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신승수 감독의 햇빛사냥꾼 (신승수 감독, 1999)

2019. 8. 6. 15:2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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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에 이 영화 홍보사가 올린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이 영화를 상당히 사회학적 의미로 해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과연 그럴까? 감독이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이 정말 사회학적으로 반추할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의 페르소나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는 사전지식 없이 보았다. 그냥 '우 순경'을 다룬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우순경 사건이란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군 산골마을에서 한 순경이 술에 만취되어 총으로 마을 주민을 마구 쏘아 죽인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가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질렀을까. 
 적어도 영화를 만들겠다는 사람이라면 몇 가지 상상의 뼈와 미화의 살을 바를 것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 산골마을 사람이 갖고 있는 배타적 집단 따돌림에 반발? 아니면 애인의 배반? 이 영화는 영화진흥공사에서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에서 당선된 <우순경>을 다시 신승수감독이 뜯어고친 모양이다. 그래서 우순경의 살인의 동기를 다른 시각으로 그리려 했음과 동시에 우순경과는 관련 없는 또 다른 폴리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한 경찰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받아 타는 버스는 '경남'이 아니라, '전북'행이다. 그 버스와 함께 우 순경의 살인의 동기는 종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로 빠져들고 말았다. 감독은 미스터리 터치로 한 사건을 파고든다. 저수지에서 한 미모의 여자 익사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조금씩 밝혀지는 마을의 비밀. 이런 이야기는 존 세일즈 감독의 <론스타>, 베르톨루치의 <거미의 계략>, 그리고 최근의 <트윈 픽스>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 진행방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펼쳐 나가기 위해선 마을이 보통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 마을이어야 하고,, 친족 관계는 이웃관계와 밀접하게 얽히고설킨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건 개입의 전초가 되는 살인사건은 그러한 내부만의 조직과 질서에서 벗어나려 한 배반자가 될 것이며, 그 문제를 풀려는 사람은 당연히 외지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남자는 외부의 시선으로 내부의 비밀을 캐기 위해선 단단한 벽을 깨고, 엄청난 반발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선 외부에서 날아온 사람은 말단 순경 '김재복'이란 사람이다.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물 좋은 서울에서 산골로 전근 온다. 그 이유에 대해 관객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이 무슨 사고에 관련되었다지만, 처음 생각하는 '부정과 비리'라기보다는 원리원칙에 투철한 순경이기에, 작은 비리쯤은 눈감아주자는 상부와의 마찰에 의해서 밀려났으리란 것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어쩜 자기의 애인이 자살한 과거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지저분하고 복잡한 플롯을 생략하는 미덕을 보인다.
 
그가 지켜보는 이 산골 -전북 신선군이라는 이름으로 묘사되는 이곳은 주로 무주군, 진천군 등 전북-충남 일대의 마을이다-은 전형적인 그들만의 마을이다. 처음엔 그저 깡패 잡범에 해당하는 임하룡을 보여준다. 그는 이 마을의 모든 궂은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를 파출소에 잡아 왔지만, 그는 큰 소리 지르면, 파출소 물건을 마구 부수며, 아직 마을 분위기를 파악 못한 김재복 순경에게 소리친다. "너 누구야? 새로 왔어? 이곳을 잘 모르는구먼!"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 김재복은 파출소에서 커피 배달 온 한 여자를 본다. 티켓 다방의 여자이다. 파출소 선임 순경이 그런다. "이봐, 미스 킴(오?). 여기 온지 6개월이라면... 이제 이 마을 남자들 반 정도는 동서겠구먼."란다. 이 말은 나중에 옥상에서 그녀가 김재복에게 하는 말에서 구체화된다. "저수지에서 빠져 죽은 그 보건소 간호원요? 저기 우체국 직원이나, 학교 여선생이나 다 똑같은 애들이지 뭐. 다 창녀인 셈이죠."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에선 우선은 여자들을 통해 무언가 얽히고설킨 비밀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마을의 비밀, 혹은 범죄조직의 핵심으로 이끄는 것은 여자였다. 하지만, 그 단단한 핵은 '이너서클'로 표현된 마을 유지와 권력자의 모임이다. 이들은 지방의회의원을 중심으로 지역 상공업자,, 고위 공무원으로 이루어진 모양이다. 

