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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맘보] 타이베이의 청춘은 나이 들고, 유바리의 눈은 녹을 것이다 (허우샤오셴감독, 2001)
지금은 한낱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서기 2000년 1월 1일 00시를 앞두고 IT업계에서는 ‘밀레니엄 버그’(Y2K)라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혹은 마케팅 수단)였다. 수십 억 년의 지구, 수백 억년의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단지 새로운 ‘1000년’의 시작일 뿐인데 ‘밀레니엄’의 공포와 환희를 당시 지구인은 그렇게 즐긴 것이다. 대만의 명감독 후효현은 이 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제목에서부터 시대의 미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가 2001년 개봉되었었다. 그때 감독 나이는 54살이었다. 장년의 그는 인류역사의 한 획을 긋는 밀레니엄에 즈음하여 대만의 청춘을 이렇게 바라보고, 스크린에 담은 것이다. 영화는 ‘밀레니엄 그 해’에서 10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10년 전’을 회상하는 여자 주인공의 내..
2025.01.11 -
[하얼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총으로 척결하였다”
의사(義士) 안중근(1879~1910)의 거사(擧事)를 다룬 작품이 또 한 편 만들어졌다. 오래 전 충무로에서는 (1959)과 (1972>을 만들었고, 서세원도 (2004)을 직접 감독했었다. 하다못해 유튜브에서는 북한에서 만든 안중근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MZ세대에게는 정성화의 장엄한 뮤지컬 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과 의 우민호 감독이 지금 이 시점에 안중근 의사를 다시 불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점에 구국, 항일, 애국을 내세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FN M1900’ 자동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쏘아죽인 곳이다. 우민호 감독과 함께, 그리고 홍경표의 카메라와 함께 그날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영화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동토를 하..
2025.01.09 -
[서브스턴스] 노인을 위한 TV쇼는 없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2024)
영화 는 정말 놀라운 영화이다. 일단 데미 무어의 용감함에 놀라고, 마가렛 퀄리의 대담함에 놀라고,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공격성에 놀라게 된다. 영화는 남성적 시선의 욕망을 다루는 듯하지만 결국은 젊음에 맞서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담고 있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다시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까.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황금빛 별을 수놓은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오스카 수상자로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배우이다. 지금은 TV 아침 방송에서 타이트한 옷으로 에어로빅을 펼치고 있다. 영광은 사라지고, 몸매만 TV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하지만 더 젊고 더 핫한 여배우를 찾는..
2025.01.09 -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특히 청년에게는..
세상이 워낙 초광속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한국사회다보니 1997년의 국가적 비상사태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해 연말 우리나라는 ‘IMF사태’를 맞았다. 제대로 말하자면 ‘흥청망청, 우왕좌왕, 오리무중’의 상태에서 외환위기를 맞았고,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리를 받아들이며 체질개선을 위한 ‘펀더멘털’ 구조조정에 나서야했다. 그때 나락에 떨어졌던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내몰렸다. 그리고, 일부는 한국 땅을 떠나기도 했다. 살기위해, 재기하기 위해. 그 중에 국희네 가족도 있었다. 지난 31일 개봉한 김성제 감독의 영화 이다. 그들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향한다.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19살 국희(송중기)는 IMF 직격탄을 맞아 도산한 아버지(김종수)와 함께 한국을 떠나 보..
2025.01.09 -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영화는 청불이지만, 박지현은 동화입니다.”
“뭐라고? 카메라 앞에서 밥 먹는 걸로 돈을 번다고? 내가 카메라 앞에서 벌거벗고 돈 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다. 10년 전에는 저런 반응이 나왔음직하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카메라 뒤에서 밥을 먹어도, 밥을 먹으며 옷을 벗어도 다 돈이 된다. 그럴 재주가 있다면.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 찾는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할 필요 없이 핫한 아이템을 찾고, 그 재주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 그런 영화가 있다. 8일 개봉하는 라는 제목부터 노벨문학상감인 영화이다. 동화작가가 아름답고, 순수하고, 풋풋할 필요는 없다. ‘히든 페이스’ 박지현이 그 길로 나선다. 귀여운 음란마귀가 되어 어둠의 세상으로~~ 단비(박지현)에겐 꿈이 있다. 동화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의 ..
