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놀라운 걸작을 보여줄 거야!” (김지운 감독,2023)

2023. 11. 24. 11:2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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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영화잡지 <스크린>과 <키노>의 편집장을 지냈던 이연호 기자가 2007년에 쓴 <전설의 낙인 – 영화감독 김기영>(한국영상자료원)에는 <하녀>, <화녀>, <충녀>, <이어도>,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반금련> 등 ‘지금 보아도 놀라운’ 작품을 남긴 고(故) 김기영 감독(1919~1998)의 온갖 기담이 담겨있다. 이연호 기자는 김기영 감독이 비극적인 화재사고 죽기 바로 전날 통화를 했단다. 그날 김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인 <악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곧 놀라운 걸작을 보여줄 것이다”고 장담했었단다. 그리고, 2023년, 김지운 감독의 새 영화 <거미집>에서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김열 감독을 통해 ‘온갖 장애물과 훼방꾼이 가득한 영화판’에서 자기만의 걸작을 내놓으려고 발버둥치는 한 영화감독을 만나보게 된다. 

 1970년대, 서울 외곽의 커다란 촬영장 건물. 가건물 같이 보이지만 엄연한 당시 충무로 영화사의 스튜디오이다. 이곳 ‘신성필림’스튜디오에서 김열 감독은 신작 <거미집>의 촬영을 막 끝냈다. 김 감독은 데뷔작으로 화려하게 충무로에 입성했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신상호 감독의 시나리오’ 덕을 본, 그러나 지금은 ‘치정극 3류영화’ 전문감독이라는 달갑잖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래서인지 김열 감독은 <거미집>의 마지막 장면만 조금 고쳐 찍으면 걸작이 될 것이라며 매달린다. 영화사 대표(장영남)는 “걸작을 왜 찍어? 그냥 하던 대로 해”라며 심드렁한 반응이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그는 기어이 이틀에 걸친 재촬영에 들어간다. 때는 유신시대. 검열법이 엄존하고, 공보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촬영현장을 감시하던 시절이다. 김열 감독이 고친 시나리오는 ‘반체제적이고,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딱지를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김열은 배우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촬영장 문을 걸어 잠그고, 공보부 사람에게 술을 먹인 뒤 기어이 ‘걸작’에 도전한다. 각자 사정이 있는 배우들은 왜 이렇게 찍어야하는지 모른 채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소리 지르고, 피를 흘리고, 칼을 들고, 피아노를 치고, 묵직한 금두꺼비를 들고 내리치며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 영화, 감독의 뜻대로 완성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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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가 배우들의 명연기가 빛을 발하는 앙상블 코미디라고 소개했다. 정말이지 송강호가 연기하는 김열 감독의 ‘걸작에 대한 욕망’을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시종일관 빛을 발한다. 어쩌면 김열과 한 배를 탄 셈인 제작자 백 회장(장영남)과 뒤늦게(?) 영화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는 제작사 직계후계자 신미도(전여빈), 어떻게든 현장을 조율하는 김부장(김민재)과 조감독(김동영) 등 스튜디오 사람과 ‘새로운 연기’를 펼쳐야하는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 그리고 막장드라마의 주축 박정수까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논스톱 코믹-액션을 선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잔재미를 더하는 ‘군대도 안 갔다온 포수’와 ‘술에 뻗은 검열관’까지 1960년대의 낭만과 절망이 뒤섞인 영화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과 김지운 감독이 시대를 건너뛰며 완성한 영화 열정의 결정판이다. 물론, 김지운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유족’과의 법적인 문제로 영화적 배경을 당대의 충무로현장으로 확대해석을 권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는 신상옥, 이만희, 어쩌면 유현목까지 당대의 영화거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걸었던 영화감독의 길, 영화창작의 고뇌를 1970년대 충무로 3류감독 김열에게 빙의한 셈이다. 어쩌면 김지운 감독은 항상 다른 감독의 작품을 질투하고, 매혹적인 시나리오를 탐내고, 시대를 앞서는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이 그 보폭을 따라갈지, 그 비전을 제대로 따라갈지는 별개로 말이다. 

거미집


 <거미집>은 ‘앙상블코미디’의 재미와 함께 영화감독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영화의 기반이 된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이다. <하녀>의 마지막 장면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실컷 남녀간의 복잡한 애증관계를 기이하게 그려나가더니, 마지막에 죽은 줄 알았던 남자주인공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이건 다 신문에 난 나쁜 일이요. 이러면 안 됩니다“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결말은 김기영 감독이 검열과 관객(당시의 흥행업자)과의 타협의 소산물이었단다. 그 장면만을 다시 찍어서 겨우 개봉을 할 수 있었단다. 김지운 감독은 그런 시대의 소산물로서 영화감독의 창작품을 스크린에서 정말 화려하게 불태우는 것이다. <거미집> 마지막 장면에서 시상식에 참여한 김열 감독의 알 수 없는 오묘한 얼굴표정은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게 만든다. 마지막 관객이 보는 ‘거미집 속 거미집’은 감독이 다시 찍은 것이 맞는지, 그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겠지만, 김지운 감독의 속내는 영원히 모를 듯하다.   

 영화에 얼핏 김열 감독의 데뷔작인 ‘3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3회 대종상은 1964년에 열렸다. 공보부 주최로 열린 대종상에서는 극영화 15편과 문화영화 15편을 대상으로 영화예술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혈맥>이 최우수작품상과 남녀주연상(김승호,황정순)을 휩쓸었다. 감독상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이만희 감독에게 돌아갔다. 당시 영상을 보면 <혈맥>에 트로피를 건네주는 시상자는 신상옥 감독이다. 이 해 신인상은 촬영감독에게 주어졌다. 김기영 감독은 <하녀>로 1961년 감독상을 받았었다.

영화에 대한 열정, 자신의 영화를 매도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훔쳐서라도 자신의 걸작을 만들고 싶은 모든 영화감독에게 바치는 헌사가 바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다.

 

[리뷰] 거미집 “놀라운 걸작을 보여줄 거야!” (김지운 감독,2023)

영화잡지 <스크린>과 <키노>의 편집장을 지냈던 이연호 기자가 2007년에 쓴 <전설의 낙인 – 영화감독 김기영>(한국영상자료원)에는 <하녀>, <화녀>, <충녀>, <이어도>,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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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김지운 ▶각본:신연식 ▶출연: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크리스탈(정수정) 장영남 박정수 김민재 김동영 정인기 장광 정우성 염혜란 엄태구 ▶2023년 9월27일/15세관람가/132분 ▶배급:바른손이앤에이

[사진=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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