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1. 08:53ㆍ홍콩영화리뷰
(박재환 1998.6.30.) <황비홍>을 다시 보았다. 서극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홍콩영화 新황금시대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황비홍>을 보며 '홍콩의 몰락'과 동시에 '중국의 힘'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황비홍은 실존인물이다. 연배는 이홍장과 손문 사이의 어느 때이다. 중국이 한창 외침을 당할 때, 무력한 淸 정부는 끝없이 중국의 땅과 문물을 외세 침입자들에 내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요즘 와서 중국대륙 사학자들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외세란 것은 민주주의의 신봉으로 무장한 현대국가가 아니라 깡패 제국주의의 강탈에 불과하였고, 중국이 그 당시 할 수 있는 것은 드넓은 대륙을 조금씩 조금씩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흉악한 서구의 늑대들이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고통 받을 민초는 누가 보살피는가. 장구한 중국역사에 있어 백성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백성이란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흐르면 다시 들판에서 싹을 틔우는 풀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이러한 삭막하고도 (그들만의)윤택한 시절에 일찍이 깨어난 사람이 있었으니, 우리가 듣게 되는 손문, 노신, 모택동 등이 있다. 모택동은 원래 촌 출신이라서 예외로 하지만. 노신과 손문은 모두 일본이나 미국(하와이)으로 건너가서 선진 문물을 일찍 접했다. 둘 다 처음엔 의술을 배웠다. 노신이 의학 공부를 그만 둔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우들과 함께 본 기록필름 하나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학생들 틈 속에서 노신이 보게 된 필름은 중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군이 빨갱이의 부역자 등으로 지목된 몇몇 중국인들의 목을 베는 장면이다. (<붉은 수수밭> 보면 나타나지만..이런 경우 대개 사람의 껍질을 산 채로 벗기고 목을 댕강 자른다. 이것은 이미 당시 중국인에게는 하나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노신은 그 구경꾼-중국인의 허리멍텅한 눈빛에서 중국인의 서글픈 현실을 본 것이다. 무표정. 분노나 치욕조차 표하지 않는 그러한 무지몽매한 중국인이 있는 이상, 언제까지나 중국은 외세에 짓밟히고 강탈당하는 약소국가의 벌레만도 못한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노신은 단 한사람의 신체만을 고치는 의술을 배우기를 포기하고, 중국인의 정신을 고칠 수 있는 혁명가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 그러한 또 다른 중국 인민의 계몽가 황비홍이 등장한다. 황비홍은 실존인물이며, 이미 100여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중국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협객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영웅을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홍콩인이 선택한 슈퍼스타는 바로 제국주의를 무찌르는 황비홍이다. 그렇다고 배타주의 국수주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황비홍이 말하듯이 중국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장기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 정신세계의 고결함은 언제까지나 지켜 나가고 말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황비홍 전편을 관통하는 무거운 의미이다. 이른바 ‘東道西器, 中體西用’ 같은 용어로 중국철학사에서 많이 논의되는 것이다.
황비홍은 광동 불산(佛山)에 적을 둔 보지림(寶芝林 빠오쯔린)이란 무술관장으로 있으면서 인근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스승으로 모셔지는 사람이다. 그는 해박한 의학적 지식에, 관대한 인품, 잘생긴 외모, 끝내주는 무술솜씨 등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험난하기만 하다.
미국과 영국의 제국주의 세력은 날로 중국의 모든 것을 강탈해 가고 있으며, 청 정부의 무력함과 부패함은 모든 인민의 고혈을 빨고만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리석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각종 사이비종교집단마저 득세하고 있으니 우리의 황비홍 같은 우국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사를 위해서 작은 일에 만족하며, 자기 문하생이 사고나 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 미국에서 날아온 그의 이모-먼 친척뻘 되는 관지림. 관지림이 황비홍에게 서양 문물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하고, 황비홍은 그러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황비홍에 대한 관지림의 애틋한 사랑이나 원표의 등장이 이야기 줄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서극의 작품답게 뛰어난 무술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손꼽히는 것은 마지막 무술 대결장면. 복잡하고 잘 짜인 세트에서 펼치는 사다리와 장대의 현란한 무술은 이연걸을 한층 빛나게 만든다.
금산이야기. 지금도 중국인은 로스앤젤레스를 舊金山(지우진샨)이라 부른다. 이 영화에선 노예로 팔려 가는 중국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실제로 당시 미국본토로 건너가서 미국을 실제로 개척한 노동력이다. 미국 동서횡단철도건설이나, 노예제 폐지 후 일손이 모자란 미국남부 목화밭의 노동자가 된 이는 거의 중국이민자들이다. 당시, 한국인이 하와이로 건너가서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20시간의 강제노역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던 그 눈물 나던 시기를 생각해 보라! 오늘날 우리네가 얼마나 잘 산다고 미제상품에 일제물건인가. 각성하라 각성하라! 하지만 나 자신도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3번 본 어쩔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한국인이다.
당시 깨어있는 중국인들 중 유럽으로 돈도 벌고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장도에 오르는 집단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등소평이다. 등소평은 프랑스로 勤工儉學(근공검학,근면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학문한다라는 뜻..주경야독이랑 비슷) 떠난다. 역시 하루 20시간의 혹사를 당하며 오늘날 월드컵 개최 할만큼 비옥하고 튼튼한 프랑스의 경제기초를 다져 놓았다. 그가 힘든 일에 지쳐 쓰러졌을 때 동료는 그가 죽은 줄 알고 전보를 쳤다고 한다. "등소평동지 과로사..애도" 라고. 그날 이후, 실제 등소평이 죽기까지 서방언론들은 여러 수십 차례 "등소평진짜사망"이라는 오보를 양산하게 된다.
음 영화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네. 어쨌든 중국인을 계몽시키는데는 영화이상이 없다고 확신한 서극 감독은 미국에서 영화를 배우고 홍콩으로 돌아와 <촉산> 등을 만들며, 자기의 재능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가 한 작품 한 작품 발표할 때마다, 홍콩 영화의 주류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주제의식, 뛰어난 무술장면, 아기자기한 화면구성에 덧붙여 가장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이다. 이 영화는 주제가 있고, 힘이 있다. 특히 관지림이 갇히고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해졌을 때의 카메라 워크나 박진감 있는 편집은 최상급이다. 당황하는 원표, 절망하는 관지림, 그리고 초조한 이연걸. 이런 모습이 완벽하게 뭉쳐져서 영화의 극적 흥분을 더한다. 게다가 원표의 쓸데없는 첫 등장 씬과는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극적요소로 똘똘 뭉친 그의 역할이 돋보인다.
황비홍이란 영화가 볼수록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그러한 영화외적인 요소와 영화내적인 힘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게 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박재환 1998/6/30)
黃飛鴻 Once Upon A Time In China 황비홍 (1991) 감독: 서극 주연: 이연걸, 원표,관지림,장학우,정칙사,임세관, 유순,임달화,원신의,왕우 개봉:199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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