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5. 08:09ㆍ미국영화리뷰
(박재환 2003/1/27) <웨이트 오브 워터>는 제목에서 느끼는 유혹만큼이나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나면 이 영화가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 <크루서블>에 불만이었던 사람이나, <천상의 피조물> 같은 영화에 묘한 매력을 느낀 사람, <장미의 이름>같은 고급 영화(원작소설의 고급!)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번 보기 바란다.
영화는 1873년 3월 6일 미국 메인 주 쇼울 군도의 스머티노스 섬(Smuttynose Island at the Isles of Shoals in Maine)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공판기록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보다는 더욱 미스테리한 구석을 보여준다. 애당초 편파적이기까지 한 공판과정이 그대로 남아있을뿐더러, 10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찢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이 쪽 섬마을에는 노르웨이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건너오기 시작 했다. 이 조용한 섬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두 여자가 누군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렌 혼베트는 범인으로 독일인(프러시안) 어부 루이스 와그너를 지목했다. 루이스는 살인혐의가 인정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날 이후 이 살인사건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졌고 오늘날 소설과 영화와 미술작품으로 그 때 과연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를 재구성하고 있다.
실제사건을 기반으로 아니타 슈레브(Anita Shreve)는 1990년대에 <웨이트 오브 워터>라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1873년의 살인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스머티노스 섬을 찾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여정을 그렸는데, 캐서린 비글로우가 다시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다.
먼저, 살인사건 이야기
1873년에 좀 더 나은 삶은 살기위해 노르웨이에서 몇몇 사람들이 미국 메인 주 쇼울 군도의 작은 섬 스머티노즈 섬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어린 ‘마렌’은 늙은 어부 ‘존’에게 시집와서 이국땅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곧이어 마렌의 늙은 언니 카렌, 그녀의 오빠 이반과 이반의 어린 신부 아넷이 이곳으로 합류해 온다. 그리고 심한 류마티스를 앓고 있는 독일인 어부 루이스 와그너도 이곳까지 흘러온다.
외딴 섬 작은 오두막집에서 엉켜 사는 이들의 갈등은 마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화에서는(소설에서는) 마렌(사라 폴리)이 어릴 적에 오빠와 근친상간적 사랑을 나누었고 내쫓기듯이 미국으로 보내진 것으로 묘사된다. 루이스는 늙은 신랑에게서 육체적 만족을 못 느낄 것만 같은 마렌을 조금씩 유혹한다. 어느 날 남자들이 모두 배를 타고 섬을 떠난 날 밤, 그 오두막집에는 마렌과 새언니 아넷, 그리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카렌만이 남아있었다. 이날 밤 아넷과 카렌은 도끼에 난자당해 죽고 마렌은 피투성이가 된 채, 섬 끝 바위동굴에 피신해서 다음날 구조된다. 마렌은 루이스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영화(소설)이야기…
영화는 130여 년 전에 펼쳐진 외딴 섬의 드라마틱한 살인사건을 현대 미국가정의 불안감과 교차시킨다. 저널리스트 진(캐서린 맥코맥)은 130년 전 살인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섬을 찾는다. 그녀와 동행한 사람은 퓰리처 수상작가이기도 한 남편 토마스(숀 펜), 시동생 리치, 시동생의 섹시한 애인 애덜라인(엘리자베스 헐리)이다. (소설에서는 어린 딸도 함께 간다고 한다) 이들은 리치의 호화 요트를 타고 섬을 찾아 살인의 현장을 훑어보며 살인을 재조립해 본다.
진과 토마스 사이에는 언젠가부터 묘한 벽이 생기고 있었고, 그 틈을 애덜라인이 은밀한 눈짓을 보내며 유혹의 게임을 즐긴다.
영화는 130년 전 살인사건과 관련된 은밀한 근친상간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빅토리아 시대의 갑갑한 의상과 섬마을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는 얼마 안 되는 등장인물들을 서로 갈등과 유혹의 늪으로 이끈다. 섬 마을의 늙은 남자나 병약한 남자들의 그림자에는 여자들의 정욕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감적인 애덜라인의 몸매와 뇌쇄적 눈길은 요트 위의 ‘불온’을 점차 달구어 놓기에 족하다.
고뇌하는 ‘숀 팬’과 뜨거운 ‘엘리자베스 헐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낯설다. 그것이 오히려 노르웨이 이민자들의 실감나는 숨겨진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 것도 같다.
미국에서는 혹평을 받았고 국내에선 푸대접을 받은 영화이지만 내게는 재미있는 그런 영화이다. ^^ 엘리자베스 헐리의 끈끈함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할 정도이다.
살인범이 사용한 도끼가 요즘 이 섬마을 관광상품이 되었다군요. 손잡이는 그날 밤 부러졌답니다. 영화에서는 안 부러졌었죠. –; 개인 소장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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