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私영화, 인간드라마 (김수형 감독, 1980)

2013. 1. 3. 11:14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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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9.28.) 이주일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김국진이 있기 전에, 심형래가 있기 전에, 한 시절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코미디언이었다. 그가 등장한 것은 1980년이다. 한쪽에선 무서운 사람이 등장했고, 또 한쪽에선 이렇게 우스운 사람이 나란히 비슷한 시기에 텔레비전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충무로의 영화제작 경향을 보면 뭐, 뾰족이 내세울만한 장르도 없었고,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현대적인 의미의 스타 시스템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기몰이란 것만은 분명히 존재했다.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모은 스타는 그게 가수이든, 탤런트이든, 코미디언이든 어쩔 수 없이 영화계의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 광고계에서 각광받는 만큼이나 말이다.

그래서 조용필도 영화에 나왔고, 인순이도 영화 주인공이 되었었다. 물론 이들 영화들은 작품 완성도 측면에서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정 팬들과 지방 극장들의 선호 때문에 확실한 흥행주가 되었었다. 이주일은 그 짧은 시간에 몇 편의 영화에 무더기로 출연할 수 있을 만큼 인기폭발이었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리빠똥사장>,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등의 영화에 말이다.

 

물론, 오늘날 이들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사실 고역일 것이다. 당시의 인기야 어찌되었든, 얼기설기 대강대강 만든 영화를 지켜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 이 영화도 그런가?

 

오늘(1999928) 케이블TV 캐치원(현재는 HBO-> 지금은 캐치온)에 새벽에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를 방영하기에 한번 꼭 보고 싶었다. 사실 이런 영화는 찾아서 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한때 한 시절의 문화현상을 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쩜 내가 평소 알고 있는 이주일의 인간드라마에 여전히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캐치원은 영화시작 전에 <프로그램 내용정보>란 자막을 내보낸다. '폭력-선정-언어' 세 분야에 걸쳐 영화의 정도를 알려준다. 이 영화는 세 분야에 모두 '없음'이란 방송국내부의 판정을 받았다. 그러니까 극히 양호한 영화라는 소리이다. 아마, 이런 판정의 영화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요즘 영화에는 만화영화에조차 언어폭력부문에서 '약간 폭력적임' 등의 판정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이주일의 자서전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다. 시골에서 출세할 것이라며,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서는 남에게 사기 당하고 비참하게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해야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낙천적이며, 효성 지극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생긴 얼굴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밤무대, 쇼 단을 쫓아다니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그를 믿어주는 애인이 있었고, 그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이 그를 도와주는 등 좋은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 아니 운명적으로 출연한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주일의 본명은 정주일이라고 한다. 단지 이 주일(14)만에 인기 캡의 연예인으로 떠올랐다고 해서 예명을 이주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아마, 그 당시 콩나물 팍팍 묻혀..” 같은 노래 부르고, "헤이~"하며 이상해랑 콤비가 되어 오리 궁둥이 걸음을 하면서 브라운관을 장악했던 것 같다. 사실 한 연예인의 제스처가 이렇게 전국적인 흉내 내기를 유발시킨 것은 아주아주 드문 일이다. 그리고 아직도 코미디언이나 탤런트라면 기본적으로 이주일 목소리와 걸음걸이정도는 흉내 낼 줄 알아야하고 말이다.

 

이주일은 그 후 국회의원 생활을 잠시 했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정치할 때, 그의 국민당 지역구(구리) 의원으로 뽑혀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이주일의 또 다른 면모는 그가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그 가 <한국일보>에 매주 어떤 컬럼을 썼던 일이다. 이주일은 개인적으로 아주 어렵고, 고달팠던 무명시절을 보내었기에 그만큼 인생의 깊이와 사고의 폭이 넓고 유연하다는 사실을 그 글들을 읽으며 감탄했던 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 조용필은 타블로이드판으로 나오던 조그만 <<TV가이드>>라는 잡지에 컬럼을 썼었다. 이주일-조용필-그리고 축구감독 박종환씨는 서로 아주 친한 모양이었었다).

 

이주일이 정치판을 박차고 나와서 한 말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적이 있다. "정치판요? 그거 완전히 코미디 판이었어요.."라고 했었다. 물론 요즘 텔레비전의 청문회 중계방송장면을 보면 그 말을 실감할 것이다. TV중계 방영시간에 맞춰 청문회를 열고, 카메라에 자기 얼굴 맞추려고 노력하는 선량들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주일이 국정활동을 그렇게 잘 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그는 지독한 견제, 왕따를 당해야했는지 모른다. "코미디언 주제에..", "저질..."이런 인상이 여의도에 원래부터 뿌리박고 있던 토착코미디언의 영역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송충이는 뽕잎만 먹어야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주일의 이 영화는 상당히 촌스럽고, 옛날영화 티가 나고, 시골 극장에서 상영하려고 만든 영화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내용으로 보자면 꽤나 흥미 있는 줄거리이다. 시골에서 갓 상경하여 연예계 뒷이야기, 비극, 슬픔, 좌절, 노력, 못 생긴 얼굴이 대변하는 신에 대한 저주, 천부적 재능...이런 것은 요즘 적당히 각색하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도 같으니 말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보기 힘든 작품 보았다. 기쁘다. (박재환 199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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