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7. 11:00ㆍ중국영화리뷰
(박재환 2000.4.1.) 우선, 외래어표기와 관련하여 잠깐 설명해야겠다. 중국어 발음이 [청지스한]인 <成吉思汗>이란 영화는 2000년 4월에 <징기스칸>이란 제목으로 국내 극장에서 개봉되었고 같은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 KBS-1TV <명화극장>에서 방송할 때는 새로이 <칭기즈칸>으로 표기되었다. 이유는 한국인의 올바른 국어교육에 힘쓰는 공영방송 KBS가 '외래어표기법'에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도 <칭기즈칸>으로 나온다. 이와 더불어, '몽고'라는 말도 '몽골'이란 말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이건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캠페인의 일종인데, 그 나라 말로 '몽고'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꼭 '몽골'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해서 이후 '몽골'이 정착된 것이다. 아직도 '몽고간장, 몽고반점....'이라는 용어가 남아있으니 유의하기 바람.
자, 제목은 그 정도로 하고 이번에 이 영화의 국적에 대해서 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감독 '사이푸'(塞夫)와 '말리시'(麦丽丝 중국어 발음은 [말리시]가 아니라 [마이리스]이다)는 부부이며 둘다 북경전영학원 출신이다. 그리고 둘다 내몽고 출신이다. 엄청나게 넓은 땅덩어리와 엄청나게 많은 (漢족을 제외한) 소수민족을 가진 중국에는 이들 소수민족이 기반이 된 省들이 다섯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내몽고자치구'이다. (연변에 있는 한족자치구는 省급이 아니다) 이 내몽고는 엄연히 중국 땅이다. 내몽고가 있으면 당연히 외몽고도 있겠지. (지리적 개념으로 보아 확실히 중화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몽고는 몽골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을 일컫는다. 면적이 156만㎢로 남한의 15배가 넘지만 인구는 겨우 240만 명이다. 사회주의 두 강대국 '소련'과 '중공'에 끼어있던 이 나라는 오랫동안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였다. 1990년대에 들어 사회주의를 탈피 민주화이 길로 나선 나라이다. 어쨌든 같은 몽골리안이면서 두 개의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민족적 분포로 보자면 이들 민족은 이 지역 말고도 중앙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우리는 연변의 韓族을 우리민족이라 당연히 여긴다. 심정적으로.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놀려가서는 돈 뿌리며 온갖 졸부 짓을 다 벌였다. 그 후, 연변의 韓族들은 한국으로 한국으로 건너와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며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도 한국인이라며 참정권을 줘야 되느니 국적을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중국의 의견은?
'절대 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아들딸들이 이중국적을 가지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듯 어느 나라든지 자기 국민이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중국적-에 대해 제한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는 엄청난 국가파괴적 행위인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상징하는 티벳지역도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한다. 만약 내몽골자치구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당연히 몽골 지역은 피바람이 불지도 모를 일이다. (티벳 문제를 떠나 문명개화국이라고할 영국과 아이랜드를 보라!)
중국은 신중국건설(1949년)이후부터 소수민족에 대한 강온 양면의 전략을 구사하였다. 티벳을 무력점령하고 오랫동안 봉쇄정책으로 중국에 머물게 한 것이다. 내몽골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수십 년간 진행된 漢族의 이주정책으로 실제 내몽골 내의 몽골민족 비율은 15%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마, 경상도 사람 절반을 전라도로 강제이주시켜 5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지역감정이 완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민족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국가중심의 교육을 실시하여 그들의 민족성을 완화시키고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키웠다. 연변의 韓族들은 당연히 자신이 중국인이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미국에 사는 수많은 인종들-히스패닉, 아시아계, 유태인 등등...-이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 듯이 말이다.
