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앤 에이리언] 제 3종과의 결투

2011. 8. 12. 10:38미국영화리뷰

반응형



한때는 서부극이 최고의 인기 장르였던 시절이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상 잔뜩 찌푸린 차가운 총잡이의 면모를 보여 주기 전에 존 웨인이란 전설적 거물이 있었다. 물론 이들 말고도 한 시절을 풍미한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서부극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알란 랏드, 글렌 포드, 율 브린너,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등등.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총 한번 씩, 아니 여러 번씩 쏘아보았다. 존 포드와 샘 페킨퍼 감독을 거치면서 서부극은 수십 년 동안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정의의 보안관도 있었고 천하의 악당도 있었다. 못된 인디언을 척결하는 백인 기병대도 있었으며 거꾸로 인디언 영역을 침범한 백인 무리를 처단하는 수정주의(?) 서부극도 있었다. 스파게티 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것도 있었고 참 희한하게도 만주 서부극이란 하위 장르도 생겨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부극은 점점 잊힌 장르가 되어갔다. 물론 요즘도 서부극은 꾸준히 만들어지긴 하지만 예전처럼 신나는 서부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그 누구보다 먼저 총을 뽑아드는 보안관도, 말 위에서 괴성을 지르며 백인을 위협하는 인디언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골드러시도 현대인의 흥미를 끌어들이기엔 무리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있다. <카우보이 앤 에이리언>. 총 잘 쏘는 서부의 사나이들이 이번에 외계인 맞서 싸운다. ‘몇 푼 안 되는 달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와 지구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발칙한 할리우드의 상상력이여!

서부시대 총잡이, 에일리언 군단에 맞서다

1873년. 모래먼지가 휘날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황량한 서부지역. 한 남자(다니엘 크레이그)가 깨어난다. 상처투성이 몰골이다. 하나 특이한 것은 한쪽 손목에 괴상한 금속 팔찌를 낀 채이다. 이 남자는 자기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기억할 수가 없다. 곧이어 나타난 총잡이 무리들. 이들은 이 남자를 현상수배범으로 보고 사로잡으러한다. 그런데 이 남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광석화같이 이들을 해치운다. 그리고 말을 뺏어 타고 인근 마을 ‘앱슐루션’으로 향한다. 마을에서 그는 패악질을 해대는 젊은 악당 퍼시를 두들겨 패지만 이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퍼시의 아버지이자 이 마을의 파워맨인 달러하이드(해리슨 포드)의 금화를 강탈해간 갱단 두목 제이크였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과거를 기억해내지를 못한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미스터리 여인 엘라(올리비아 와일드). 제이크가 연방보안관에게 호송될 때 갑자기 이 바람 부는 서부마을에 황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밤하늘에  불빛이 반짝이더니 U.F.O.가 날아와서는 마을에 레이저빔을 마구 쏘아대며 엉망으로 만든다. 그 뿐만 아니라 ‘뽑기 기계’처럼 하늘에서 고리가 날아와서는 마을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간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상황인가. 제이크는 달러하이드와 마을 사람, 보안관, 그리고 갱단, 게다가 인디언들까지 힘을 합쳐 외계침략자와 맞서 싸우게 된다.