이 영화는 사회의 악을 구석구석 통제하는 이너서클을 다룬 것인가. 하지만, 이들이 과연 무슨 잘못-무슨 구체적인 범법행위를 했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우릴 배신하면.."하고 사냥 나가선 사냥총으로 조직의 한 사람을 쏜다. 선거운동하며 마을주민 모아놓고 향응을 제공하는 선거법 위반 이상의 그 어떠한 범법행위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마을 애들이 대마를 피우고, 히로뽕 주사를 맞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이 윤간을 하고, 자기 아들이 며느리와 작당을 해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미친 듯이 소리치는 한 할머니를 통해, 관객은 계속 혼란과 미스터리에 빠져 들도록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범죄로 이어지는가. 


 어쩜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훌륭한 치안현실(?)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엔 청학동 같은 산골마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마피아 같은 단체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너서클의 존재를 무슨 조폭과 카지노로 묘사하기엔 너무 촌동네로 설정했고 말이다) 그러니 유신시절에나 있음직한 요정 장면이나, 밤사냥 장면은 전체 구성과 어울리지 않는 전개인 셈이다.

 그래서 이 영화중반까지 아주 타이트하게 진행되던 비밀 캐기는 이상하게 흘러가버린다. 선거판-정치판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잡범을 다루는 것인가? 무슨 거대한 음모라도 있단 말인가? 결국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만 있다는 설정을 관객에게 인식시키지 못하고, 우리 김순경은 이 벽을 정상적인 수법으론 깨뜨릴 수 없다는 결정에 동의하도록 유도된다. 김 순경이 하는 마지막 선택이란,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순경이 정치범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PD수첩>에 제보하나? 아니면 <한겨레신문>에 전화하나? 아니면 야당에게 전화하나?)

 문득 신승수 감독의 초기 작품이 하나 떠올랐다. 그의 작품 중 <달빛사냥꾼>이란 게 있었다. 그때 무슨 일로 그 영화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안성기 때문에 본 것 같다.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아직 남아있다. 초반 엄청나게 진지할 것 같던 이 영화가 후반 들어 이것저것 엄청난 이야기를 흐지부지 마무리 짓지 못한 그런 영화로 남아있다. (아마 언론의 폭력. 그런 것을 다룬 것 같다. 그 영화도 그랬지만, 이 영화도 초반의 파워와 미스터리의 매력은 후반부 들어 이것저것 각종 사회적 범죄의 목록을 펼치다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단지 또 다른 폭력으로 그 모든 죄악을 봉합하려 하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신승수 감독의 <할렐루야>는 참 재미있었다. 보기 나름이지만, 감독은 확실히 사회의 어떤 부정을 꾸준히 파헤치려고 한다는 것은 존경할 만하다.

  (홍보사 시놉시스에 따르자면..) 이 영화에서 감독은 이방인 김순경의 눈을 통해 인간이 가진 선악에 대한 이중성과, 사회의 필요악과 부조리를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김순경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우리 사회를 보다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과연 그랬던가.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중간에 삽입된 섹스씬, 그리고 마지막의 충격적 사건해결과 <하나비>식 최후일 것이다.
 
조재현은 내가 텔레비전 드라마 <야망의 계절>에서 조은숙과 함께 점 찍어둔 배우인데, 정말 크게 될 배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에 속하는 파출소 소장의 국정환도 엄청나게 괜찮은 연기를 한 것 같다. 나머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인데 어쩔 수 없는 신인으로서의 어설픈 장면이 많았다. 모두가 연극무대에서 방금 스크린으로 옮겨왔는지 대사를 햄릿처럼 읊조리는 것이 태반이고, 추리극을 보듯이 상황을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주는 장면이 많았다. 어쨌든 신승수 감독이 다음엔 무엇을 가지고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할지 기대 반 우려 반이 남는 영화이다. (박재환 1999/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