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시효인간’ 공유

2014. 1. 22. 11:2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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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개봉되어 '변호인'의 흥행 돌풍에 밀려 관람 후순위로 밀린 영화가 있다.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이다. 이미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붉은 가족> 등 남파된 북한 특수공작원의 실력과 속사정을 충분히 보아왔기에 "또 무슨 간첩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공유’라는 배우가 가지는 아우라와 영화 속 '자동차 추적 씬'에 대한 입소문 덕에 만만찮은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북한의 정세만큼 다이내믹한 '용의자'를 한 번 보자.

 

공유,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표적이 되다
 
공유가 연기하는 지동철은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그의 숨겨진 과거와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은 영화 초반에 다 드러난다. 그는 한때는 날리던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원. 귀신같은 솜씨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그가 목숨 바쳐 충성하고자 했던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한다. 사랑했던 여자와 얼굴도 본적 없는 딸마저 희생당하자 그에게는 살아있을 이유가 딱 한가지뿐이다. ‘그 놈’을 쫓아 서울로 잠입한 것이다. 그 놈(김성균) 또한 한때는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원이었고 지금은 전향하여 대한민국 국정원의 특수요원이 되어있다. 공유는 이제 국정원과 기무부대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그의 복수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언덕길을 마구 드라이빙하며, 한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며, 오직 복수를 꿈꾼다.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으리오.

 

우리 이웃에 공작원이 있다
 
한국(남한)에 넘어오는 것은 살인기술로 연마된 무장공비만이 아닌 모양이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할리우드 스턴트맨보다 더 운전을 잘하고, 금메달리스트보다 사격술이 더 뛰어난, 그야말로 ‘제이슨 본’ 같은 놈들이 한둘도 아닌 여럿이 서울에 암약 중이다. 그리고 그들만큼 뛰어난 실력의 우리 특수기관 요원들이 촘촘하게 그들을 감시하고, 뒤쫓고, 은밀하게 작전/역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나.

 

한국과 북한의 대치상황이 반백년을 넘고, 1,2세대 리더들이 세상을 떠나자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북의 대치정국은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버금가는 볼거리로 전락, 혹은 진화했다. 이승복 소년이 대표하는 이데올로기의 따분한 대립은 사라지고 육신과 육신이 부딪치는 강한 액션영화로 다가온다. 물론, 이것이 바로 한국영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족의 소중함이나 혈육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빠져서는 안 되는 주요 모티브가 된다. 당성이나 혁명성, 통일의 대업 같은 것은 근사한 포장지에 불과할 뿐이다. 관객들도 따분한 거시적 정치/군사적 그림보다는 가족 찾기의 탈을 쓴 파편화된 특수요원 개인의 활약상에 더 매료된다.

 

북한사람이 나오는 영화
 
물론, 지금도 ‘똘이 장군’의 돼지가 상징하는 북한묘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북쪽 사람이 일방적 괴물이거나 단순한 악당이 아닌 사람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1965년 <남과 북>이란 영화는 지금 보아도 그 설정이 놀랍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태풍>을 거치면서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우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관객의 기호에 들게 되었다. <의형제>처럼. 당사자이며, 관찰자, 그리고 국외자의 입장이 혼재한 캐릭터가 관심을 받게 된다. 요즘 들어 북한의 공작원 이야기가 쏟아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대를 그리는 것이든, 시대를 앞서 이야기하든 말이다.

 

공유의 하이브리드 액션이 가능했던 것은 원신연 감독의 힘이다. <피아노맨>(96)부터 무술감독을 했던 원신연 감독은 드라마를 덮어버리는 액션이나, 액션을 놓치는 드라마를 피해간다. ‘구탈유발자’, ‘세븐 데이즈’ 등 놀라운 '상황설정‘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액션영화의 미덕을 제대로 살렸던 원신연 감독은 한동안 실사판 <로보트 태권브이>의 제작에 매달렸다. 안타깝게도 ’태권브이의 비상‘은 좌절되었고 '북한공작원 유행' 시대에 합류하였다.

 

관객들은 지동철의 과거사나, 국정원의 어두운 공작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도 있고, 관심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이미 ‘아이리스’를 경험하면서 상상력의 공간은 충분히 넓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박희순이라는 마초 캐릭터나 조성하라는 악당의 출연에 크게 놀라거나 비현실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워낙 남과 북의 상황이 특수하기 때문에.

 

공유의 액션 연기에 취하고, 원신연 감독의 액션 연출에 매료되었다면 ‘용의자’는 훌륭한 액션영화임에 분명하다. ‘남과 북’의 대치와 ‘우리 내부의 적’ 이야기는 실제 요즘 영화팬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소재인데 말이다.

 

영화 ‘용의자’에서 놀라운 것은 영화 마지막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라며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멘트가 점점 소실되는 점이다. ‘슈퍼노트’와 ‘슈퍼볍씨’까지 등장시키더니 휘발성 강한 충무로의 계륵까지 갖다 붙인 것이다. 아마, 이것 때문에 ‘용의자’는 앞으로도 많이 언급될 영화일 듯하다. (박재환, 2014.1.22.)

 

 

 

 

 

용의자 (2013년 12월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감독: 원신연
출연: 공유, 박희순, 조성하, 유다인, 김성균, 조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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