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30. 09:26ㆍ일본영화리뷰
(박재환 1999) 그 남자가 흉폭하다는 것을 관객에게 인지시키는 데는 10분이면 족했다. 10대 청소년 불량배를 두들겨 패는 장면에서 이 좌충우돌 목숨 내놓고 사는 듯한 경찰에게 맛이 가 버린다. 그리고 마약거래에서 이루어진 난도질 장면에서 이 영화가 동경식 느와르란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아즈마 형사는 ‘똘아이’이다. 동생이랑 놀아난 놈팽이의 머리를 때리고 걷어차고 하는 장면에서 이 사람의 심리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경찰이 그런다. “아즈마 선배는 실수로 꼬마앨 쏜 적이 있어.. ” 그러자 아즈마 형사가 한 소리는 “조준해서 쏜 거였어”
이 영화는 우선 일본 경찰의 폭력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물론 영화이니까. 하지만 <스왈로우테일>에서 경찰의 폭력 씬을 본지라 일본에선, 영화에서 경찰을 아주 무지막지한 존재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투캅스의 안성기 같은 형사는 신사다. 이 영화는 우선 폭력의 미학이 철철 흘러 넘친다. 경찰의 폭력, 마약 갱들의 폭력, 첫 장면 꼬맹이들의 폭력..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칼날이 번쩍하고, 총알이 핑핑 날아다닌다. 그리고, 마지막 허름한 건물내에서의 마지막 결투씬은 암만봐도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스타일이기에 찾아보았다. 그러나 시기상으로 타란티노가 키타노를 흉내낸 것이리다. <소네티네>와 관련하여 한 인터뷰에서..
..다른 감독의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당신의 영화 <소나티네>에서 후샤오시엔이나 타란티노 혹은 코엔 형제의 장점들을 고루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혹시 당신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시나요?
키타노 타케시 감독: (웃음)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실제로 난 <소나티네>를 만들 때 그들의 존재를 몰랐으며 영화도 본 적이 없다 . 그러나 일본에선 <소나티네>가 타란티노의 영화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매우 기분이 상했는데 나중에 타란티노가 많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키타노 다케시를 꼽아서 모든 오해가 풀린 적은 있다. (키노 97/12 76쪽 인터뷰기사에서)
(그 남자 흉폭하다는 89년, 소네티네는 95년, 저수지의 개들은 92년 개봉작이다..)
이 영화에서 뒤틀린 폭력영화의 한 전형을 보게된다. 형사는 합법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범법자, 혹은 범법의 혐의가 있는 시민을 두들겨 팬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리고 몇 장면에선 전혀 신사답지 못하게 긴 말 필요없이 쏘아 죽여버린다. 그래서 암흑가의 보스가 단 한번 저항도 못하고 총알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기형의 폭력은 경찰 여러 명이 티격대며 마약거래상 야쿠자 기요히라를 급습했을 때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몹시 두들겨 맞는 장면에서 극적 효과를 도출한다. 경찰은 때로는 쓸모 없고 무력하며, 존재의의를 망각할때가 있다는 것이다. 야구방망이까지 등장하는 이 장면도 볼만한 시퀀스이다. 그리고 기요히라가 사람하나를 옥상에서 떨어뜨릴 때의 그 폭력성은 내가 여태 본 영화 중 가장 잔인한 살해장면 같다. 물론 그런 영화는 많았다. 매달린 손을 짖밟는 장면은 말이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죽여버리는 그 장면은 숨막히는 장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요히라가 아즈마에게 복수하려고 길거리에서 칼 들고, 총쏘는 장면. 칼날을 움켜잡는 장면. 지나가던 여자가 정말 재수없이 총에 맞을때.. 그리고 마지막 타란티노 스타일의 총질씬들은 이 영화의 진짜 영화적 재미를 마구 선사한다. 동생을 죽일때 유일하게 롱샷이다. 그게 혈육의 정을 느낄수 있는 유일한 시퀀스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차별되는 몇몇 장면이 있다. 먼저 엉성한 자동차 추격씬. 차는 도로를 질주하지만 헐리우드 스타일의 스피디함은 아예 없다. 그리고, 범인을 치겠어요.. 하고는 스톱모션으로 처리되고, 정말 치어버린다. 그리고 아즈마 형사는 이 영화에서 자주 걷는다. 영화내내 끝없이 걷는다. 이상하리만큼 카메라가 그런 아즈마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래서 다케시 키타노가 열연하는 인간 아즈마 형사를 더욱 인간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지도 모른다. 이 형사는 상관과는 타협할 줄 몰라도 불의와는 때론 눈 감는다. 마약보스 니토를 다짜고짜 찾아가서 그 놈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때, 증정용 넥타이핀입니다 하며 찔려준 돈 봉투를 무감각하게 내려다 보다 집어넣는 장면. 그러나 그 이전 어느 술집에서 불법 사행기구를 눈감아 주고, 찔러주는 돈을 쳐다 보지도 않고 거부할 때의 장면과 교차하여 이 남자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거리의 불쌍한 할아버지가 음식을 먹는 장면의 스톱모션이었고 마지막 씬은 그 덜 떨어진 신참 아카리가 마약조직상에게 경찰끄나풀이 되어 주겠다는 말과 함께 돈봉투를 받아들고, 뒤에선 타자를 치던 여비서의 스톱모션으로 처리된다. 이처럼 영화는 아즈마의 끝없는 걷기와 때때로 이상하리만큼 멈추어 버리는 신비로운 카메라워킹-편집의 묘미가 있었다.
이 영화는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해리>와 자주 비교된다. 한번 봐야겠다.
[그 남자 흉폭하다| その男,凶暴につき, Warning, This Man Is Wild, 1989] 감독: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출연: 기타노 다케시, 카와카미 마이코, 아시카와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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