2025.01.09 -
[더 폴] 스토리텔러와 리스너가 함께 완성하는 판타지
인도 북부 펀잡 주 출신의 타셈(타르셈/Tarsem Singh) 감독이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사이파이 심리호러 (2002) 이후 내놓은 두 번 째 작품 이 최근 ‘4K 복원’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극장에 다시 내걸렸다. 이 영화는 2008년 연말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었다. 그 때 관람객 수는 2만 8천명. 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의 미학적 소문을 들었다면 극장에서 확인해볼만한 작품이다. 영화는 1915년, 미국 캘리포니아가 배경이다. 오렌지농장이 있고, 넓은 들판과 강물이 흐는 이곳은 나중에 ‘할리우드’가 되는 곳이다. 영화의 시작은 아마 흑백무성 촬영현장인 듯하다. 강물을 가로지르는 철교 위. 기차가 달려오고, 배우가 다리에 뛰어내리는 액션을 펼친다. 마치 사고가 난 듯 모든 사람들..
2025.01.09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2024)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일본 영화감독이다. 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을, 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그랑프리)을 수상하더니 신작 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세계 3대영화제를 석권한 감독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초(超)기대작이다. 이 영화는 의 음악작업을 한 이사바시 에이코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먼저 기존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한 뒤, 라이브공연을 영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기획대로 영화 와 라이브 무성영상 [GIFT]가 완성된다. 영화는 음악가의 작업실이 있는 나가노현 야쓰가타케산(八ヶ岳)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단다. 도쿄에서 차로 두어 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림을 보여준..
2024.04.09 -
[댓글부대] 여론은 막는 게 아니고, 만들어내는 거야~ (안국진 감독, 손석구 주연)
‘생계밀착형 코믹잔혹극’이라고 홍보된 를 감독했던 안국진 감독이 신작 로 다시 한 번 ‘한국사회’를 잔혹하게 들여다본다. 이번엔 ‘여론’이다. 사람들은 어떤 말에 귀가 솔깃하여 자신의 주의주장을 보강/합리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단’을 내리게 될까. 이건 결국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발휘되는 대중심리전이다. 단순한 루저들의 키보드전쟁으로만 봐서는 절대 안 될 고도의 정치적 수단인 것이다. 정.말.로! 2015년 출판된 장강명 작가의 는 ‘온라인으로 대동단결한’ 한국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온라인(인터넷)세상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허술한지를. 인간 자체의 순진함에 기댄 온라인 댓글부대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먼저 원작소설부터 읽어보자. 소설은 임상진 기자라는 인터넷매체..
2024.04.09 -
[1980] 그 날, 그들의 마지막 만찬 (강승용 감독, 김규리 백성현 주연)
19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함성과 피로 채워진 그날들의 비극은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어간다. 해마다 5월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날의 함성, 그날의 피울음을 되새기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방관자도 늙어가고, 죽어가고,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독특하다.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것이, 잊지 말라고 보여준다는 것이. 영화 ‘1980’은 영화 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전두환과 군인들이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민주화 의지를 총과 탱크, 그리고 헬기 소사로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이야기이다. 이 장대한 비극의 서사시를 어떻게 영화에 다 담을 수 있을까. 강승용 감독은 광주도청 뒷골목에서 중국집을 하는 철수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
2024.04.09 -
[당신이 잠든 사이] "리멤버 썸딩" (장윤현 감독, 추자현 이무생 주연)
장윤현 감독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장윤현 감독은 ‘충무로’로 대변되던 한국영화가 새로운 물결로 꿈틀거릴 때 독립영화단체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독립영화 를 찍었던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을 통해 화려하게 상업영화계에 데뷔했다. 이어 이라는 하드코어 스릴러를 내놓으며 한국영화의 장르적 확장을 주도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정치적 유탄’을 맞아 개봉이 좌절되었고, 사드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번에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만든 작품이 바로 오늘(20일) 개봉하는 라는 소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혹은 미스터리 멜로이다. 그의 대표작 멜로와 미스터리를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반가운 귀환작이 아닐..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