공안당국의 레이다에 걸린 것이다. 그는 재판을 받는다.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글 200여 건을 리트윗해 퍼트리고, 유튜브에 있는 북한 군인들의 행진모습이 담긴 영상을 링크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밤섬해적단’의 시끄러운 노래로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박정근의 재판이야기로 이어진다. 박정근 씨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퍼거슨 감독의 말이 정답이다. ‘우리민족끼리’의 쓸데없는 글에 쓸 데 없는 리트윗을 남발한 것이 죄라면 죄인 셈. 그런데 박정근 씨는 긍정의 뜻으로, 공감의 의미로 리트윗하는 게 아니다. “김구짱, 이승만 XX” 노랫말처럼 “김정일 개XX”를 리트윗하고 북한을 맘껏 조롱한다. 법원도 난감할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사이트를 접속한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지, 리트윗한 게 죄가 되는지, 농담 첨가한 것이 죄가 되는지. 그의 농담은 김정일-김정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승만도, 전두환도, 이명박도 끝없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아쉬운 것은 그 모든 조롱이 당사자에게 뼈아픈 일침이 아니라,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뿐이란 것.

 

그동안 민주화의 고된 역경을 지나온 우리나라 필화사건과 공안사건에서 이 사건만큼 허망하거나 황당한 사건도 드물 것이다. 결론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2014.8.28.)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라는 굉장한 제목을 단 다큐멘터리는 결국 지금은 해체한 밴드의 운명과 그 밴드 프로듀서가 펼친 어이없는 트윗에 대한 우화(寓話)이다. 어제(9/4)까지 1966명의 관객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우와! (KBS미디어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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