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19.08.10 07:0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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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6.1.14) ‘킹스 스피치’(10)로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톰 후퍼 감독의 신작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이 내달 개봉된다. 이 영화는 의학사(史)에서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의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작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역을 맡아 열연했던 에디 레드메인이 바로 그 베게너 역을 맡았다. 여하튼 ‘남자’ 에이나르 베게너가 수술을 받은 뒤 ‘여자’ 릴리 엘베가 된 것은 1930년이 일이다. 그런데, ‘대니쉬 걸’ 개봉에 앞서 ‘트랜스젠더’를 다룬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한국영화이다. (차승원의 ‘하이힐’도 트랜스젠더를 다룬 영화였다!) 김세연 감독의 ‘하프’라는 작품이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영화 ‘하프’의 주인공 이민수(안용준 분)는 현재 ‘남자’이다. 다들 수술한 언니들뿐인 트랜스젠더바에서 노래하고 쇼를 하며 살고 있다. 이곳에선 ‘민아’라고 불린다. 그도 곧 ‘그’ 수술을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어떠할까. 짐작이 갈 것이다. 어느 날 밤, 민수는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려다 그만 사람을 죽이고 만다. ‘정당방위, 혹은 불법행위를 저지하려다가 살인을 한 애매한 케이스‘에 대한 간단한 법정싸움이 될 것 같다. 국선변호사 김기주(정유석 분)는 피고인을 처음 보는 순간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 않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영화는 ’민아이고 싶은 민수‘의 과거와 현재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구치소에서도, 여자구치소에서도 같은 재소자들에게 폭력과 성적 학대를 당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 “당신, 군대 현역으로 갔다오지 않았나요?”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이렇게 중얼거린다. “내가 어떻게 버티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가 어떤 극한의 상황까지 가서, 어떤 더러운 놈들을 만나,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하프’는 트랜스젠더의 불안하고, 위태롭고, 가련한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웃고, 호기심에 기웃거리고, 불쾌해하고,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칸막이를 친다. 어머니는 끝내 그런 아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정의의 법정도 큰 도움은 못 될 것이다. 

민아 역의 안용준과 나머지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애처로울 정도이다. 국선변호사 역의 정유석은 안용준과 함께 이 미묘한 정서의 영화를 아슬아슬하게 끌고 간다. 

그들 - 당사자와 그 가족들- 의 심정을 우리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민아'가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이다. 상주를 위해 마련된 상복이 두 벌 걸려있다. 하나는 남자용, 하나는 여자용. 그 순간 그는 얼마나 먹먹한 심정일까. 잔인한다.

매일 천안행 지하철을 타고 소일하는 김영감과 윤여사의 로망을 다룬 영화 ‘도시비둘기’를 찍었던 김세연 감독의 신작 ‘하프’는 우울하고도, 안타까운, 그 결말을 짐작할 수 있어 더 슬픈 영화이다. 

‘하프’는 다음 주 21일 개봉된다. 상영관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 흔한 기자시사회도 없다. 배급사 인디플러그는 온라인시사회를 진행했다. 

참, 릴리 엘베는 성전환수술을 마친 다음 해 1931년 이식거부반응으로 숨졌다. 이 영화에서 민아는 죽지 않는다. 다행이다. "굳세게 살아라." 그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하프 (2016년 1월 21일 개봉예정/청소년관람불가) 
▷감독: 김세연 ▷출연: 안용준, 정유석, 송영규, 문세윤, 진혜경, 김해림, 최민, 김영선, 서민균 ▷제작: 영화사민들레 /공동제작: 하트박스 ▷제공배급: 인디플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