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지금 북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굶지 마, 죽지 마, 살아남을 거야

2008. 5. 26. 13:20다큐멘터리리뷰

차인표 주연의 영화 [크로싱]이 곧 개봉할 예정입니다. 소위 북한이탈주민 (탈북자)을 다룬 다큐멘터리 터치의 영화랍니다. 김태균 감독은 10KBS TV를 통해 방송된 다큐를 보고 영화로 만들기로 작정했답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그때는 그냥 시청자 입장이었고 지금은 KBS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KBS미디어 있습니다. ^^ (2008/2019)

 

[크로싱] X같은 ‘인생은 아름다워’ (김태균 감독 Crossing, 2008)

(박재환 2008.6.25.)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8년 12월 20일 오후 8시, KBS 1TV [KBS스페셜]에서는 충격적인 르포 프로그램을 하나 방송했다. 제목은 <<1998년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였다. 일본..

www.kinocine.com

 KBS방송: 19981220일 오후 8~9KBS스페셜 

나 학교 다닐 때 아주 열심히 공부한 과목 중의 하나가 <동북아정치론>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북한의 실정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보고 난 은근히 나의 판단이 옳았음에 놀라고 말았다. 기아선상의 북한의 실정이 단시간에 성질이 아닌, 체제의 문제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디오를 보여준 KBS의 의도나, 이 프로를 지켜봤을 대부분의 시청자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충격적인 모습을 대하며, 현재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분노를 느끼며 어디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모금이라도 할 방법이 없나 알아볼 것이다. 그래서 난 두 가지 관점에서 이 프로의 감상을 말해볼까 한다. 하나는 진짜 이삼성 교수님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민족 최우수주의로 배고픈 민족의 현실을 눈감는 것은 죄악이라는 관점과 또 하나는 탁월한 영도자 등소평 동지의 先富論에 입각한 북한의 미래관측이다. 

우리의 동포가 굶어죽어가고 있다...... 

이전에 뉴스위크나 타임지를 보면 소말리아나 이디오피아의 비쩍 말라붙은 어린이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져서 뼈마디가 내다보이고, 퀭한 눈은 촛점을 잃었고, 몸에 붙은 파리조차 내쫓을 힘이 없어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며 많은 지구인들이 사랑의 손길을 뻗쳤었다. 물론 그 아프리카 땅에서 어떤 정치적·군사적 문제와 지도자의 비리가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부자나라의 마음 좋은 산타클로즈는 열심히 돈과 먹을 것을 보내었다. (당시 내가 보았던 기사에 따르자면 우리 돈으로 5천원이면 이디오피아 아이들이 한 해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의 자선단체가 특별한 비스켓을 개발하여 공수하던 것을 CNN에서 보았다) 그런데 휴전선 너머 저곳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게 되는 북한 뉴스 보도 장면 - 하나같이 김정일 영도자를 철석같이 믿고 있으며, 미 제국주의자와 남한 괴뢰정부만 무너뜨리면 통일을 이루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 지난 몇 해 동안 북한을 휩쓴 수마는 그나마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식량마저 휩쓸어 가고 말았다. 많은 국가의 많은 인도주의 단체가 북한 인민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 당국을 돕는 것과 북한 인민을 돕는다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굶주린 인민을 위한 지원이라도 결국은 북한 체제의 연명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이 프로는 렝코라는 북한 인민을 돕기 위한 한 일본단체가 찍어낸 19989월 어름의 북한의 모습이다. 한 탈북자가 찍은 이 필름이 보여주는 것은 인륜도덕붕괴의 현장이며, 아동학대의 현장 증명사진이었다. 이러한 위험천만한 필름을 공개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다. KBS방영분은 북한 ** 도시라고만 표기하였고, 화면에 얼핏 보이는 모든 입간판이나 자동차 번호판의 경우 여지없이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이 프로에서 최고로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다름 아닌 꽃제비들의 모습이다. ‘꽃제비란 매춘을 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살기위해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어린아이를 일컫는다. 북한의 식량난은 기존 가족질서를 붕괴시키고 말았다. 몇 년 전에 우파신문에서 보도되기 시작한 기사들 - 북녘엔 굶어죽는 사람이 다 있다더구나-에서 이제는 모두들 어떡해서든 굶어죽는 어린이만은 구해내자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 필름에서 한 어린이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마 길거리에서 죽었거나 국경을 넘어 이국땅에서 헤맬 것이다. 어머니와 어린 동생은 굶어죽었고, 소년은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이 필름의 배경은 시장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것이 공평하게 분배되는 북한에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중국의 영향이리다. 자기 텃밭에서 키운 야채 같은 걸 내다 파는 형태에서 출발하여 이제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어 간다. 밀수로 들어온 일제 트럭과 자전거가 보이고, 손목시계가 팔리고, 쌀과 야채들이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리고 그 가판대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의 몰골을 보라. 신발도 없고, 옷은 새로 입은 후 한 번도 씻은 적이 없는 것 같고, 눈매는 이미 혁명의 새싹이기를 포기하였다. 아이들의 영롱한 눈매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땅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낚아채는 본능적 눈매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이 꽃제비이다. 김정일의 지시로 이런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수용소를 세웠다고 한다. 927일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국립 초대소 여관을 개조하여 아이들을 수용한 927수용소에서는 매일 한두 숟가락의 음식을 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배고픔에 못이긴 아이들은 3층에서 뛰어내리는 탈출을 감행하고 장이 열리는 곳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한 소년의 비틀대는 모습 - 가만히 서 있기도 위태로운 아사 직전의 소년과 시궁창 같은 도랑물을 멀끔히 쳐다보는 한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만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딧불의 묘>를 보면 전쟁을 욕이라도 하지, 이 죽어가는 소녀를 보며 누굴 욕해야한단 말인가) 

나레이터의 말처럼 이 필름에 찍혔던 소년소녀 중 이번 겨울 아니, 지금 현재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필름은 계속하여 비극을 보여준다. 두만강 유역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탈출 장면.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어 시체가 되어 내버려진 모습.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족 마을까지 넘어온 북한의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으리오.... 

이제 이런 저런 이유로 북한의 체제변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소련 동구의 붕괴처럼 북한의 공산정권이 어느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IMF로 휘청거리는 우리에게 북한의 짐까지 떠맡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공황을 기다리는 것이랑 같은 말이다. 북한의 장래를 위해 가장 좋은 대책은 아마 중국처럼 변화하는 것이리다. (... 이 다음 문장은 중국의 예를 든 것인데 삭제합니다....)

.... 잘 살기 위해서는 마치 고양이가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쥐만 잘 잡으면 장땡이듯이, 공산주의든 자유주의든 일단 배불리 먹고 볼일이라고 역설했었다. 분명 오늘 본 북한의 시장모습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볼 수는 있었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돈을 버는, 그리고 돈을 벌어서 자전거를 모는 계층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부유계층의 증대는 일시적으로 권력과의 비리가 생겨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자기 재산보전을 위한 시민계층-자유민주주의적 세력 형성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시기를 지연시키는 것이 현 체제의 영도력과 억압할 수 있는 현실적 물리력의 문제지만 말이다. 이러한 자유민주 세력의 증대는 체제차원으로서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만약 그런 부유층이 증대된다면 북한 당국은 그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여 어린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스템적으로 제대로 돌아가는 체제일 경우이다. 

오늘 본 그 어린이들이 살아있기를 기원하며, 이번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를 정말 기원한다. 그들이 살아남아 전쟁이 없는 조국의 품에서 정말 따뜻한 봄볕을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박재환 1998.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