서부극의 그림자

영화의 배경은 1873년 애리조나 준주( Territory)이다. 서부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미국사이다. ‘Territory’는 정식 주로 편입되기 전의 호칭이다.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달러하이드가 자신이 남북전쟁 시절 대령으로 엔티텀 전투(1862)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영화 초반에 제이크를 얕보고 덤벼들었던 총잡이들의 말안장에는 사람 머리가죽이 매달려있다. 남북전쟁 전후에 멕시코 접경지역에서는 인디언 사냥이 있었다. 코맥 매카시의 묵시록적 서부극 소설 <핏빛 자오선>은 그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 (▶박재환 북 리뷰) 1850년대 미국이 멕시코와의 ‘싱거운’ 전쟁 끝에 드넓은 멕시코 땅을 차지하고는 그 곳에서 인디언을 몰아내기 위해 비인간적 작전을 펼친다. 인디언 사냥꾼을 활용한 것이다. 인디언 한 사람을 처치하면 몇 달러씩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 증명방법으로 인디언 머리가죽을 벗겨오는 것이다(Scalp hunting). 물론 머리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수법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가장 악명을 날린 전설적인 헌터로는 존 글랜턴 대령이 있었다. 처음에 제이크가 앱슐루트 마을의 술집에 들어갔을 때 카운터 뒤쪽에 사진 한 장이 얼핏 보인다. 아마도 전설적 악당 ‘빌리 더 키드’ 같아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아직 세상에 악명을 떨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 이 영화의 옥의 티인 셈. 영화 마지막 자막을 보면 외계인을 물리친 후 앱슐루트 타운은 붐 타운으로 급성장하여 투산(Tucson)이 된단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지리적 배경을 애리조나 준주 혹은 뉴 멕시코 준주라고 달리 나온 것은 1860~70년대에 여러 번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 왕년의 서부극에 자주 등장하는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 형제들이 활동하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다.

제 3종과의 총싸움

영화 <카우보이 앤 에이리언>은 미국 스콧 미첼 로젠버그라는 작가가 쓴(그린)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할리우드의 거물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원작소설을 보고는 금세 ‘대박’이라며 영화화 작업에 뛰어든다. 기존의 서부극과는 달리 이종격투기식 재미가 있는 새로운 콘셉트이니 말이다. 서부시절 외계인이 지구에 침략했을 경우 지구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흥미로운 상상이다. <아이언 맨> 시리즈로 새로운 SF영웅을 창조한 존 파브로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007 제임스 본드로 이름을 날린 다니엘 크레이그와 왕년의 액션 히어로 해리슨 포드를 캐스팅했다. 제작비가 1억 6천만 달러라니 초특급 블록버스터이다. 그런데 제작비를 들인만큼 큰 시각적 만족은 주지 못한다. 아마도 <아바타>와 <트랜스포머> 류를 경험하면서 웬만한 우주 창조물에는 공감을 못하는 모양이다. 외계인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구를 찾아와서는 지구인을 납치하여 해부하고 관찰하는 것은 <E.T.>의 식물학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존 포드 감독의 걸작 서부극 <수색자>와 자신의 SF <클로스 인카운트>를 많이 활용했다. 굳이 <수색자>가 아니더라도 서부극에서는 추적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인디언에게 납치당한 백인가족을 찾아나서기도 하고, 열차강도를 뒤쫓기도 하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서부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 추적자(POSSE) 무리에 백인이고, 인디언이고, 보안관이고 갱이고, 게다가 외계인까지 동참한다는 것이다. 연합작전을 펼친다는 점에선 흥미롭지만 실제 그다지 시너지 효과는 없다. 결국 해리슨 포드와 다니엘 크레이그가 메인 액션은 다 펼칠 테니 말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UFO를 보았다는 주장만큼이나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UFO안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많다. 요즘이야 의대 해부학 서적이나 첨단 멀티미디어 DVD하나 구해 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구글이나 위키피디아로 찾아보든지.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데려가서 뭘 할까. 마치 지구인들이 모르모트 이용하듯이 의료실험을 할까? 외계인이 너무 흉측해 보여 성형외과적 관심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서부극의 향수를 떠올리는 영화팬들에게도, SF마니아에게도 두루두루 만족 못 시켜주지 못한 범작이 되어버렸다. 아쉽다. 그런데 이런 이종/변종 서부극이 처음은 아니다. 찾아보니 이미 1960년대에 <빌리 더 키드 vs. 드라큘라>나 <제시 제임스, 프랑켄슈타인의 딸을 만나다> 같은 B급 저예산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빌리 더 키드나 제시 제임스는 수십 차례 영화화된 서부시대의 대표 악당들이다. (박재환, 2011.8.1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