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스님] 부탄에는 총이 없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5. 1. 11. 17:153세계영화 (아시아,아프리카,러시아,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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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스님총을 든 스님

 우선 ‘부탄’이라는 나라. 북쪽으로는 중국(티벳자치구)과, 남쪽으로는 인도와 접하고 있는 남아시아의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면적은 38,394 km²로 서울 강남구 정도 크기이고 인구는 75만 명이다. 왕정국가였던 이 나라에서 국왕폐하가 어느 날 갑자기 민주적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포한다. 독실한 불교국가에서의 흥미로운 체제변화의 순간이다. 그것만 알면 이 영화가 더 재밌다. 물론, 이 작은 나라도 영화라는 것을 만든다는 것이 흥미롭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금 뜻밖의 정보를 전해준다. 2006년, 국왕은  TV, 인터넷에 이어 또 하나의 선물인 선거제도를 국민에게 안겨주겠다고 선포한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게 뭐람? 가상현실이란 말인가 아니면 행복을 빙자한 세속적 타락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이야기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영화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 산골마을 같은 곳(Ura)의 작고 초라한 암자를 비춘다. 나이 든 라마승이 수행 중이다. 칙칙 거리는 라디오에서는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정부에서는 생소한 선거를 알리기 위해 선거관리 공무원을 이곳까지 보내 모의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알린다. 수행 중인 라마가 중대결단을 한 듯 제자 승에게 말한다. “얘야 어디 가서 총 두 자루만 구해 오거라.” 제자는 밑도 끝도 없는 스승의 말에 따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총을 수소문한다. 그러다가 압 펜조르에게서 낡은 총을 하나 구한다. 알고 보니 미국 독립전쟁 때 사용하던 골동품 총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굴러왔던 것. 그런데 한  미국 골동품상이 거액을 들고 그 총을 사려고 한다. 이 평화롭고, 영(靈)이 충만한 곳에서 이제 ‘전쟁 때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총을 둘러싼 뜻밖의 쟁탈전이 시작된다. 라마승은 왜 그 총을 구하려고 했을까. 부탄 최초의 선거는 평화롭게 치러질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만든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2020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던 <교실 안의 야크>를 만든 인물이다. 산 넘고 물 건너 부탄의 산골마을에 새로 부임한 교사가 야크가 어슬렁거리는 축사 겸 교실에서 부탄의 어린이를 가르치는 감동적 ‘교육부’드라마였다. 이 작품은 미국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에 부탄 후보로 올랐다. 이번에는 2006년을 배경으로 부탄 최초의 민주선거를 다룬 ‘내무부’(행정부) 영화를 완성시킨 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 최고의 행복지수를 자랑한다는 부탄 국민이 선거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과 서, 보수와 진보, 남과 여, 생각과 사상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한 표씩을 행사하는지. 어쩌면 가난하고, 불편하고, 불비(不備)한 삶이지만 안분지족의 표정을 짓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리만족, 대리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십 대 시절을 해외에서 자랐단다. 그 덕에 MTV를 보고, 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를 갔었단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적 민주주의, 혹은 현대적 민주주의와 부탄의 행복주의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차갑고도, 뜨거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수 있었을 것이다. 

왕정국가에서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현대적, 민주적 선거에 대한 개념부터 이해시키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정견의 차이를 색깔로 알려준다.  ‘빨간색’은 산업화, '파란색'은 평등과 정의, '노란색'을 과거의 보존을 의미한다며 ‘선거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물론, 모의투표에서 대부분 노란색을 찍는다.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라서. 국왕은 2006년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색깔 별 정당투표를 연습시켰고, 2008년 최초의 다당제 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후 부탄은 입헌군주제로 민주적 선거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영화에서 총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은 상징물로서의 ‘남근’의 등장일 것이다. 당연히 풍요와 다산의 전근대적 유산일 것이다. 감독은 그런 상징물까지 유쾌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부탄에는 ‘당신은 당신의 속눈썹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속눈썹이 당신에게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라는 속담이 있다면서 자신은 부탄사람이지만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외부인의 입장에서 부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왕의 권능과 부처의 지혜로 가득한 산악국가 부탄은 TV와 인터넷의 파고를 넘고,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에 정착할까.   물론, 미국 선거를 보고, 한국 선거를 앞둔 입장에서 ’그렇게 행복한 나라에 그런 게 필요할까?‘ 같은 순진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총을 든 스님>은  2025년 1월 1일 한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총을 든 스님 (영제: The Monk and The Gun) ▶감독/각본: 파오 초이닝 도르지 ▶출연: 탄딘 왕축(타시 역), 켈상 최제이 (라마승 역), 데키 라모 (초모 역), 페마 장포 셰르파 (쉐링 역), 탄딘 손남 (벤지 역), 해리 아인혼, 초에잉 잣쇼. ▶(주)슈아픽처스▶개봉:2025년 1월 1일/전체관람가/10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