사이푸와 말리스도 이러한 몽골의 피를 받아 중국의 교육을 받은 중국인인 셈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몇 가지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 징키스칸을 몽골민족의 영웅으로 묘사했는지, 아니면 중국인의 정신적 영웅으로 그렸는지가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에는 사이푸와 말리스가 몽골의 정취를 화면에 가득 담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징기스칸은 냉전시대에 소련이나 중국으로부터 가르쳐서는 안 될 '민족영웅'에 해당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징기스칸의 야만적 발자취가 오히려 강조되었다. 칭키스칸은 12세기 몽골지방의 유목민 부락을 규합하여 마침내 대 몽골제국을 건설한다. 그리고는 당시 중원을 짓밟고 한반도에까지 씨를 퍼뜨린 셈이다. 이 지치는 않는 정복자는 아시아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까지 진출하여 아직까지 사용되는 '황화론'이라는 말을 남겼다.
칭키즈칸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드라마틱하여 그 어떤 인간드라마보다 눈물겹고, 감동적이며, 논란의 여지로 가득하다. 영화에 잠깐 언급되는데 부족에게 버림받은 징키스칸, 즉 테무진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 가족이 허허벌판에서 겨울을 보내게 될 때 저장해둔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동생이 자꾸 훔쳐 먹자 어린 테무진은 화살로 동생을 쏘아 죽인다. 그런 잔인한 일면을 가진 그였기에 이후 펼쳐지는 유라시아의 정복전쟁에서 펼쳤던 수많은 대학살극은 그를 영원히 무식, 무지, 폭력, 야만의 이미지를 고착시킨다.
몽골 민족으로 봐서는 그는 분명 민족영웅이다. 사분오열되어 초원을 돌아다니며 연명하던 그들을 세계최강의 전사로 키웠으니 말이다. 영화에서는 몽골 민족의 야만적 풍속이 나타난다. 아내약탈의 전통.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아버지는 다른 종족으로 쳐들어가서 여자를 약탈해온다. 키얀시 종족의 족장인 '이수게이 바아투르'의 아버지는 '올크누우드' 족의 '후엘룬'을 납치해온다. 그리고 낳은 자식이 바로 테무진인 것이다. 그럼, 한국적 관념에서 후엘룬은 누구의 편인가.
테무진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내 '부르테'는 곧 메르키드족에게 납치당한다. 메르키드족으로서는 '후엘룬'을 테무진 아버지에게 빼앗긴 과거가 있다. 절치부심 테무진은 만반의 군사적 준비를하고 나서 메르키드족을 무찌르고 아내 '부르테'를 찾아오지만 이미 적군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다. 당시 개념으로 참 곤혹스러울 수밖에. 테무진은 아내를 외면하고 비슷한 역경을 거친 엄마 '후엘룬'는 아들을 달랜다. 그리고, 그 피도 눈물도 없던 야만적 테무진은 아내를 받아들인다는 식이다.
중국 땅을 다 차지하고 유럽 땅까지 진출했던 대영웅 징키스칸이 같은 민족끼리 치고받고 싸우며 임신한 아내를 두고 어쩌구하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먼 드라마인 셈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한 징키스칸은 대외적 영토확장의 야만적 얼굴이 아니라, 원한과 배반, 복수와 납치가 횡행하는 몽골 땅에서 유교적 도덕으로 굳건하게 일어서는 군자를 그린 셈이다.
영화는 중국영화 제작 스타일을 보여준다. 많은 숫자의 동원된 엑스트라의 표정은 확실히 엑스트라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고,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에 끼어드는 전투 장면은 전혀 호쾌하지도 않으면서도 비슷한 장면만을 반복하여 지루할 정도이다. (박재환 2002/10/11)
Movie Plus
<<아주주간>>최근호(2002년 9월 2일자)를 보니 중-몽 접경도시에 대한 현장르포 기사가 실려있었다. 서로 붙어있는 몽골의 '托門烏德'과 중국 內蒙古의 '二連浩特' 두 도시를 스케치한 것이다. 마치,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처럼 이 도시는 두 나라가 마주치는 접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몽골 땅의 도시에 중국 핸드폰이 터진다는 것. 대부분의 상품이 중국제라는 것. 흥미로운 기사였다. 관심 있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어볼 것!
이 영화는 199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되었다. 물론, 후보엔 오르지 못했다. 그해 외국어상은 이태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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