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한다] 역사적 망언에 대한 역사적 심판 (Denial, 믹 잭슨 감독 2016)

2017. 8. 22. 21:09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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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7.4.13) 일본의 정치인들은 잊을만하면 한국인의 분노케 하는 역사적 망언을 일삼는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무분별한 몇몇 사람이 ‘컨센서스를 형성한’ 사안에 대해 기막힌 주장을 내뱉으며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잠깐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자.

서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적 컨센서스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 나찌 치하에서 벌어진 유태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인류문명에 있어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잔학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500만에서 600만에 이르는 인류가 아우슈비츠 등 나찌의 가스실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이 제거되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있다. 그것도 제법 많다. 머리를 빡빡 밀고 “하이 히틀러” 하며 손을 내뻗는, 네오나찌즘을 신봉하는 그런 미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영화가 곧 개봉한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이다.

오래전 <보디가드>를 감독한 믹 잭슨이 감독한 <나는 부정한다>는 1996년 영국 법정에서 이뤄진 재판과정을 담고 있다. 원고는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한 ‘자칭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 피고는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유대 역사를 가르치는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레이첼 와이즈)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교수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이 등장한다. 평소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데이빗 어빙이 네오나치스트  앞에서 신나게 연설하는 장면이다. “홀로코스트란 것은 없었다. 그때 가스실에서 죽었다는 사람은 에드워드 케네디의 차 뒤에서 죽은 여자 숫자보다 적다.”고 말한다. (존 F. 케네디의 남동생 에드워드 케네디가 1969년에서 채퍼퀴딕 섬에서 교통사고를 냈고 당시 뒷자리에 탄 여자가 죽었던 사건을 말한다) 학생들에게 유대 역사를 가르치는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는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특징을 소개한다. “그들은 크게 몇 가지를 부정한다. 대량학살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 있었다면 독일 내 유태인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 학살당한 숫자가 널리 알려진 5백만, 6백만보다는 훨씬 적다는 것, 그러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런 주장을 하면서 정부보조금을 빨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제목은 ‘Denial'(부정)이다. 이는 이른바 역사해석에서 -홀로코스트 같은 문제에서 - 주류 역사인식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데이빗 어빙 같은 사람은 자신에게 이런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자신은 부정론자가 아니라 수정주의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데이빗 어빙은 대담한 짓을 벌인다.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의 강연장에 찾아와 “당신이 당신의 책에서 나를 부정주의자자라고 말해 나를 모욕했다.”면서 고소할 것이라고 떠든 것.

놀랍게도 데이빗 어빙은 실제로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와 출판사 펭귄을 고소한다. 그것도 런던의 영국법정에. <나는 부정한다>를 보면 영국의 사법체제와 재판과정의 특이한 점을 배우게 된다. 영국사법시스템과 법정은 조금 특이하다. 모욕죄 같은 경우는 피고가 “(자신의 발언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가 “데이빗 어빙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다”고 증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법정드라마는 흥미롭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사람 죽는 것 봤냐? 증거가 있냐? 그들이 실제 가스로 죽은 걸 입증할 수 있느냐? 하는 뜻밖의 문제에 부딪힌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미국과 (그리고 한국과는) 조금 다른 사법 시스템을 볼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학술적 논쟁’에 대해 ‘사법적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고도, 유익한 작품이다.

인터넷에서 데보라 립스타트와 데이빗 어빙을 찾아봤다. 데이빗 어빙은 유럽 여러 나라로부터 ‘페르소나 논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지정되었단다. 위험한 학술적 주장에 따라 입국을 금지당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이 범죄행위인 오스트리아는 데이빗 어빙을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의 반응이 흥미롭다. 립스타트는 “(학술적) 검열이 이겼다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은 역사와 진실을 통해서야만 한다.”며 그런 사람의 주장은 철저하게 무시해야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실, 우리나라에서도 학술적 주장이나, 사회적 인식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생경하고도 폭발적인 주장이 논쟁의 장에서 법정으로 넘어가는 일이 왕왕 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그런 이슈와 대치 속에 하나의 시사점을 안겨준다. 법조계 인사나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역사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꼭 볼 영화이다. 2017년 4월 26일 개봉예정 (박재환)

 

Denial (2016 film) - Wikipedia

Denial is a 2016 British-American biographical drama film directed by Mick Jackson and written by David Hare, based on Deborah Lipstadt's book History on Trial: My Day in Court with a Holocaust Denier. It dramatises the Irving v Penguin Books Ltd case, in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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