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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 웃긴 우리 젊은 날 (곽재용 감독 My Sassy Girl, 2001)

한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13. 1. 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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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기적인 그녀>는 제작 발표 때부터 화제가 되었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새로 지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로비에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펼치며 전지현과 차태현의 스크린 랑데부를 약속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 청소년들의 기대에 딱 들어맞는 즐거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익히 알려진 대로 <엽기적인 그녀>PC통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김호식 씨의 통신문학이 원전이다. 세종대왕이 통곡할 통신문체('졸라', '방가슴' ....)로 직조된 신세대의 튀는 러브스토리는 엄청난 조회 수를 올렸고, 이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교도소 월드컵>으로 위신에 금이 간 신씨네는 이번 영화로 명가의 자존심을 찾을 것 같다.

 

영화는 원작대로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는 한 여자와의 끈질긴 인연과 사랑의 여정을 남자 주인공이 회고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술 먹고 오바이트한 후 쓰러진 '엽기적인 그녀'와 만나게 된 평범한 대학생 '견우'는 그날 이후부터 전쟁과 같은 연애를 하게 된다.

 

영화를 만든 이는 곽재용 감독이다. 오래 전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서정성 가득한 영화를 만들었던 이 감독이 그 동안 시야에서 사라진 동안 거쳤던 직업 중에는 비디오가게 운영이란 게 있다. 홍보 팜플렛에도 잠시 나오지만 그는 이 시기를 "타란티노처럼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가게를 운영했다"고 우기곤 한단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연 이 감독이 정말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완급의 조절과 적시적소 배치된 감칠맛 나는 대사는 연신 미소와 폭소를 이끌어낸다. 첫 장면 아름다운 풍경의 한 그루 소나무 앞에 서있는 주인공을 비추며 흘러나오는 음악은 <러브레터>분위기. 떠나간 여자를 그리워하든지 아니면 2년만의 재회를 꿈꾸는 연인이든 지간에 이내 이 남자의 험난했던 지난 2년여의 연애담이 싱그럽게 펼쳐진다.

 

역시 이 영화 성공의 절대적인 공은 주연배우들의 풋풋한 매력이다. 시사회장에 차태현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객석 여기저기서 새어나온 탄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대중적 인기는 가히 당대 최고수준. 게다가, CF에서 춤만 추는 여자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던 전지현은 그의 짧은 영화 경력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기를 해내었다. 관객들은 이 두 젊은 연인들이 '노는' 모습에 공감과 동감을 거듭하며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몇 편의 괴이한 영화에서 괴이한 모습을 보여주던 중견 배우 김일우씨도 코미디영화 본연의 튀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주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영화 속 영화 이야기. '엽기적인 그녀'의 취미는 영화 시놉시스(스토리보드) 그리는 것이다. 그는 괴로워하는 견우에게 몇 편의 습작을 보여준다. 표지에는 "다 읽고 재미없다고 했다가는 죽을 줄 알아!"라는 섬뜩한 경고문이 달려있다. 영화 간간이 삽입된 영화로는 여성전사 터미네이터 이야기인 <데몰리션 터미네이터>를 시작으로, <비천무림애가>, <소나기 엽기버전 패러디> 등이 있다. 이 영화가 더 즐거운 것이 이것을 '그녀의 강요'에 따라 견우가 '신씨네'영화사에 찾아가 영화화해 달라고 하는 장면이다. "주연은 한석규와 심은하가 좋겠어요. 전도연도 괜찮고요."라면서.

 

물론, 이 영화의 겉은 완벽한 코미디로 포장되어 있지만 알맹이는 순수 멜로물이다. 아무리 '죽이겠다'고 살벌하게 떠들어대던 여자도 알고 보면 깊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세월이 약이 되는 사랑의 치유법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관객은 눈 오지 않은 산에서 벌어지는 '오겡끼데스까?' 장면을 보며 마음의 동요를 가졌을 법하다. 이제는 중견감독이 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과 그의 조감독이었던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한국적 서정성이 이 영화의 기저에 도도히 흐른다. 그 정서는 술 취한 여자를 여관에 모셔다놓고도 그냥 잠이 드는 순진함으로 이어지고, 그 첫 만남 이후 어쩔 줄 몰라 하는 견우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순진무구형 러브스토리는 오래 전에 안성기가 했던 영민(기쁜 우리 젊은 날)이며, 강석우의 연기했던 <겨울나그네>의 민우의 모습이다.

 

이번 여름 청소년들은 왁자지껄 신나게 떠들며 볼 수 있고, 30대는 10년 전에도 사실 저런 마음으로 연애했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견우'가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 중에 <비천무림애가>가 있다. <동사서독>풍의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많다. 그중 하나는 수배자 방에 붙은 견우의 한자! '犬友'였다. (박재환 2001/7/20)

 

감독:곽재용 출연: 전지현,차태현,김인문,송옥숙,한진희,김일우 개봉:20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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